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國家 自祿山構亂으로 肅宗中興하사 撤邊備하여 以靖中邦하고 借外威하여 以寧內難하니
於是 吐蕃乘釁하여 呑噬無厭注+① 吐蕃傳 “德宗卽位, 累與吐蕃通使結盟. 朱泚之亂, 吐蕃請助討賊. 渾瑊用論莽羅兵破泚將韓旻于武亭川. 初與虜約, 得長安以涇․靈四州畀之. 會大疫, 虜輒引去. 及泚平, 責先約求地. 帝止償帛萬匹, 虜以爲怨, 乃數入寇.”하고 回紇矜功하여 馮凌亦甚注+② 肅宗卽位, 遣使來, 請助討安祿山, 遂同廣平王破賊, 進復長安. 恃功驕橫, 數如吐蕃入寇, 代宗每優容之. 納一馬取直四十縑, 可汗遣使索償馬直一百八十萬. 德宗隱忍, 賜以金帛. 事見回紇傳.하니 中國 不遑振旅 四十餘年이라
使傷耗遺甿으로 竭力蠶織하여 西輸賄幣하고 北償馬資호되 尙不足塞其煩言注+③ 左定四年 “衛子行敬子言於靈公曰 ‘會同難, 嘖有煩言.’” 杜預云 “煩言, 忿爭也.”하며 滿其驕志일새
復又遠徵士馬하여 列戍疆陲호되 猶不能遏其奔衝하며 止其侵侮하여
小入則驅略黎庶하고 深入則震驚邦畿하니
時有議安邊之策者 多務於所難而忽於所易하며 勉於所短而略於所長하여
遂使所易所長者 行之而其要不精하고 所難所短者 圖之而其功靡就하니 憂患未弭 職斯之由


9-1-6 국가에서 안녹산安祿山이 난을 일으키고부터 숙종肅宗께서 중도에 다시 일어나셔서 변방의 수비를 거두어 중원을 평정하시고 외세의 힘을 빌려 내란을 안정시켰습니다.
이에 토번吐蕃이 빈틈을 타서 계속 병탄을 일삼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注+① 吐蕃乘釁 呑噬無厭:≪新唐書≫ 〈吐蕃傳〉에 “德宗이 즉위하여 여러 차례 吐蕃과 사신을 통해 맹약을 맺었다. 朱泚의 난이 일어나자 토번이 역적의 토벌을 돕기를 청하였다. 渾瑊은 論莽羅의 병사를 이용하여 주자의 장수 韓旻을 武亭川에서 격파했다. 처음에 오랑캐와 약조하기를 長安을 수복하면 涇州와 靈州 등 네 개의 주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역병이 크게 돌자 오랑캐가 갑자기 철병했다. 그 뒤 주자의 난이 평정되고 난 뒤에 앞서 약속했던 땅을 요구했다. 덕종이 단지 그들에게 만 필의 비단으로 보상하자 오랑캐가 원한을 품어 이에 자주 쳐들어왔다.”고 하였다. 회흘回紇이 공적을 자랑하여 침해하고 욕보이기를 심하게 하는데도,注+② 廻紇矜功 馮凌亦甚:“肅宗이 즉위하자 〈回紇이〉 사자를 보내어 와서 安祿山의 토벌을 돕기를 청하니, 과 함께 적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장안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공적을 믿고서 횡포를 부리고 토번과 같이 자주 쳐들어왔으나 代宗이 매번 너그럽게 이를 용납하였다. 그들이 말 한 필을 바치면 비단 40필의 값을 취해갔는데, 可汗이 사자를 보내 말 값에 대한 보상으로 비단 180만 필을 요구하였다. 德宗이 감정을 억누르고 금과 비단을 주었다.”고 하니, 이 일은 ≪新唐書≫ 〈回鶻傳〉에 보인다. 중국이 군대를 정돈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 40여 년입니다.
그 결과 피폐해진 유민들로 하여금 힘을 다해 누에를 치고 길쌈하여 서쪽(토번)으로는 뇌물로 줄 폐물을 실어 나르고 북쪽(회흘)으로는 말 값을 치렀는데도 오히려 그 번거롭게 요구하는 말에 부응하고注+③ 煩言:≪春秋左氏傳≫ 定公 4년에 “衛나라 대부 子行敬子가 靈公에게 ‘이번 會同에는 일이 잘 진행되기 어려우니, 서로 큰소리를 내며 성내고 다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하였는데, 杜預가 이르기를 “‘煩言’은 성내고 다투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교만한 뜻을 채우기에 부족합니다.
또다시 멀리서 병사와 말을 징발하여 변경을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이 갑자기 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침범하고 오만불손하게 구는 것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변경 근처를 쳐들어올 때에는 백성들을 약탈하고 깊이 침입해 들어올 때에는 기내畿內를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이때에 변방을 안정시킬 계책을 논의하는 자들 중에는 하기 어려운 것에는 힘쓰면서도 하기 쉬운 것에는 소홀히 하거나 부족한 것에 매달려서 뛰어난 것을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쉬운 것과 뛰어난 것으로 하여금 행하여도 그 요령이 정밀하지 못하게 하고 어려운 것과 부족한 것으로 하여금 도모하여도 그 공을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니, 우환이 그치지 않음은


역주
역주1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 원문은 ‘職斯之由’다. ≪春秋左氏傳≫ 襄公 14년에 “오늘날 제후가 우리 임금을 섬기는 것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말이 새어 나가서인데, 이는 오로지[職] 너희들 때문이다.[今諸侯之事我寡君不如昔者 蓋言語漏洩 則職女之由]”라고 한 것이 보인다.
역주2 廣平王 : 肅宗의 長子로 어머니는 章敬皇太后 吳氏다. 初名이 俶이었고, 이후에 代宗으로 즉위했다.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