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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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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夫布腹心而用耳目 舜與紂 俱用之矣로되 舜之意 務求己之過하여 以與天下同欲而無所偏私하니
由是 天下臣庶 莫不歸心하여 忠讜既聞하고 玄徳逾邁
故虞書 云 臣作朕股肱耳目이라하고 又云 明四目하며 達四聰이라하니 言廣大也
紂之意 務求人之過하여 以與天下 違欲而溺於偏私하니 由是 天下臣庶 莫不離心하여 險詖既行하고 昬徳彌熾
故商書 云 崇信姦囘라하고 大雅云 流言以對하니 寇攘式內라하니 言邪僻也
與天下同欲者 謂之聖帝라하고 與天下違欲者 謂之獨夫라하니
其所以布腹心而任耳目之意 不殊하나 然於美惡成敗 若此相遠 豈不求過之情 有異하고 任人之道 不同哉
太宗 嘗問侍臣호되 何者爲明君이며 何者爲暗主
魏徵 對曰 君之所以明者 兼聽也 其所以暗者 偏信也라하고 又曰秦之胡亥 偏信趙高하여 肆其姦欺라가 卒至顛覆이라하니
徵之此說 理致甚明注+① 貞觀二年, 帝謂魏徵曰 “人主何爲而暗.” 對曰 “兼聽則明, 偏聽則暗. 昔堯清問下民, 故有苗之惡得以上聞. 舜明四目, 達四聰, 故共․鯀․驩兜不能蔽也. 秦二世偏信趙高, 以成望夷之禍. 梁武帝偏信朱异, 以取臺城之辱. 隋煬帝偏信虞世基, 以致彭城閣之變. 是故人君兼聽廣納, 則貴臣不得壅蔽, 而下情得以上通也.” 帝曰 “善.” 見本傳.하여 簡册備書하니 足爲鑑戒
趙高 指鹿爲馬하여 愚弄厥君하니 歷代流傳하여 莫不痛憤하나니
陛下 每覽前史하사 詳考興亡하실새 固亦切齒於斯人하며 傷心於其主하시리니
臣謂鹿之與馬 物類猶同이어니와 豈若延齡 掩有而爲無하며 指無而爲有리잇고
陛下 若不以時省察하시면 得無使後代 嗟誚 又甚趙高者乎
愚臣所以焦慮疚懐하여 以陛下爲過者 良有所以也니이다


11-1-18 복심腹心을 포진하고 이목耳目을 등용함은 임금과 주왕紂王 모두가 썼던 바이지만, 순임금의 뜻은 자신의 허물을 구하는 데 힘써서 천하 사람들과 하고자 하는 바를 함께할 뿐 편벽되고 사사롭게 하는 바가 없도록 하였던 것이니,
이로 인하여 천하의 신민臣民 모두가 귀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충직한 말을 이미 듣고서 그윽한 덕에 더욱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우서虞書〉에 이르기를 고 하였으며, 또한 고 하였으니, 〈사방에서 보고 들음을〉 광대하게 하였음을 말한 것입니다.
반면에 주왕의 뜻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구하는 데 힘써서 천하의 사람들과 하고자 하는 바를 어긋나게 추구하여 편벽되고 사사로운 데 빠져들었으니, 이로 인하여 천하의 신민들 모두가 마음을 떠나지 않음이 없게 되어 음험함과 편벽됨이 횡행하고 혼미한 덕이 더욱 치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서商書〉에 이르기를 고 하였고, 〈대아大雅〉에 이르기를 고 하였으니, 그 간사하고 편벽됨을 말한 것입니다.
천하 사람들과 하고자 하는 바를 함께하는 자를 일러 성제聖帝라 하고 천하의 사람들과 하고자 하는 바를 어긋나게 추구하는 이를 일러 독부獨夫라 하니,
복심腹心을 포진하고 이목耳目을 임용하고자 한 뜻은 서로 다르지 않지만 그 미악美惡성패成敗가 이처럼 현격하게 다름은 어찌 허물을 구하는 마음이 서로 다르고 사람을 임용하는 방법이 서로 같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태종太宗(이세민李世民)께서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물으시기를, “어떤 자를 현명한 군주라 하고 어떤 자를 혼매한 군주라 하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위징魏徵이 대답하기를, “군주가 현명하게 되는 것은 두루 경청하기 때문이고, 혼매하게 되는 것은 편벽되게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고, 또한 라고 하였습니다.
위징의 이 말은 이치가 매우 분명하여注+① 太宗嘗問侍臣……理致甚明:貞觀 2년(628)에 태종이 위징에게 일러 말하기를 “人主가 무엇 때문에 혼매해지는가?”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면 밝은 군주가 되고 몇몇 사람의 말만 들으면 혼매한 군주가 됩니다. 옛날에 堯임금은 下民들에게 자세히 묻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有苗의 죄악이 위로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舜임금은 사방의 눈을 밝게 살피고 사방의 소리를 밝게 들었기 때문에 共工․鯀․驩兜가 죄악을 은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秦나라 二世皇帝는 趙高를 편벽되이 믿었다가 望夷宮의 禍를 이루었고, 이 때문에 人君이 두루 경청하고 널리 받아들이면 지위가 높은 신하들이 군주의 총명을 가리지 못하여 아랫사람의 마음이 위로 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태종이 “좋다.” 하였다. ≪新唐書≫ 〈魏徵傳〉에 보인다. 간책簡冊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감계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조고는 역대로 유전하여 통분해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魏徵魏徵
폐하께서는 전사前史를 열람하시며 흥망의 원인을 상세히 고찰하실 때마다 진실로 이자에 대해 이를 갈고 그 군주에 대해 마음 아파하셨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는 사슴과 말은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그나마 같다 할 것이니, 어찌 배연령이 있는 것을 덮어서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가리켜 있다고 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폐하께서 만약 수시로 살피지 않으신다면 후대의 탄식과 꾸짖음이 조고보다 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곧 어리석은 신이 애를 태우고 속을 썩여가며 폐하께서 잘못하셨다고 여긴 것이니, 이는 참으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역주
역주1 신하는……달라 : ≪書經≫ 〈虞書 益稷〉에 보인다.
역주2 사방의……하였다 : ≪書經≫ 〈虞書 舜典〉에, 舜임금이 즉위하고 나서 “四岳에게 자문을 구하며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사방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밝게 하고 사방의 귀로 자신의 귀를 통하게 하였다.[詢于四岳 闢四門 明四目 達四聰]”고 하였다.
역주3 간사한……믿는다 : ≪書經≫ 〈周書 泰誓 下〉에 보인다.
역주4 流言으로……있다 : ≪詩經≫ 〈大雅 蕩〉에 “文王이 말씀하셨다. ‘아 슬프다 너희 殷商아. 네 선한 부류들을 써야 할 것이건만, 강포하여 원망이 많은 자로 하여금 유언으로써 응대하게 하니, 도둑질하는 자가 안에 있는지라, 그 저주함이 끝이 없고 다함이 없도다.’[文王曰 咨 咨女殷商 而秉義類 彊禦多懟 流言以對 寇攘式內 侯作侯祝 靡屆靡究]”라고 하였다. ≪詩經集傳≫에서는 ‘流言以對 寇攘式內’를 ‘유언으로써 응대하게 하니, 이것은 곧 도둑질하는 자가 안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역주5 秦나라의……이르렀습니다 : 胡奚는 秦나라의 2대 황제이며, 趙高는 환관이다. 始皇帝가 平臺에서 죽자, 승상 李斯와 짜고 조서를 조작하여 시황제의 맏아들 扶蘇와 장군 蒙恬을 자결하게 만들고, 막내 호해를 二世皇帝로 즉위시켰다. 조고는 황실의 公子와 公女 24인을 죽이고, 승상 이사마저 숙청한 후 권력을 잡았으나 결국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子嬰을 秦王에 옹립하였다. 그러나 조고는 오히려 자영에게 죽임을 당하고 劉邦을 위시한 반란군에게 자영이 살해됨으로 진나라도 멸망하고 말았다.(≪史記≫ 〈秦始皇本紀〉)
역주6 사슴을……우롱하였으니 : 秦나라의 환관으로 丞相이 된 趙高가 신하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二世皇帝 胡亥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속여 바친 고사를 말한다.(≪史記≫ 〈秦始皇本紀〉)
역주7 梁나라……취하였고 : 남북조 때에 東魏의 侯景이 河南을 가지고 西魏에 항복했다가 다시 배반하여 梁나라에 귀순하니, 양나라가 후경을 河南王에 봉하였다. 그 뒤 동위가 양나라에 서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하니, 그 수용 여부를 두고 양나라 조정에서는 논란이 분분하였는데, 傅歧가 말하기를 “동위가 화친을 청한 것은 후경의 마음을 불안하게 할 목적을 둔 이간책입니다. 동위와 우호를 맺으면 후경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하며 반대하였으나, 梁 武帝 蕭衍은 朱异 등의 주장에 따라 화친을 허락하였다. 이에 후경이 “나는 본래 吳老公이 薄心腸인 줄을 알고 있었다.” 하고, 드디어 반란할 뜻을 품었다. 본디 무제는 유학을 중히 여겼으나 뒤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臺城에 同泰寺를 짓고 이곳에서 세 번이나 捨身하였으며, 모든 제사에 犧牲을 없애고 밀가루로 빚어 대신하게 하였는데, 후경이 반란을 일으켜 대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그곳에서 굶어 죽었다. ‘대성의 치욕’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南史≫ 〈賊臣列傳〉, ≪資治通鑑≫ 권161 〈梁紀〉)
역주8 隋나라……이루었습니다 : 隋나라 煬帝는 恭帝 2년(618) 3월에 江都에서 宇文化及에게 시해당하였다. 이 일이 있기 전에 ‘五貴’의 한 사람인 裴蘊이 虞世基에게 역모 사실을 알렸으나 우세기가 사실대로 고하지 않아 방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시해당하였다.(≪隋書≫ 〈虞世基傳〉)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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