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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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興元請撫循李楚琳狀
初, 楚琳作亂, 殺鳳翔節度使張鎰, 乃叛附朱泚. 及奉天圍旣解, 楚琳遣使入貢, 上不得已, 除鳳翔節度而心惡之.
議者言楚琳若不隄防, 恐生窺伺. 由是, 楚琳使者數輩至, 上皆不引見, 留之不遣.
贄遂上此奏. 上釋然開寤, 善待楚琳使者, 優詔存慰之.


3. 흥원興元에서 이초림李楚琳을 다독일 것을 청하는 주장奏狀
처음에 이 난을 일으켜서 봉상절도사鳳翔節度使 장일張鎰을 죽이고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주자朱泚에게 귀부하였다. 그러다가 봉천奉天의 포위가 풀리자 이초림은 사신을 보내어 입공入貢하였는데, 황상은 부득이 봉상절도사를 제수했으나 마음으로 미워하였다.
의론하는 자들이 말하길, 이초림은 만약 방비하지 않으면 틈을 엿보는 짓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이초림의 사자使者 몇 사람이 이르렀는데, 상이 모두 인견하지 않고 억류하여 돌려보내지 않았다.
육지가 마침내 이 주문奏文을 올리자, 상이 분명하게 깨우쳐서 이초림의 사자를 잘 대우하고 우대하는 조칙을 내려 위로하였다.


역주
역주1 李楚琳 : 朱泚가 鳳翔에 5년간 주둔할 때 신뢰하는 자가 적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 牙將 이초림이 특히 그의 마음을 샀다. 주자의 반란에 이초림이 군사를 발동시켜 節度使 張鎰을 죽이고 자칭 留后라고 하였다. 이초림은 대단히 교활하여, 스스로 鳳翔節度留后라 칭하고 주자에게 친히 하면서도 군사를 내어 돕지는 않고 형세를 관망했다. 〈興元請撫循李楚琳狀〉을 올릴 당시에는 이초림이 황제에게 사신을 보내서 조정의 정세를 살피는 중이었다. ≪資治通鑑≫을 보면 興元 원년(784) 3월 기사에서 이 奏狀의 내용이 나온다. 이때의 여론은 이초림을 배격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陸贄는 이초림을 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후 동년 6월 李晟이 주자를 격파하고 장안을 수복하는데, 주자의 무리였던 源休나 李子平 등이 봉상으로 도망했다가 모두 이초림에게 살해되었다. 이초림은 그들의 머리를 行在로 보내어 공훈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德宗은 이초림을 천시하여 이초림의 사자를 대우하지 않았고, 渾瑊으로 이초림을 대신하여 鳳翔節度使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육지는 큰 난이 가까스로 평정되었으므로 鳳翔을 안정시키려면 반드시 이초림을 安撫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덕종은 이 말에 따라 이초림의 사신을 대접하고 은혜로운 조칙으로 그 마음을 위로했다. 동년 8월, 조정은 이초림을 입조하게 해서 金吾衛大將軍을 삼고, 司徒로서 中書令을 겸하게 했으며, 이성에게 鳳翔尹 鳳翔隴右節度使를 겸하게 하였다. 이초림은 입조 이후 金吾衛大將軍, 尙書僕射, 衛尉卿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少府監 李忠誠과 함께 太子少师 韋倫의 탄핵을 받았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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