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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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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右冀寧 奉宣聖旨호되 緣國家賦稅 多出江淮어늘 旣未收復京城일새 恐遠路傳說 過甚하여
所以欲得遣一大臣하여 往彼宣慰하여 以安遠近之情하노니
初欲簡擇此使하여 竝先共宰相商量하니 皆云 蕭復 久任江外刺史하여 諳彼事宜하고 又就宰相之中 名望最重하니 令其往彼宣慰하면 人必望風悅服이라하니
其時蕭復 亦自見此商議하고 更無異同호되 猶不能自斷하여 遂喚諸朝士하여 般次對見하고 一一親向하여 說宣慰之意하고 問其穩便已否하니 皆云 至要라하여 竝無異辭일새
朕所以更不疑惑하여 已與擇得發日이러니
及其臨行 從一等 却論奏호되 欲得且留蕭復注+① 德宗建中四年, 以戶部尙書蕭復爲吏部尙書, 吏部郎中劉從一爲刑部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이라하고 又頻有朝官 上封事호되 亦與從一等意하니
朕忽見此翻覆하고 非常悵恨하여 數日思量호되 不測其故하노니
意者컨대 必是蕭復計會하여 遣其論奏 蕭復 又有何事하여 苦欲得住 其意 深不可會로다
比來 諳此人性行否 兼與朕子細思料하라 若不肯去인댄 其意何在者오하시니


4-3-1 기녕冀寧성지聖旨를 받들어 알리기를 “국가國家부세賦稅가 대부분 강회江淮에서 나오는 것에 의지하는데 아직 경성京城을 수복하지 못한 터라 먼 길에 말을 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듯하다.
이에 대신大臣 한 명을 파견하여 위로하게 하여 원근의 민심을 편안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신을 간택하고자 하여 아울러 재상들과 상량商量하니 모두 ‘소복蕭復강외江外 지방에서 오랫동안 자사刺史의 직책을 맡아서 저쪽의 사정에 밝고 또 재상들 사이에서 명망이 가장 중하므로, 저쪽으로 파견하여 선위宣慰하게 하면 사람들이 필시 풍모를 바라고 열복悅服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때에 소복이 또한 이 의론을 보고 다른 이견異見이 없었지만 이 그래도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여러 조사朝士들을 불러서 반열班列에 따라 인견하고 일일이 친견하여 선위宣慰하는 뜻을 말하고 그 온당한지의 여부를 물으니, 모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여 다른 말이 전혀 없었다.
짐이 때문에 다시 의혹함이 없어서 이미 출발 날을 택하는 것을 허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출발할 날이 가까워지자 등이 도리어 논주論奏하기를 ‘우선 소복蕭復을 행재소에 머물게 해주십시오.’라 하고,注+① 從一等……欲得且留蕭復:德宗 建中 4년(783), 戶部尙書 蕭復을 吏部尙書로 삼고, 吏部郎中 劉從一을 刑部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로 삼았다.조관朝官 중에 봉사封事를 올려서 또한 유종일과 뜻을 같이 하는 자가 누차 있었다.
이에 짐이 갑자기 일이 번복되는 것을 보고 대단히 서글프고 한스럽게 여겨 서너 날을 사량思量하였지만 그 연고를 알지 못하였다.
생각건대 필시 이는 소복이 계책計策하여 논주論奏하게 만든 것이니, 소복이 또 무슨 일로 한사코 머무르려고 하는 것인지 그 뜻을 매우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근래에 이 사람의 성격과 행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울러 짐에게 자세히 생각한 것을 알려 달라. 만약 선뜻 가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고 하셨습니다.


역주
역주1 劉從一 : 742~785. 이름도 從一, 字도 從一이다. 유종일은 젊어서 進士에 천거되고, 大曆 연간에 宏詞科에 뽑혔다. 다른 벼슬에 있다가 宰相 盧杞의 추천으로 侍御史에 超遷되었다. 德宗이 奉天에 있을 때 刑部侍郞 同中書門下平章事에 배수되고, 梁州로 호종하였다. 명년 6월, 中書侍郞 同平章事가 되었다. 그해에 集賢殿大學士가 되었다. 얼마 후 병으로 사직하고 44세로 졸하였다. 鄭絪이 撰한 〈唐故正議大夫守戶部尙書贈太子太傅廣平劉公墓誌銘并序〉가 전한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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