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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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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夫明則罔惑하고 辨則罔冤이라 惑莫甚於而不與明하고 寃莫痛於見疑而不獲辨이니
是使情偽相糅하고 忠邪靡分일새 玆實居上御下之要樞 惟陛下 留意注+① 此奏旣上, 帝亦竟不復辨也.幸察하소서 謹奏


4-3-4 밝히면 의혹이 없을 것이고 변별하면 억울함이 없을 것입니다. 의혹은 속임을 의심하면서 밝히지 않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고, 억울함은 의심을 받는데도 밝혀주지 않는 것보다 애통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참과 거짓으로 하여금 뒤섞이게 만들고 충정과 사특함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는 실로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사람들을 통어하는 요점이니, 부디 폐하께서는 유념하여注+① 惟陛下留意:陸贄의 이 상주문이 올라갔지만, 德宗은 또한 끝내 다시 분별하지 않았다. 살피소서.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소복蕭復강공보姜公輔와 함께 현사賢士로 이름이 높았다. 덕종德宗은 소복을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임명하고 강공보를 간의대부諫議大夫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덕종은 항상 소복이 자기를 경시하고 강공보는 정직의 명성만 세우려는 위인으로 의심하여, 노기盧杞조찬趙贊을 임용하였다가 국정이 실패하였다. 덕종은 또 노기의 참소를 믿고, 소복을 산남山南강회江淮호남湖南영남嶺南선무안위사宣撫安慰使에 충당하고, 소복이 속히 부임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 육지陸贄는 이 상주문을 올려 소복을 위해 해명하고 그를 외직에 임명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논하였다. 육지는 소복을 두고 “경의經義를 논하면 목숨을 걸고 정도正道를 지켜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바꾸지 않는 것을 근본을 삼고, 인물을 의론하면 위원충魏元忠송경宋璟을 스승으로 삼아 자기가 행동하는 바에 모두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라고 논평하였다. 위원충은 당나라 중종中宗동궁東宮으로 돌아온 뒤에는 장역지張易之장창종張昌宗의 전횡을 막을 것을 무후武后에게 간언하였다가 도리어 무함을 입고 좌천된 인물이고, 송경은 당나라 예종 복위 후에 폐단을 혁파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과정에서 태평공주太平公主의 미움을 받아 초주자사楚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인물이었다. 육지는 소복을 그 두 사람에 견주어, 박해를 받더라도 강직함을 잃지 않는 현사賢士로 부각시켰다. ≪자치통감후편資治通鑑後編≫ 권94 〈송기宋紀 휘종황제徽宗皇帝〉에 보면, 임백우任伯雨사마광司馬光문언박文彦博소식蘇軾정이程頤원우元祐 인사들과 장돈章惇여혜경呂惠卿소성紹聖 연간의 신법당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여 올린 상소上疏에서 당 덕종 때 군자와 소인을 아울러 등용했다가 피란 길에 올랐다고 지적하였다. 임백우는 송나라 휘종徽宗우정언右正言이 되어 반년 사이에 를 총 108번이나 올린 직신直臣이다. 그때 증포曾布원우元祐 연간과 소성紹聖 연간의 사람들을 화해시키려고 하였다. 임백우는 “인재는 물론 당파를 가리지 않고 등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군자와 소인이 뒤섞여 일제히 진출하여 치세治世를 이룩한 경우는 있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군자는 자리에서 쉽게 물러나지만 소인은 자리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으므로 군자와 소인을 아울러 등용하면 마침내 군자는 전부 떠나버리고 소인만 남게 됩니다. 당 덕종이 이로 인해 피란의 길에 나서는 화를 초래하였습니다. 건중建中( 덕종德宗의 연호)은 바로 그의 연호이니(덕종의 연호가 지금 휘종徽宗의 연호와 유사함)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송사전문宋史全文≫ 권27 송효종宋孝宗〉의 기록을 보면, 송나라 이부상서吏部尙書 정병鄭丙이 육지가 봉천奉天에서 소복을 논하여 해명한 이 상소를 읽었다고 한다. 효종孝宗이 정병을 돌아보면서 “덕종은 의심하였으니 밝지 못하다고 이를 수 있겠다.”라고 하자, 정병은 아뢰기를 “덕종이 이치를 아는 것이 명확치 않아서 일마다 의심을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육지의 말 중에 들을 것이 많았고, 일이 안정된 후에는 육지의 말이 간절한 것이 많았는데도, 또한 의심을 당함을 면치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효종은 “이는 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逆詐 : ≪論語≫ 〈憲問〉에 “남이 자기를 속일 것이라 미리 경계하지 않고 남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억측하지 않아야 하나, 먼저 깨닫는 자가 현명한 것이다.[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라고 하였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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