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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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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自昔能建奇功하며 或拯危厄 未必皆是絜矩之士 溫良之徒
驅駕擾馴 唯在所馭일새 朝稱兇悖라가 夕謂忠純하고 始爲寇讐라가 終作卿相하니
知陳平無行而不棄注+① 史陳丞相世家 “或讒平受諸將金, 漢王責魏無知. 對曰 ‘臣所言者, 能也. 陛下所問者, 行也. 今有尾生․孝己之行, 無益於勝負之數.’ 平又自辨說, 漢王使平盡護諸將, 諸將乃不敢復言.”하고 忿韓信自王而遂封注+② 史淮陰侯 “信旣平齊, 欲爲假王, 漢王大怒, 用陳平․張良計, 乃遣良立信爲齊王.”하며 蒯通以析理獲全注+③ 韓信臨死曰 “恨不用蒯通計.” 上怒捕通欲烹之. 蒯曰 “跖狗吠堯, 堯非不仁, 狗固吠非其主耳. 且天下欲爲陛下所爲者甚衆, 固力不能, 又可盡烹之邪.” 高帝乃釋通云云.하고 雍齒以積恨先賞注+④ 史留侯世家 “上見諸將偶語, 以問留侯. 對曰 ‘此謀反耳.’ 上曰 ‘爲之奈何.’ 留侯曰 ‘上平生所憎, 誰最甚者.’ 曰 ‘雍齒.’ 留侯曰 ‘今急先封雍齒, 則人人自堅.’ 乃封爲什方侯. 群臣皆喜曰 ‘雍齒尙爲侯, 吾屬無患矣.’”하니 此漢祖所以恢帝業也
置射鉤之賊하여 而任其才注+⑤ 管子內言云 “公自莒反于齊, 使鮑叔牙爲宰. 鮑叔辭曰 ‘臣君之庸臣也, 若必治國家, 其惟管夷吾乎.’ 公曰 ‘彼親射寡人中鉤, 殆於死, 今乃用之可乎.’ 曰 ‘彼其爲君也, 君若宥而返之, 其爲君猶是也.’ 公從之, 迺亟請夷吾於魯, 授以國政.”하고 釋斬袪之怨하여 以免於難注+⑥ 左僖二十四年 “呂․卻畏偪, 將焚公宮而弑晉侯. 寺人披請見, 公辭焉. 曰 ‘女爲惠公來求殺予, 命女三宿, 女中宿至, 何其速也. 夫袪猶在, 女其行乎.’ 對曰 ‘臣謂君之入也, 其知之矣. 若猶未也, 又將及難.’ 公見之, 以難告. 晉侯濳會秦伯于王城, 遂免於難.” 袪謂披所斷晉侯之衣袂也.하니 桓文所以弘霸功也


6-3-4 옛날부터 기이한 공적을 세우고 혹 위태롭고 재액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의 인사이거나 한 무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말을 몰고 길들이는 것은 오로지 말을 부리는 것에 달려 있으니, 아침에는 흉패兇悖하다고 일컫다가 저녁에는 충순忠純하다고 평하며, 처음에는 원수이다가 종당에는 경상卿相이 되는 것입니다.
진평陳平이 행실 없음을 알고도 버리지 않고,注+① 知陳平無行而不棄:≪史記≫ 〈陳丞相世家〉에 “혹자가 陳平이 여러 장수들의 돈을 받았다고 참소하자 漢王(劉邦)은 〈그를 추천했던〉 魏無知를 책망하였다. 위무지가 대답하기를 ‘臣이 말한 바는 능력이고, 폐하가 물으시는 바는 행실입니다. 지금 이 있어도 승부수에는 아무 보탬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진평이 또 스스로 변설하자, 한왕이 진평으로 하여금 여러 장수들을 모두 감독하게 하니, 여러 장수들이 마침내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한신韓信이 스스로 왕이 된 것을 미워하면서도 끝내 왕에 봉해주었으며,注+② 忿韓信自王而遂封:≪史記≫ 〈淮陰侯列傳〉에 “韓信이 齊나라를 평정한 뒤 假王(임시 왕)이 되고자 하니, 漢王(劉邦)이 크게 노하였다. 그러나 陳平과 張良의 계책을 써서 장량을 보내서 한신을 齊王으로 세웠다.”고 하였다. 괴통蒯通은 사리를 따진 것으로 생명을 온전히 할 수 있었고,注+③ 蒯通以析理獲全:韓信이 죽을 때 “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자, 上이 노하여 괴통을 체포하여 烹刑에 처하려고 하였다. 괴통이 말하기를 “盜跖의 개가 堯임금을 향해 짓는 것은 요임금이 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개란 본디 제 주인이 아니면 짖는 것일 뿐입니다. 또한 천하에 폐하께서 하신 일을 하기를 원하는 자가 매우 많으나 진실로 자기의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니, 또 그들을 다 삶아 죽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高祖가 이에 괴통을 풀어주었다. 옹치雍齒는 예전의 원한으로 가장 먼저 상을 받았습니다.注+④ 雍齒以積恨 先賞:≪史記≫ 〈留侯世家〉에 “상(劉邦)이 제장이 둘씩 모여 말하는 것을 보고는 留侯(張良)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이는 모반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묻기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자 유후는 말하기를 ‘상이 평소 미워하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가장 심합니까?’라고 하자, ‘옹치이다.’라고 하였다. 유후는 ‘지금 급히 먼저 옹치를 봉한다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절로 안정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옹치를 什方侯에 봉하자, 뭇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며 ‘옹치도 제후가 되었으니 우리들은 걱정이 없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이것이 고조高祖제업帝業을 이룬 이유입니다.
자신의 혁대 갈고리를 쏘아 맞힌 적을 용서하여 그 재능에 맞게 임용하고注+⑤ 置射鉤之賊 而任其才:≪管子≫ 〈內言〉에 “桓公이 莒에서부터 齊나라로 돌아와서 鮑叔牙로 하여금 재상이 되게 하였다. 鮑叔은 사양하면서 ‘臣은 군주의 범용한 신하입니다. 만약 국가를 잘 다스리려 한다면 오로지 管夷吾(管仲)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환공이 말하기를 ‘저자는 몸소 과인을 활로 쏘아 혁대의 갈고리를 맞춰 거의 죽을 뻔하였는데, 지금 그를 등용하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하였다. 포숙은 말하기를 ‘저 사람은 자기 군주를 위하여 움직인 것입니다. 군주께서 만약 용서하여 그를 〈齊나라로〉 귀국시킨다면, 그가 군주를 위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이 말을 따르고, 이에 속히 魯나라에 관이오를 줄 것을 청하고 〈관이오가 제나라에 오자〉 國政을 맡겼다.”고 하였다. 소매를 베었던 원망을 풀어서 난리에서 위기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注+⑥ 釋斬袪之怨 以免於難:≪春秋左氏傳≫ 僖公 24년 조에 “〈晉 惠公의 舊臣이었던〉 呂甥․郤芮가 晉 文公의 偪迫을 두려워하여 公宮에 불을 질러 晉侯를 弑害하려 하였다. 寺人 披가 뵙기를 청하자 문공이 접견을 거절하며 말하기를 ‘예전에 너는 혜공을 위해 와서 나를 죽이려 하였는데 그때 혜공은 너에게 사흘 밤을 묵고 가라고 명하였는데, 너는 이틀 만에 달려왔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속히 왔느냐? 그때 너에게 소매가 잘린 옷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으니 너는 떠나거라.’라고 하였다. 披가 대답하였다. ‘臣은 임금님께서 들어와 임금이 되셨으니 당연히 임금의 道理를 아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아직도 임금의 도리를 모르시는 것 같으니, 또 장차 患難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公이 그를 接見하니 〈여생과 극예가 公宮에 불을 지르려고 한〉 變難을 告하였다. 晉侯가 은밀히 秦伯과 王城에서 會合하여 마침내 난을 면하였다.” 하였다. 袂(소매)는 披가 자른 晉侯의 옷소매이다. 이것이 환공桓公 문공文公패업霸業을 이룬 이유입니다.


역주
역주1 絜矩 : 絜은 헤아린다는 뜻이고 矩는 曲尺을 의미한다. 윗사람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儒家의 도덕규범을 말한다. ≪大學≫ 傳 10章에 絜矩之道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역주2 溫良 : 儒家에서 내세우는 대표적인 덕행이다. 子貢이 孔子를 찬양하면서 “온화하고 선량하고 공손하고 검약하고 겸양하였다.[溫良恭儉讓]”라고 다섯 가지 덕행을 거론한 내용이 ≪論語≫ 〈學而〉에 나온다.
역주3 尾生과……행실 : 尾生이 여자와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고 물이 부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의 기둥을 껴안고 있다고 죽었다. 孝己는 殷나라 高宗의 아들인데 孝行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역주4 蒯通 : 본명은 蒯徹이었으나 漢 武帝의 이름이 劉徹이라서 후대에 괴통으로 불렸다. 燕나라 출신이나 주로 齊나라에서 활동하였다. 괴통이 齊王 韓信에게 漢나라를 배반하고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한신이 받아들이지 않다가 나중에 呂太后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漢 高祖가 괴통을 잡아들여 죄를 묻자 “당시에 신은 제왕 한신만 알았지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여 풀려났다.(≪漢書≫ 권45 〈蒯通傳〉)
역주5 (威)[桓] : 저본에는 ‘威’로 되어 있는데, 宋나라 欽宗의 이름인 桓을 피휘한 것이다. 이에 ‘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 저본에는 ‘重’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動’과 통용한다. ≪管子≫에는 ‘動’으로 되어 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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