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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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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前日 蒙恩召見할새 陛下 敍說涇原叛卒 驚犯宮闕 及初行幸之事注+① 逆臣朱泚傳云 “李希烈圍哥舒曜於襄城, 詔涇原節度使姚令言督鎭兵五千東救曜, 過闕下, 師次滻水, 京兆尹王使吏供軍, 糲飯菜肴, 衆怒不肯食, 群譟曰 ‘吾等棄父母妻子前死敵, 而乃食此, 庸能持身蹈白刃耶. 今瓊林․大盈庫寶貲如山, 尙何往.’ 乃盡甲反旗而鼓. 帝使使者開諭, 賊已陣通化門. 詔集六軍, 無至者. 帝與百餘騎出狩奉天. 賊遂突入含元殿, 掠宜春苑, 入諸宮. 爭盜貲寶, 終夜不絶. 時朱泚坐其弟滔累, 自鳳翔還京師, 使中人監其第. 賊衆遂推泚爲主. 泚僭卽皇帝位於宣政殿, 號大秦, 乃自將兵攻圍奉天.”하시고 因自剋責하사 辭旨過深이어시늘
奏云 陛下 引咎在躬하시니 誠堯舜至德之意 竊有所見하여 以爲致今日之患者 群臣之罪也라한대
陛下 又曰 卿以君臣之禮 不忍歸過於朕이라 故有此言이나 然自古國家興衰 皆有天命하니 今遇此厄運 雖則是朕失德이나 亦應事不由人이라하시고
未及對詔之間 陛下 遂言及宗祧하사 涕泗交集하시니
主憂臣憤 人理之常이라 情激於衷하여 不覺嗚咽이러니 旋屬游瓌 請對하여 臣言 未獲畢辭하니 今輒上煩하여 以盡愚懇하노이다


2-1-1 신은 전일에 소견召見해주시는 은총을 입었을 적에, 폐하께서는 경원涇原의 반졸이 궁궐을 침범한 일과 처음에 행행行幸한 일을 말씀하시고注+① 及初行幸之事:≪新唐書≫ 〈李希烈朱泚傳〉에 “李希烈이 哥舒曜을 襄城에서 포위하자, 涇原節度使 姚令言에게 조칙을 내려 鎭의 군사 5천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서 가서요를 구하도록 하였다. 군사들이 궐하를 지나가다가 滻水(산수)에서 주둔하자, 京兆尹 王雄이 관리를 시켜 군사에게 음식을 공급하게 했는데, 쭉정이 밥에 채소 반찬이었으므로 군중이 노하여 먹으려 하지 않고 모여서 떠들기를 ‘우리들은 부모처자를 버리고 적에게 나아가 죽을 것인데 도리어 이런 것을 먹어야 하니, 어찌 능히 자신의 몸을 가지고 시퍼런 칼날을 무릅쓸 수 있겠는가. 지금 瓊林庫와 大盈庫에는 보물과 물자가 산과 같이 쌓였거늘 어디로 갔단 말인가.’라고 했다. 마침내 무기를 버리고 깃발을 거꾸로 들고는 북을 쳤다. 황제가 使者를 보내 開諭하였으나, 賊은 이미 通化門에 진을 쳤다. 조서를 내려 六軍을 소집하였으나 오는 자가 없으니, 황제가 백여 기와 더불어 奉天으로 도망갔다. 적은 마침내 含元殿에 돌입하고 宜春苑을 약탈하고, 여러 궁전에 쳐들어가, 다투어 재물과 보화를 도적질하여 밤이 다하도록 그치지 않았다. 당시 朱泚는 그 아우 朱滔의 허물에 연루되어, 鳳翔에서부터 京師로 돌아왔는데, 中人(환관)으로 하여금 그 집을 감시하게 했다. 적의 무리는 마침내 주자를 추대하여 군주로 삼았다. 주자는 참람하게 宣政殿에서 황제의 지위에 나아가서, 나라 이름을 大秦이라 하고, 마침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奉天을 공격하여 포위했다.”라고 하였다. 스스로를 엄하게 꾸짖으면서 말뜻이 매우 심하셨기에,
신이 아뢰기를 “폐하께서 허물을 스스로에게 돌리시니, 정말로 임금과 임금의 지극한 덕에서 우러나온 뜻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의 소견으로는 오늘날의 환난을 초래한 것은 뭇 신하의 죄라고 생각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폐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경은 군신의 예로 인해 차마 짐에게 과실을 돌리지 못하여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국가의 흥망성쇠는 모두 천명이 있으니, 지금 이러한 액운을 만난 것이 비록 짐이 덕을 잃었기 때문이지만, 또한 응당 일이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미처 말씀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폐하께서는 마침내 를 말씀하시면서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가 울분하는 것이 인간의 이치상 상도이기에, 마음속에서 감정이 격동되어 저도 모르게 오열하였습니다. 그러다 곧이어 청대請對하였으므로, 신의 말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문득 위로 성상을 번거롭게 하여 어리석은 신의 간절한 마음을 다하고자 합니다.


역주
역주1 宗祧 : 宗廟를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襄公 23년 조에 “紇이 어질지 못하여 종조를 잘 지키기 못하여[紇不佞 失守宗祧 敢告不吊 紇之罪 不及不祀]”라고 되어 있는데, 杜預의 注에 “遠祖의 廟가 祧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눈물을……흘리셨습니다 : ≪詩經≫ 〈陳風 澤陂〉에 “자나 깨나 아무 일도 못하고, 눈물만 줄줄 비오듯하네.[寤寐無爲 涕泗滂沱]”라는 표현을 변용한 것이다. 毛傳에 “눈에서 나오는 것이 涕이고 코에서 나오는 것이 泗이다.”라 하였다.
역주3 韓游瓌 : ?~798. 唐나라 將領로 靈州 靈武 사람이다. 天寶 14년(755) 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을 때, 朔方節度使 郭子儀는 裨將 韓游瓌와 辛京杲에게 精兵을 이끌고 삭방으로 가서 반란을 평정하게 하였다. 建中 4년(783)에 鳳翔․隴右의 절도사 朱泚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한유괴의 공이 으뜸이었다.
역주4 (翅)[翃] : 저본에는 ‘翅’으로 되어 있으나, ≪新唐書≫ 〈李希烈朱泚傳〉에 의거하여 ‘翃’으로 바로잡았다. ≪陸贄集≫(中華書局, 2006)에는 ‘翊’으로 되어 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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