及乎重圍既解
하고 諸道稍通
하니 賦稅漸臻
하고 貢獻繼至
하니 乃於行宮外廡之下
에 復列瓊林大盈之司
注+① 其詳已見奉天請罷瓊林大盈二庫狀.하여 未賞功勞
하고 遽私賄玩
하니
甚沮惟新之望하고 頗攜死義之心하여 於是에 輿誦興譏하고 而軍士始怨矣라 財聚人散이 不其然歟아
旋屬蟊賊內攻
하여 翠華南狩
하니 奉天所積財貨
가 悉復殲於亂軍
이라 既遷岷梁
에 日不暇給
이러니 獨憑大順
하여 遂復皇都
注+② 本紀 “建中四年十月, 涇原節度使姚令言反, 犯京師. 戊申, 如奉天. 朱泚復犯奉天. 興元元年二月, 李懷光反. 如梁州. 五月, 李晟復京師.”하니
是知天子者는 以得人爲資하고 以蓄義爲富하니 人苟歸附하면 何患蔑資하며 義苟修崇하면 何憂不富완대 豈在貯之內府라사 方爲己有哉리오
故藏於天下者는 天子之富也요 藏於境內者는 諸侯之富也요 藏於囷倉篋匱者는 農夫商賈之富也어늘
柰何以天子之貴와 海內之富로 而猥行諸侯之棄德하여 蹙守農商之鄙業哉아
11-1-22 겹겹이 포위됐던 것이 풀리고
제도諸道가 조금 통하게 됨에 미치어
부세賦稅가 점차 이르고 공물이 연달아 다다르자
행궁行宮의 바깥 행랑 아래에 다시
경림고瓊林庫와
대영고大盈庫를 벌여두어
注+① 瓊林大盈之司:상세한 내용은 〈奉天請罷瓊林大盈二庫狀〉에 이미 보인다. 공로에 대해서는 포상하지 않고 느닷없이 사유화하여 재물을 마음대로 주물렀으니,
국가를 새롭게 할 기대를 심히 저해하고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떠나가게 하여, 이에 비난과 의론이 일어나고 군사들이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재물은 모았지만 인민은 흩어진다 한 것이 과연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얼마 안 있어
봉천에 모아둔 재화가 반군들에 의해 모두 탕진되었으며,
민량岷梁(
양주梁州)으로 옮긴 뒤에는 날마다 양식을 공급할 겨를도 없었는데, 오로지 하늘의 순리에 힘입어 마침내
황도皇都를 수복하였습니다.
注+② 既遷岷梁……遂復皇都:≪新唐書≫ 〈德宗本紀〉에 “建中 4년(783) 10월에 涇原節度使 姚令言이 반란을 일으켜 京師를 침범하였다. 〈어가가〉 무신일에 봉천으로 간 뒤에 朱泚가 다시 봉천을 침범하였다. 興元 원년(784) 2월에 李懷光이 반란을 일으키니, 〈어가가〉 梁州로 갔다. 5월에 李晟이 경사를 수복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천자된 자는 사람을 얻는 것을 밑천으로 삼고 의리를 축적하는 것을 부유함으로 삼아야 함을 알 수 있으니, 사람들이 귀부歸附하기만 한다면 재물이 없음이 무슨 근심이고 의리가 융성하게 닦이기만 한다면 부유하지 못함이 무슨 걱정이겠기에, 어째서 내부內府에 모은 재물을 자신의 소유로 여겨야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천하에 보관하는 것이 천자의 부유함이고 경내에 보관하는 것이 제후의 부유함이며, 곳집과 상자에 보관하는 것이 농부와 상인의 부유함이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천자라는 고귀한 신분과 사해四海 안의 모든 것을 소유한 부유함을 가지고 외람되게도 제후들의 몹쓸 덕을 행하고 좀스럽게 농부와 상인들의 비천한 일을 고수하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