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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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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彼吐蕃者 犬羊同類 狐鼠爲心하여 貪而多防하고 狡而無恥하여 威之不格하고 撫之不懷하니 雖或時有盛衰하나 大抵常爲邊患하여 陰詐難御 特甚諸夷하니
陛下 但擧建中已來近事하여 準之하시면 則戎心難知 固可明矣


6-1-3 저 토번吐蕃은 개나 양과 같은 부류입니다. 탐욕스러우면서도 방비하는 것이 많고 교활하면서도 부끄럼이 없으므로, 위엄을 보여도 바로잡지 않고 보듬어주어도 고마워하지 않으니, 혹 시기상 성쇠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무릇 늘 변방의 우환이 되어왔습니다. 음흉하여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다른 이민족들보다 훨씬 심합니다.
폐하께서 다만 로 헤아려보면 융적戎狄의 마음을 알기 어려움이 진실로 분명합니다.


역주
역주1 여우와……지녀 : 이는 ‘城狐社鼠’에서 온 말로, 城에서 굴을 파고 사는 여우와 社稷에 사는 쥐를 가리킨 말이다. 이 여우와 쥐를 잡고 싶으나 성을 무너뜨리거나 사당을 훼손할까 염려되는 것으로 간악한 소인배를 가리킨다.(≪晏子春秋≫ 〈問上九〉)
역주2 建中……일 : 建中 2년(781) 成德節度使 李寶臣이 죽은 후 부친의 지위를 세습해줄 것을 요구한 李惟岳의 요청을 거절하자 李惟岳이 魏博節度使 田悅, 淄靑節度使 李正己, 山南東道節度使 梁崇義 등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建中 2년(781)부터 建中 3년(782)까지 河北 藩鎭의 田悅․李納․朱滔․王武俊, 淮西 藩鎭의 李希烈이 차례로 반란하자 唐나라 조정은 정벌군을 파견하였으므로 關中이 비고 말았다. 建中 4년(783), 淮西節度使 이희열이 襄城을 공격하자 德宗은 哥舒曜를 보내 토벌케 하였으나 오히려 위기에 빠졌으므로 涇原의 군대를 파견하여 구원하도록 하였다. 그해 涇原의 군졸들이 淮西로 반란군을 토벌하러 가다가 長安을 경유할 때 소요를 일으켰다. 장안에는 아우 朱滔의 모략으로 太尉 朱泚가 감금되어 있었는데, 반군들은 주자를 옹립하였다. 덕종이 奉天(지금의 陝西省 乾縣)으로 피신하였다. 이것을 ‘涇原兵變’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주도․왕무준․전열․이납 네 사람이 왕을 참칭하고 주자와 이희열이 각각 秦帝와 楚帝를 참칭하였는데, 이를 ‘二帝四王之亂’이라고 일컫는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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