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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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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夫君上之權 特異臣下者 唯不自用이라 乃能用人이니
其要 在順於物情하고 其契 在通於時變일새 今之要契 頗具於玆하니 儻蒙究思하시면 或有可取리오 謹奏


6-2-6 무릇 군상君上의 권한이 특별히 신하와 다른 것은, 다만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잘 쓰는 데 있습니다.
그 요체는 물정物情에 순응하는 데 달려 있고, 그 계합契合은 시기의 변화에 통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지금의 요체와 계합이 여기에 자세히 갖추었으니, 만약 성상께서 이를 살펴주신다면 혹 취할 만한 것이 있으실 것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 앞서 토번吐蕃상결찬尙結贊혼감渾瑊과 함께 장안長安을 취하자고 거듭 약속하고는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돌아가고 말았다. 덕종은 이성李晟혼감渾瑊의 병사가 적으므로 토번에 의지하여 경성을 수복하려고 하였으므로 대단히 근심하여 육지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육지는 〈흥원하토번상결찬추군회귀장興元賀吐蕃尙結贊抽軍迴歸狀〉에서 상결찬은 모략이 많아 믿을 수 없으므로 그가 회군한 것은 사직의 복이라고 말하였다. 덕종은 육지가 토번에 대해 논한 것은 훌륭하지만, 혼감과 이성 등 여러 군사는 마땅히 계획을 의론한 다음에 전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 조목조목 글로 적어 보고하라고 하였다. 육지는 군주가 장수를 선발하면 임무를 맡겨 성공을 책임지게 하여야 공적을 이룰 수 있다. 편의대로 하도록 허가하여 심상한 경우와는 다르게 대우하여야 장수가 감동하고 기뻐하여 지혜와 용기가 뻗어나갈 수 있다고 여겨, 이 주문奏文을 올렸다. 육지는 전투에 임한 장수가 모책을 전담하고 기병奇兵으로 승리하게 하려면 멀리서 통제하고 일일이 군주의 명을 따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장수를 선발하면 군주의 권한을 나누어주어 간섭하지 말고 독자적인 판단으로 전술을 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육지의 판단은 이성의 전승戰勝에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당서舊唐書≫ 권133 〈이성전李晟傳〉은 이성李晟의 경성 수복 전투를 자세하게 서술했다. 아래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성은 동위교東渭橋에서부터 군사를 광태문光泰門미창촌米倉村으로 옮겨 경성을 육박했다. 이성은 높은 곳에 임하여 지휘하여, 호책壕柵을 설치하여 적군을 망보게 하였다. 얼마 있다가 적의 무리가 대거 이르러 와서, 적의 효장驍將 장정지張庭芝이희청李希倩에 다가와 전투를 도발했다. 이성은 여러 장수들에게, ‘나는 적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 죽음을 무릅쓰고 오다니,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선吳詵강영준康英俊사만경史萬頃맹섭孟涉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놓아 추격하게 하였다. 당시 화주영華州營이 북쪽에 있었는데, 군병이 작았으므로 적이 온힘을 모아 공격하자, 이성은 이연李演맹화孟華를 보내어 정예병으로 구하게 하였다. 중군中軍고조鼓譟하자, 이성의 장수 이연李演이 힘써 싸워 적을 대파하고, 승승하여 광태문으로 들어갔다. 다시 싸워, 또 패배시키자, 죽은 시체가 땅을 덮었고, 나머지 군중은 달아나 백화白華로 들어갔으며, 밤에는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장차 다시 군사를 내려고 하자, 여러 장수들이 서군西軍이 오기를 기다려 좌우에서 협공하자고 하였다. 이성은 말하기를 ‘적이 이미 상하고 패하였으니 승기를 타고 박멸하여야 한다. 만약 그들이 대비하기를 기다린다면 어찌 왕사王師로서 이롭다고 하겠는가. 만일 서군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기편機便을 잃을까 염려된다.’라고 하였다. 28일, 이성은 여러 장수들을 크게 모으고……호령號令하고 군사들에게 맹서하여, 광태문 밖에 군사들을 모두 진열하게 하였다. 마침내 왕필王佖이연李演 등으로 하여금 기군騎軍을 인솔하게 하고 사만경史萬頃으로 하여금 보졸을 거느리게 하여, 곧바로 원장苑墻신가촌神麚村으로 돌진하게 하였다. 이성은 이보다 앞서, 밤에 사람을 시켜 원장苑墻의 2백여 보를 열어두게 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적은 나무를 세워 으로 삼아, 에 의지하여 항거하였다. 이성은 군사에게 꾸짖기를 ‘어찌 적을 이와 같이 풀어놓는단 말인가. 마땅히 공들을 먼저 참수하겠다.’ 하였다. 사만경이 두려워하면서 먼저 적진으로 뛰어들어, 을 뽑고 들어갔다. 왕필王佖기군騎軍이 이어서 나아가자, 적은 곧바로 도망가서 궤멸하였으므로, 적장 단성간段誠諫을 붙잡았고, 대군大軍이 길을 나누어 나란히 들어가며 고조鼓譟뇌동雷動하였다.……구축驅蹙하여 백화白華에 이르렀다. 홀연 적기賊騎 1천여가 관군의 뒤에서 나왔으며, 이성은 휘하 1백여 기와 함께 돌입하였다. 좌우 사람들이 외치기를 ‘상공相公이 오셨다!’라고 하였다. 적이 듣고는 놀라서 무너졌고, 관군은 추격하여 참수한 것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주자朱泚요영언姚令言장정지張庭芝에게는 군사 만 명이 여전히 있었는데, 서로 이끌며 도망하므로, 이성은 전자기田子奇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였다. 그 나머지 흉당兇黨은 서로 이끌고 와서 투항하였다. 이날 이성의 군사가 경성에 들어가, 병사로 하여금 함원전含元殿 앞에 주둔하게 하고, 이성은 우금오장右金吾仗에 묵었다. 그리고 여러 군사들에게 호령하기를 ‘……장안의 사서士庶들이 오래도록 적의 거짓 조정에, 함몰되어 있었으나, 만약 조금이라도 놀라 흠칫하게 된다면 죄인을 벌하고 인민을 조문하는 의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마침내 경조윤京兆尹 이제운李齊運, 섭장안령攝長安令 진원중陳元衆, 섭만년령攝萬年令 위상급韋上伋을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고유告喩하여 거주민을 안도하게 하고, 추호도 범하지 말게 하였다. 상가고尙可孤의 군인 가운데 함부로 적의 말을 취한 자가 있었고, 이성의 대장大將 고명요高明曜는 적의 여기女妓 한 사람을 포로로 하였으며, 사마주司馬伷는 적 두 필을 취하였는데, 이성이 모두 당장에 참수하자, 아무도 감히 거슬러 보지를 못했다. 사서士庶들이 감동하여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모두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먼 에 거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하루가 지나서야 알게 된 자들도 있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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