頃緣定稅之初에 期約이 未甚詳衷하고 旋屬征役多故하여 復令先限量徴하니 近雖優延이나 尙未均濟라
望委轉運使與諸道觀察使商議하여 更詳定徵稅期限하여 聞奏호되 各隨當土風俗所便과 時候所宜하여 務於紓人하여 俾得辦集하면 所謂恵而不費者가 則此類也니이다
12-4-3 지난번 처음 양세兩稅를 정할 때에 기한이 매우 상세하지 못하였고 곧바로 정역征役에 해당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다시 기한보다 먼저 헤아려 징세하였습니다. 근래에는 비록 기한을 넉넉하게 늘려주었으나 여전히 균등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전운사轉運使와
제도諸道의
관찰사觀察使에게
상의商議하게 하여 다시 징세의 기한을 상세히 정하여 아뢰게 하되 각각 해당 지역의 풍속의 편의함과 시절의 마땅함에 따라서 백성의 질곡을 풀어주는 데 힘써서 백성들로 하여금 생업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이른바
는 것이 이러한 부류일 것입니다.
【평설評說】 육지陸贄는 이 주의奏議에서 ‘서인紓人’이라는 말을 혜택을 베풀되 낭비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강조하였다. 조선시대의 지식인 가운데 ‘서인紓人’의 문제를 직접 언급한 인물은 드물다. 다만 정약용丁若鏞이 〈농책農策〉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정약용은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식화일食貨一 전제상田制上〉에서 “곡식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고 농사는 그 곡식을 생산하는 원천이다.[穀者 人之司命 農者 穀之所出]” 라고 하였던 것에 크게 동조하여 농가를 면려하는 방법을 논하였다. ≪서경書經≫에서 악목岳牧에게 명하면서 제일 먼저 먹는 것을 들어 말하였고, ≪시경詩經≫에서는 조상의 덕德을 말하면서 밀보리를 가져다준 것을 칭송하였고, ≪춘추春秋≫는 근엄謹嚴하지만 풍년은 반드시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옛 성왕聖王이 농사를 중하게 여겼음을 환기시키고, 농가를 면려시키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서인력紓人力’, ‘광지리廣地利’, ‘비천재備天災’ 세 가지를 거론하였다.
대개 경계經界가 문란해짐으로부터 겸병兼幷하는 습관이 생겼고, 은결隱結과 세금 내는 토지가 뒤섞이면서부터 세금 걷는 것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리하여 천하의 백성들 가운데 근본인 농사는 버리고 상업商業으로 몰려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농가가 다시는 번창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코 놀고먹는 것을 금지하여 인력을 넉넉하게 하고, 수리水利를 일으켜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넓히며, 별의 운행을 계산해서 천재天災에 대비한다면, 이는 백성들의 복임은 물론 국가의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정약용은 ‘서인력紓人力’을 위해서 ‘금유식禁游食’을 강조하였지, 세금 납부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기한 내에 부세를 납부하게 하느라 아전과 지방관은 폭압적인 행위를 많이 하였던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