陛下가 又以百度弛廢로 志期肅淸하실새 持義以掩恩하며 任法以成理하사
斷速則寡恕於人하여 而疑似之間을 不容辯也요 察精則多猜於物 而臆度之際에 未必然也라
寡恕則重臣懼禍하여 反側之釁이 易生이요 多猜則群下防嫌하여 苟且之風이 漸扇일새
是以叛亂繼起하며 怨讟竝興하여 非常之虞를 億兆同慮어늘
惟陛下
는 穆然凝邃
하사 獨不得聞
하여 至使兇卒鼓行
하여 白晝犯闕
호되 重門
에 無結草之禦
注+① 左宣十五年 “秋, 晉魏顆敗秦師于輔氏, 獲杜回. 秦之力人也. 初, 魏武子有嬖妾, 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殉.’ 及卒, 顆嫁之, 曰 ‘疾病則亂. 吾從其治也.’ 及輔氏之役, 顆見老人結草以亢杜回, 杜回躓而顛, 故獲之. 夜夢之曰 ‘余而所嫁婦人之父也. 爾用先人之治命. 余是以報.’”하고 環衛
에 無誰何之人
하니
自古禍變之興이 未有若斯之易니 豈不以乘我間隙하여 因人攜離哉아
陛下가 有股肱之臣하며 有耳目之任하며 有諫諍之列하며 有備衛之司호되 見危不能竭其誠하며 臨難不能效其死하니 所謂致今日之患이 是群臣之罪者가 豈徒言歟아
2-1-5 폐하께서는 또 온갖 제도가 무너진 것을 보시고 바로잡을 뜻을 가지시어, 공적인 의리만을 견지하여 사적인 은혜를 덮어버리고, 법에만 맡겨서 정치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영명한 결단은 너무 신속한 데서 잘못되고 밝은 살핌은 너무 정밀한 데 손상을 입었습니다.
결단이 신속하면 남을 용서함이 적어 의심하는 사이에 변론을 용납하지 않고, 살핌이 정밀하면 남을 시기함이 많아서 억측하는 때에 반드시 합당하지 못합니다.
용서함이 적으면 중신들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을 저지르기 쉽고, 시기함이 많으면 아래 사람들이 혐의를 꺼려 구차하게 모면하려는 기풍이 점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반란이 연달아 생겨나고 원망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비상한 변고를 온 백성이 함께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폐하께서는 조용히 깊은 궁궐에 거처하여 유독 이런 사실을 듣지 못하시어, 결국 흉포한 군졸로 하여금 북을 치며 행군하여 백주에 대궐을 범하게 하였지만,
중문重門에는
결초結草의 막음도 없었고<원주내용 no="62" 식별자="ID:LW62_T">① 重門無結草之禦:≪春秋左氏傳≫ 宣公 15년 조에 “가을에 晉나라 魏顆가 秦나라 군대를 輔氏
금군禁軍에는
를 묻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자고로 변란이 일어난 것이 이렇게 쉬운 적이 없었으니, 어찌 우리의 간극을 틈타서 사람들의 이반한 마음을 이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폐하께는 고굉股肱의 신하가 있고 이목耳目의 임무를 맡은 자들이 있으며 간쟁諫諍의 반열이 있고 호위를 맡은 관사官司가 있거늘, 위기를 보고도 그 정성을 다하지 않고 난리에 임해서도 목숨을 바치지 않으니, 신이 이른바 “오늘날의 환난을 초래한 것이 여러 신하들의 죄다.”라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