夫中夏가 有盛衰하고 夷狄이 有强弱하고 事機有利害하고 措置有安危할새
夏后
는 以序戎而聖化茂
注+① 禹貢 “西戎卽敍.”하고 古公
은 以避狄而王業興
注+② 古公卽太王, 避狄于岐山之下.하며
周城朔方而玁狁攘
注+③ 出車詩云.하고 秦築臨洮而宗社覆
注+④ 盧生入海, 得圖錄曰 “亡秦者胡也.” 始皇乃北築臨洮, 以却匈奴. 後陳勝起, 卒以亡秦. 事見本紀.하며
漢武
는 討匈奴而貽悔
注+⑤ 武帝連年出師, 以征匈奴, 海內虛耗, 戶口減半, 卒下哀痛之詔.하고 太宗
은 征突厥而致安
注+⑥ 突厥數入寇, 太宗命李靖以兵三千, 生擒頡利, 邊境遂寧.하며
文景
은 約和親而不能弭患於當年
注+⑦ 文․景雖與匈奴和親, 然屢入寇邊郡.하고 宣元
은 弘撫納而足以保寧於累葉
注+⑧ 匈奴五單于爭立, 宣帝存撫呼韓邪單于, 故迄于元․成, 單于數入朝.하니
蓋以中夏之盛衰가 異勢하고 夷狄之强弱이 異時하며 事機之利害가 異情하고 措置之安危가 異便일새
知其事而不度其時則敗하고 附其時而不失其稱則成하여 形變不同하니 胡可專一이리오
9-1-3 무릇 중국에도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고 오랑캐도 강할 때와 약할 때가 있으며, 일의 기미에 있어서도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고 조치함에 있어서도 안전함과 위태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해진 규칙도 없고 또한 늘 이기는 방법도 없습니다.
하후씨夏后氏는
서융西戎을 안정시킴으로써 성스러운 교화가 성대해졌고,
注+① 夏后以序戎而聖化茂:≪書經≫ 〈夏書 禹貢〉에 “西戎에까지 미치어 질서정연해졌다.”라 하였다.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적狄을 피함으로써 왕업이 흥기하였고,
注+② 古公以避狄而王業興:古公亶父는 곧 太王이니, 狄을 피하여 岐山 아래로 이주하였다.
주周나라는
삭방朔方에 성을 쌓아서
험윤玁狁이 물러났고,
注+③ 周城朔方而玁狁攘:≪詩經≫ 〈小雅 出車〉에서 운운하였다. 진秦나라는
임조臨洮에 성을 쌓고도 종묘사직이 무너졌고,
注+④ 秦築臨洮而宗社覆:盧生이 바다에 들어가 圖籙을 얻었는데, 도록에 이르기를 “秦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는 胡일 것이다.”라 하였다. 始皇帝가 이에 북쪽으로 臨洮에 성을 쌓아 匈奴를 물리쳤다. 후에 陳勝이 봉기하여 결국 이로 인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이 일은 ≪史記≫ 〈秦始皇本紀〉에 보인다.
한漢 무제武帝는
흉노匈奴를 토벌하였으나 후회를 남겼고,
注+⑤ 漢武討匈奴而貽悔:漢 武帝가 매년 군대를 일으켜 흉노를 정벌하느라 海內가 공허해져 戶口가 반으로 줄어들었으니, 결국 애통을 표한 조서를 내렸다.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은
돌궐突厥을 정벌하여 평안함을 이루었습니다.
注+⑥ 太宗征突厥而致安:突厥이 자주 침략하자 太宗이 李靖에게 군사 3천을 주어 명하였는데, 〈이정이〉 를 생포하여 변경이 마침내 평안해졌다.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흉노와〉 화친을 맺었으나 당년에 환란을 그치게 할 수 없었고,
注+⑦ 文景約和親而不能弭患於當年: 선제宣帝와
원제元帝는 북방의 오랑캐들을 널리 위무하고 받아들여서 누대에 걸쳐 편안함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注+⑧ 宣元弘撫納而足以保寧於累葉:흉노는 다섯 선우가 쟁립하였는데, 宣帝는 呼韓邪單于를 위무하였다. 그러므로 元帝와 成帝에 이르러 선우가 여러 차례 입조하였다.
이는 대개 중국의 성하고 쇠함은 형세에 따라 달라지고 이적夷狄의 강하고 약함은 때에 따라 달라지며, 일의 기미의 이로움과 해로움도 정황에 따라 달라지고, 조치措置의 안전함과 위태로움도 형편에 따라 달라지니,
그 일을 알고 그 시기를 헤아리지 못하면 실패하고 그 시기에 부합하고 그 알맞음을 잃지 않으면 성공하는 법입니다. 형세의 변화가 같지 않으니 어찌 오로지 하나만 고집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