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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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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請遣使臣宣撫諸道遭水州縣狀
頻得鹽鐵轉運及州縣申報하니 霖雨 爲灾하여 彌月不止하여 或川瀆汎漲하고 或谿谷奔流하여 淹沒田苗하고 損壞廬舍하며 又有漂溺不救하고 轉徙乏糧하여 喪亡流離 數亦非少라하니


2. 사신使臣을 파견하여 수해를 입은 제도諸道주현州縣선무宣撫하도록 청하는 주장奏狀
7-2-1 주현州縣의 보고가 자주 올라오는데, 장마가 수재를 일으켜 한 달이 넘도록 그치지 않아 어떤 곳에서는 하천이 범람하고 계곡물이 범람하여 전묘田苗를 집어삼키고 가옥을 망가뜨리며, 게다가 물에 떠내려가 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 양식이 부족하여 죽거나 흩어진 자들의 수 또한 적지 않다고 합니다.


역주
역주1 鹽鐵轉運使 : 唐나라 先天 2년(713)에 李傑이 처음으로 水陸發運使가 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開元 21년(733)에 裵耀卿이 門下侍中의 신분으로 江南․淮南轉運使를 겸임하였고, 天寶 1년(742)에는 韋堅이 句當轉運使를 맡고 第五琦가 諸色轉運使를 맡았으며, 劉晏이 諸路轉運使를 맡았다. 이후 韓滉․杜悰․杜讓能․崔昭緯 등이 모두 재상의 신분으로 전운사를 겸임하였다. 여러 도에 나누어 설치한 巡院도 모두 전운사에 속했다.(≪文獻通考≫ 〈職官考〉) 원래 鹽鐵使는 唐 肅宗 乾元 원년(758)에 第五琦를 諸道鹽鐵使로 임명하면서 처음 설치되었는데, 소금․철․차에 대한 전매와 징세를 담당하였다. 代宗과 德宗의 시기에는 轉運使와 합쳐서 하나의 직책이 되었다. 전운사는 唐 玄宗 先天 2년(713)에 水陸發運使를 두어서 낙양과 장안 간의 조운을 담당하게 하였고, 開元 22년(713)에 裴輝卿을 江淮河南轉運使로 삼아서 동남 지역의 수륙 운송을 관장하게 하였고, 이후 諸道轉運使를 두어 전국 양식의 조발을 담당하였다. 安史의 난 이후 전국에 巡院을 두면서 염철사와 합쳐지게 되었다. 鹽鐵轉運使는 唐 代宗 寶應 元年(762)에 通州刺史 劉安을 戶部侍郞 京兆尹 度支鹽鐵轉運使로 임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염철전운사는 度支使가 겸하던가 재상 중에 淮南과 浙西의 절도사를 역임한 자가 겸하였다. 官署는 대부분 揚州에 설치되었으며 長安과 揚子, 江陵 등에는 留後를 두고 여러 道에는 巡阮을 설치하였다. 度支와 戶部와 함께 三司使로 불렸으며 전국 재정의 사무를 관장하였다.
역주2 : 옛날에 글을 쓸 때 우측으로부터 써 내려가므로 官爵과 姓氏 등을 맨 오른쪽에 쓰게 된다. 따라서 右는 써야 할 관작과 성씨 등을 대신하는 것이다.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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