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恐陛下가 以臣言之略而未喩也인댄 請復循其本而申備之호리이다
往以河朔靑齊가 同惡相扇하여 擁戎據土하여 易代不庭일새 陛下가 恥王化之未同하시며 忿姦慝之靡格하사
於是
에 發六軍神策河陽河東澤潞朔方之騎士
하여 以徂征于北
注+① 謂討田悅等.하시고 命永平汴宋幽隴江淮閩嶺之將卒
하여 以奮伐于南
注+② 謂討希烈等.하실새
罄國家廩帑하여 以贍軍하고 悉公私廐牧하여 以張武하니
算斂이 周於萬類하고 徵徭가 被於八荒하여 勞已甚矣하며 威亦盛矣러니
旣而曠日綿歲하여 老師費財호되 兩河之寇患이 有加無瘳하여 而邦本이 已始覆矣라
洎涇卒倡亂
하고 泚戎構災
注+③ 竝見上注.하여 豺狼
이 整居於禁闈
하고 䝟㺄
가 擇肉於馳道
하니
河朔問罪之衆은 布路而歸하고 宋郊仗順之師는 守壘不暇하여
于斯之亂이 海內沸騰하니 儻有問鼎之雄圖와 滔天之巨猾이 幸災乘間하면 何所不爲리오
旣而悅納之儔
注+④ 謂田悅․李納.가 咸自斂縮
하여 內無非望之議
하고 外無軼境之侵
이러니
及聞天澤滌瑕
하며 制書復爵
注+⑤ 奉天(改元)[所下]制云 “其李希烈․田悅․王武俊․李納及所管將士官吏, 竝與洗滌, 各復爵位.”하여는 曾不蔕芥
하고 望風款降
하여 爭馳表章
하여 唯恐居後
注+⑥ 詔拜田悅爲右僕射, 封濟陽郡王, 悅衆欣然聽命. 拜王武俊爲司空, 武俊卽黜去僞號. 李納聞帝下詔罪己, 遂復歸命, 封隴西郡王. 各見本傳.하니 迹其素志
하면 於此可知
라
6-9-6 아직 폐하께서 신臣의 말이 소략하다고 여겨서 이해하시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다시 그 근본을 따라서 자세히 아뢰기를 청합니다.
지난날
의 악한 무리를 선동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땅을 점거하여 대를 거듭하여도 조정에 조회하지 않았기에, 폐하께서는 천자의 교화가 고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시고 간특한 자들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것에 분노하셔서,
이에
육군六軍․
신책군神策軍․
하양군河陽軍․
하동군河東軍․
택로군澤潞軍․
삭방군朔方軍의
기사騎士를 출동하여 북쪽으로 가서 정벌하게 하셨고,
注+① 以徂征于北:田悅 등을 토벌하는 것을 말한다. 영평永平․
변송汴宋․
유롱幽隴․
강회江淮․
민령閩嶺의
장졸將卒에게 명하여 남쪽으로 가서 정벌하게 하셨습니다.
注+② 以奮伐于南:李希烈 등을 토벌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에 국가의 국고를 탕진하여 군수를 넉넉히 지급하셨고 공적이든 사적이든 마구간의 말과 방목하는 말을 모두 징발하여 무위를 펼치게 하였습니다.
산세算稅(인두세)는 만백성에게 두루 부과되고, 요역徭役은 팔방의 먼 지역에 두루 부과되어 수고로움이 심하였지만 위세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이윽고 여러 날이 지나고 해가 이어져 군사는 피로하고 재물은 허비하였지만 양하兩河의 역적들에 대한 근심이 더하면 더하였지 나아짐이 없어서, 국가의 근본은 이미 뒤집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경원涇原의 군졸들이 난리를 일으키고
주자朱泚의 반군이 재앙을 이룸에 이쳐
注+③ 洎涇卒倡亂 泚戎構災: 시랑豺狼 같은 자들이 궁궐을 차지하고 짐승 같은 자들이
치도馳道에서 사람을 죽이니,
하삭河朔을 정벌하러 갔던 군중은 여러 갈래길로 흩어져 돌아갔고, 송주宋州의 교외에서 조정의 명에 따라 〈역적을 토벌하는〉 군사들은 보루를 지킬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난리에
해내海內가 비등하여 만약
가진 자와 하늘을 덮는 위세를 떨치는 교활한 자가 있어, 재앙을 요행으로 삼아 틈을 탄다면 무엇인들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얼마 후
전열田悅과
이납李納의 무리들이
注+④ 悅納之儔:田悅과 李納을 일컫는다. 모두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안으로는 〈자신들을 용서할 것이라는〉 분에 넘치는 희망을 의론함도 없었고 밖으로는 경계를 범하는 침입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상의 은택이 자신들의 죄를 씻어주고
제서制書를 내려 자신들의 작위를 회복시켜준다는
注+⑤ 制書復爵:에 “李希烈․田悅․王武俊․李納과 관할의 將士와 官吏는 모두 죄를 씻어주고, 각각 본래의 爵位를 회복하게 하라.”고 하였다. 말을 듣고서는 마음에 조금도 불만이 없고 풍모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진심으로 항복하여, 다투어
표장表章을 신속하게 바쳐서 혹시라도 뒤질세라 염려하였으니,
注+⑥ 唯恐居後:조칙을 내려 田悅을 右僕射에 拜授하고, 濟陽郡王에 封하자, 전열의 군사들이 흔연히 황제의 명을 들었다. 王武俊에게 司空에 拜授하자, 왕무준은 즉각 僞號를 버렸다. 李納은 황제가 罪己詔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다시 귀순하여, 그를 隴西郡王에 封하였다. 그 일은 각 本傳에 보인다. 그 평소의 뜻을 추적해보면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모두 군대에 의지하여 군주의 원망에 목숨을 구하려는 부류요, 군주를 사모하여 구차히 안녕을 도모하는 무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