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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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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以陛下英神으로 志期平壹하시니 君臣之勢 不類하며 逆順之理 不侔하며 形勢之大小 不倫하며 師徒之衆寡 不敵이나
然尙曠歲持久하여 師老費財하여 加算 不止於舟車注+① 史平準書 “漢武帝時, 非吏比者․三老․北邊騎士, 軺車一算, 商賈軺車二算, 船五丈以上一算.” 德宗稅及間架, 又甚於此.하며 徵卒 殆窮於閩濮注+② 時諸將多益兵, 故遠如閩․濮, 亦皆征行.하여
笞肉捶骨 呻吟里閭하며 送父別夫 號呼道路하여
杼軸已空하고 興發已殫이로되 而將帥者 尙曰 財不足하고 兵不多라하니
微臣所以千慮百思而不悟其理也
未審陛下 嘗徵其說察其由乎 股肱之臣 日月獻納 復爲陛下察其事乎


1-1-9 폐하께서 영명英明하고 신무神武함으로 평정하고 통일하기를 기약하시니, 군신君臣의 형세가 같지 않으며, 역순逆順의 이치가 같지 않으며, 형세形勢의 크고 작음이 같지 않으며, 사졸의 많고 적음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오랫동안 대치하여 군대는 노쇠해지고 재용은 소모되어 세금을 거두는 것이 배와 수레에 그치지 않고注+① 加算 不止於舟車:≪史記≫ 〈平準書〉에 라고 하였는데, 덕종이 세를 부과하는 것이 집의 칸수까지 미쳤으니, 한 무제보다 심하였다. 병졸을 징발함이 자못 지역에까지 미치었습니다.注+② 徵卒 殆窮於閩濮:당시 여러 장수들이 대부분 병력 증강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멀리 변방 지역인 閩과 濮의 장병들도 모두 從軍하여 出征하였다.
매질과 채찍질에 민간에서는 신음하고, 아비와 남편을 배웅하느라 길가에서는 울부짖고 있습니다.
〈부역에 동원되어〉 베틀은 주인을 잃었고 징발할 물자도 고갈되었는데도 장수들은 여전히 “재용은 부족하고 병졸이 많지 않다.”라고 합니다.
이는 미천한 신이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보아도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는 점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는 그들의 주장을 검증하여 그 까닭을 살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폐하께서 가장 의지하는 중신들이 날로 달로 충언을 올릴 적에 다시 폐하를 위해 그 일을 살핀 적이 있습니까.


역주
역주1 漢……한다 : 漢나라 武帝 元狩 4년(B.C. 119)에 상인에게 2천 錢에 1算 즉 20전, 수공자에게 4천 전에 1산을 거두었는데, 이를 算緡令이라고 한다. 또한 같은 시기에 수레와 배에 세금을 부과한 算車令과 算船令을 시행하였다.
역주2 (諸)[請] : 저본에는 ‘諸’로 되어 있으나, ≪陸贄集≫(中華書局, 2006)에 의거하여 ‘請’으로 바로잡았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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