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聞耀乘之珠
注+① 田敬仲世家 “威王與魏王會田於郊. 魏王問曰 ‘王亦有寶乎.’ 威王曰 ‘無有.’ 魏王曰 ‘若寡人國小也, 尙有徑寸之珠照車前後各十二乘者十枚.’”는 不能無纇
하고 連城之璧
注+② 魏文帝謝鍾繇玉玦書 “不連城之價.” 趙惠文王得和氏之璧, 秦昭王聞之, 使人遺趙王書, 願以十五城易璧, 故謂之連城. 見史記藺相如傳.은 不能無瑕
라하니 矧伊有情
이 寧免愆咎
리오
仲尼至聖也로되 猶以五十學易이면 無大過로 爲言하시고 顏子殆庶也로되 尙稱不遠而復하여 無祗悔가 爲美라하니 況自賢人以降으로 孰能不有過失哉리오
珠玉이 不以瑕纇而不珍하며 髦彥이 不以過失而不用이니
故玄元之教에 曰 常善救人하면 則無棄人이라하고 文宣이 亦云호되 赦小過하며 擧賢才라하고
齊桓
은 不以射鉤而致嫌
일새 故能成九合之功
注+③ 管子內言云 “公孫無知旣立, 鮑叔牙奉公子小白奔莒, 管夷吾․召忽奉公子糾奔魯. 雍廪殺無知, 公自莒先入. 魯人伐齊, 戰于乾, 時管仲射(威)[桓]公中鉤. 魯公敗績. (威)[桓]公踐位, 聽鮑叔之言, 以相夷吾. 故(威)[桓]公兵車之會六, 乘車之會三, 九合諸侯, 以定天下.”하고 秦穆
은 不以一眚而掩德
일새 故能復九敗之辱
注+④ 左僖公三十三年 “晉敗秦師于殽. 秦伯鄕師而哭曰 ‘孤違蹇叔, 以辱二三子, 孤之罪也. 不替孟明, 孤之過也. 大夫何罪. 且吾不以一眚掩大德.’ 復使孟明爲政. 文公二年, 秦․晉戰于彭衙, 秦師敗績, 秦伯猶用孟明.” 三年 “秦伯伐晉, 濟河焚舟, 取王官及郊, 晉人不出, 遂自茅津濟, 封殽尸而還. 遂霸西戎, 用孟明也.”하고
前史
에 序項籍之所以失天下
호되 曰 於人之功
에 無所記
요 於人之過
에 無所遺
注+⑤ 酈食其說齊王曰 “項王有背約之名, 殺義帝之負, 於人之功無所記, 於人之罪無所忘.”라하며 管仲
이 論鮑叔牙
를 不可屬國
이라하여 曰 聞人
過
하면 終身不忘
注+⑥ 管子內言 “管仲寢疾, (威)[桓]公往問之, 曰 ‘仲父不幸, 而不起此疾, 政將安移之. 鮑叔何如.’ 仲曰 ‘ 鮑叔, 君子也. 千乘之國, 不以其道予之, 不受也. 雖然, 不可以爲政. 其爲人也好善, 而惡惡已甚, 見一惡, 終身不忘.이라하니
然則棄瑕錄用者는 霸王之道요 記過遺才者는 衰亂之源이라
夫登進以懋庸하고 黜退以懲過를 二者迭用하여 理如循環이니
進而有過則示懲하고 懲而改修則復進하여 旣不廢法하고 亦無棄人일새 雖纖芥必懲이나 而才用不匱라
故能使黜退者로 克勵以求復하며 登進者가 警飭以恪居하여 上無滯疑하고 下無蓄怨하여 俾人於變하여 以致時雍이니이다
陛下가 英聖統天하시고 威莊肅物하사 好善旣切하나 計過亦深하여 一抵譴責之中하면 永居嫌忌之地하니
夫以天下士人이 皆求宦名하나 獲登朝班이 千百無一이라
其於修身勵行과 聚學樹官에 非數十年間이면 勢不能致어늘
而以一言忤犯과 一事過差로 遂從棄捐하여 沒代不復하면 則人才가 不能不乏하며 風俗이 不能不偸니 此所謂嫉惡太甚之患也라
11-2-7 신이 듣건대 수레를 밝게 비출 수 있는
보주寶珠도
注+① 耀乘之珠:≪史記≫ 〈田完世家〉에 “齊 威王과 魏王(魏 惠王)이 교외에서 사냥하기 위해 모였다. 魏王이 묻기를 ‘왕께서도 보물이 있으십니까?’ 하자 威王이 말하기를 ‘없습니다.’라 하였다. 魏王이 말하기를 ‘과인의 나라는 작지만 수레 앞뒤로 각각 12승을 비출 수 있는 지름 한 마디짜리 구슬이 열 개가 있습니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흠이 없을 수 없고 여러 성과 바꿀 만한
벽옥璧玉도
注+② 連城之璧:魏 文帝의 〈에 “連城의 값어치를 손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趙 惠文王이 和氏의 玉을 얻었는데 秦 昭王이 그것을 듣고 사람을 시켜 趙王에게 편지를 보내 열다섯 개의 성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때문에 連城이라 이른 것이다. ≪史記≫ 〈藺相如傳〉에 보인다. 티끌이 없을 수 없다고 하니, 하물며 이 감정을 가진 자들이 어찌 허물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孔子는
지성至聖이신데도 오히려
고 말씀하셨고,
안연顏淵은 거의 성인에 가까웠는데도 오히려
하물며
현인賢人으로부터 그 이하의 사람 치고 누군들 잘못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顔子
주옥珠玉은 티끌이나 흠이 있다고 해서 보배롭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인재는 잘못이 있다고 해서 쓰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의 가르침에 말하기를
라 하였고,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이 또 이르기를
라 하였고,
老子
제齊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이 자신의 혁대 띠쇠를 맞췄다는 이유로 혐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제후를 규합하는 공을 이룰 수 있었고,
注+③ 齊桓……九合之功:≪管子≫ 〈內言〉에 이르기를 “公孫無知가 즉위하고 나서 鮑叔牙가 公子 小白을 받들어 莒로 달아났고, 管夷吾(管仲)와 召忽은 公子 糾를 받들어 魯로 달아났다. 雍廪이 無知를 죽이자 桓公이 莒에서부터 먼저 들어왔다. 魯나라 사람들이 齊나라를 칠 적에 乾에서 싸웠는데, 그때 관중이 환공의 혁대 띠쇠를 맞췄다. 魯公이 패전하였다. 환공이 왕위에 오른 뒤에 포숙의 말을 듣고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환공 때에 兵車가 모이기를 여섯 번, 乘車가 모이기를 세 번 하여 아홉 번 만에 제후들을 규합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라고 하였다. 진秦 목공穆公은 한 가지 허물로 덕을 덮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홉 번 패한 치욕을 갚아줄 수 있었습니다.
注+④ 秦穆……九敗之辱:≪春秋左氏傳≫ 僖公 33년에 “晉나라가 殽에서 秦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다. 秦伯이 군대를 향해 곡을 하고 말하기를, ‘내가 蹇叔의 말을 따르지 않아 그대들을 욕보였으니, 나의 죄다.’라고 하였으며, 孟明을 교체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의 잘못이다. 대부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또한 나는 허물 한 가지로 큰 德을 덮어버리지 않는다.’라고 하고는 다시 맹명에게 정사를 맡겼다. 文公 2년에 秦나라와 晉나라가 彭衙에서 싸웠다가 秦나라 군대가 패배하였지만 秦伯은 여전히 맹명을 기용했다.” 하였다. 3년에 “秦伯이 晉나라를 정벌할 적에 황하를 건넌 후 배를 불태우고서 王官을 취하고 晉나라의 近郊에까지 갔으나 晉軍이 出戰하지 않자 마침내 茅津에서 황하를 건너 殽의 전쟁에서 죽은 秦軍의 屍身을 수습해 埋葬하고서 還軍하였다. 결국 西戎의 霸主가 되었으니, 이는 맹명을 중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였다.
지난
사서史書에
항적項籍이 천하를 잃은 원인을 기록함에 “다른 사람의 공은 기억하는 바가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은 내버려두는 바가 없었다.”고 하였으며,
注+⑤ 項籍之所以失天下……無所遺: 관중은
포숙아鮑叔牙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됨을 논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注+⑥ 管仲……聞人之過 終身不忘:≪管子≫ 〈內言〉에, “관중이 병석에 눕게 되자 환공이 가서 조문하고는 말하기를, ‘중보가 불행히도 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政務를 누구에게 옮겨주어야 하겠소? 포숙은 어떻겠소?’라고 하였다. 관중은 말하기를 ‘포숙은 군자이니, 千乘의 나라라 할지라도 합당한 도에 따라서 주지 않으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에게 정무를 하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는 사람됨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너무 지나쳐서 하나의 악행만 보아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그렇다면 허물을 잊고 녹용함은 패왕霸王의 도리이며 허물을 기억하여 인재를 버려둠은 쇠란의 근원입니다.
관직에 등용하여 공을 북돋고 내쳐서 잘못을 징계하는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사용하여 만물이 순환하듯이 하여야 하니,
등용하였다가 잘못이 있거든 징계하는 뜻을 보이고 징계하여 뉘우치고 고치면 다시 등용하여 법을 폐함도 없고 인재를 버리는 일도 없도록 합니다. 이에 비록 작은 잘못을 반드시 징계하지만 재능 있는 자가 결핍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내친 자들은 힘써서 복귀하기를 바라고 등용된 자들은 경계하고 신칙하여 조심스럽게 처신하여 위로는 마음에 적체된 의심이 없고 아래로는 쌓인 원망이 없어서 인민을 변화시켜
에 이를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영성英聖함이 온 천하를 거느리시고 위엄이 만물을 엄숙하게 하셔서 선善을 좋아함이 이미 간절하시지만 잘못을 헤아리심 또한 깊으셔서 한 번 견책의 가운데 맞닥뜨리게 되면 영원히 미워하고 꺼리는 곳에 처하게 됩니다.
천하의 사인士人들이 모두 관명官名을 구하지만 뜻대로 조정의 반열에 오르는 자는 천 명 백 명 가운데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몸을 닦고 행동을 다듬고 학문을 쌓고 관리의 자질을 세우기를 수십 년 동안 하지 않으면 형세상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말이 뜻에 저촉되고 한 가지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마침내 버려져서 영영 회복되지 못한다면 인재가 부족해지지 않을 수 없고 풍속이 거칠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악을 미워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는 근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