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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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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項籍 納秦降卒二十萬이라가 慮其懷詐復叛하여 一擧而盡坑之注+① 項羽傳云.하니 其於防虞 亦已甚矣
漢高 豁達大度 天下之士 至者 納用不疑하니 其於備慮 可謂疏矣로되
然而項氏以滅하고 劉氏以昌하니 蓄疑之與推誠 其效固不同也니이다
秦皇 嚴衛雄猜호되 而荊軻 奮其陰計注+② 軻欲爲燕太子丹刺秦王, 取燕地圖奏之. 圖窮而匕首見, 因把秦衣袖而揕之, 秦王絶袖而走.하고
光武 寬容博厚호되 而馬援 輸其款誠注+③ 本傳云 “隗囂使援奉書雒陽. 援曰 ‘天下反覆, 盜名字者, 不可勝數. 今見陛下, 恢廓大度, 同符高祖, 乃知帝王自有真也.’”하니 豈不以虛懷待人이면 人亦思附하고 任數御物이면 物終不親하나니
情思附則感而悅之하여 雖寇讐라도 化爲心膂 有矣
意不親則懼而阻之하여 雖骨肉이라도 結爲仇慝 有矣 故曰 玆道得失 所關興亡이라하노이다


5-6-4
항우項羽나라의 항복한 병졸 20만을 받아들였다가 그들이 거짓된 마음을 품어 다시 반란할까 걱정하여 한꺼번에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버렸으니,注+① 項籍……一擧而盡坑之:≪史記≫ 〈項羽本紀〉에서 이른 말이다. 우환을 방비함이 너무 심하였습니다.
고조高祖는 활달하고 도량이 커서 천하의 선비들 중에 그에게 이른 자를 받아들임에 의심이 없었으니, 걱정에 대비하기를 소홀히 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씨項氏는 이로써 멸망하였고, 유씨劉氏는 이로써 창성하였으니, 의심을 쌓아두는 것과 성심을 미루어 하는 것은 그 결과가 진실로 같지 않은 법입니다.
시황始皇은 호위하기를 삼엄하게 하고 의심하기를 철저히 하였건만 형가荊軻가 은밀한 계책을 떨쳐 행하였고,注+② 秦皇……奮其陰計:荊軻가 燕나라 太子 丹을 위해 秦王을 죽이고자 하여 연나라 지도를 가져다 〈진왕에게〉 바쳤다. 〈말려 있던〉 지도가 다 펼쳐지고 비수가 드러나자 진왕의 옷소매를 붙잡고 찔렀으나 진왕이 옷소매를 끊고 달아났다.
광무제光武帝는 너그럽고 넓고 도탑게 하였는데 마원馬援이 충심을 그에게로 옮겼으니,注+③ 光武……輸其款誠:≪漢書≫ 〈馬援傳〉에, “隗囂가 馬援을 시켜서 조서를 받들어 낙양으로 가게 하였다. 마원이 〈光武帝에게〉 말하기를, ‘천하가 뒤집어져서 〈제왕의〉 이름을 도둑질하는 자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를 보건대 넓고 큰 도량이 高祖와 부합하시니, 이에 비로소 진정한 제왕이 있음을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사람들을 대하면 사람들도 따르려고 생각하고 술수에 맡겨 만물을 부리면 만물이 끝내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마음이 따를 것을 생각한다면 감격하고 기뻐하여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변화하여 자신의 심장과 등뼈와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면 두려워하며 저지하여 비록 자신의 뼈와 살과 같은 사람이라도 결탁하여 원수가 될 것입니다. 신은 그러므로 “이 를 얻고 잃음은 흥망과 관련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역주
역주1 項羽는……심하였습니다 : 項羽가 秦나라를 공격하였을 때에, 이미 秦나라의 형세가 기울어져 章邯․司馬欣 등이 항우에게 투항하였고, 이후 楚軍과 투항한 秦軍이 함께 咸陽으로 진격하였다. 新安에 이르렀을 때에 楚나라 병사들이 秦나라 병사들을 노예처럼 부려 학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秦나라 병사들이 몰래 말하기를 “장한 장군 등이 우리를 속여서 楚나라에 항복했다. 오늘 우리가 秦나라를 격파하고 關中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楚나라는 우리들을 그들의 노예로 삼아 동쪽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들의 부모처자는 秦나라에게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라 하였다. 楚軍이 이를 듣고 항우에게 보고하자, 항우가 밤에 秦軍 20만 명을 新安城 남쪽에 파묻어버리도록 하였다.(≪史記≫ 〈項羽本紀〉)
역주2 秦 始皇은……행하였고 : 秦王이 九賓의 잔치를 진설하여 燕나라가 보낸 사자를 咸陽宮에서 만났다. 荊軻가 樊於期(번오기)에 머리가 담긴 함을 받들고, 秦舞陽은 지도가 담긴 합을 받들고 차례대로 나아갔다. 계단 아래에 미치자 진무양이 낯빛이 변하며 벌벌 떠니 군신이 괴이하게 여겼다. 형가가 진무양을 돌아보고 웃으며 앞에 나아가 사례하며 말하기를 “북방 오랑캐의 비루한 자가 천자를 여태껏 본 적이 없기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다소 관대하게 봐주셔서 어전에서 사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진왕이 형가에게 말하였다. “진무양이 가져온 지도를 가져오라.” 형가가 지도를 가져다 바쳤다. 진왕이 지도를 펴보니 지도가 끝나는 곳에서 匕首가 나타났다. 형가가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쥔 채 찔렀다. 몸에 닿기 전에 진왕이 놀라서 스스로 몸을 끌어 일어섰다. 형가가 진왕을 쫓자 진왕이 기둥을 돌면서 달아났다. 군신들도 놀랐으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놓쳤다. 진나라 법에는 군신이 전상에서 황제를 모시고 있을 때에는 척촌의 병기도 휴대할 수 없었다. 무기를 가지고 있던 郎中들은 모두 전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명령이 없이는 올라가지 못하였다. 급해서 병사들을 부르지 못하였으므로, 형가가 이에 진왕을 뒤쫓아가자 당황해서 형가를 공격할 수 없게 되자 손으로 붙잡았다. 이때 時醫였던 夏無且(하무저)가 약 주머니를 형가에게 던졌다. 이후 진왕이 긴 칼을 등에 지고 뽑아 형가의 다리를 베었다.(≪史記≫ 〈刺客傳〉)
역주3 光武帝는……옮겼으니 : 隗囂가 馬援을 시켜서 조서를 받들어 咸陽으로 가게 했다. 마원이 함양에 이르러 宣德殿에서 만났다. 世祖(光武帝)가 마원에게 웃으며 말하기를 “경이 두 황제의 사이(光武帝와 公孫述)에서 분주히 오가니, 내가 지금 경을 만남에 〈덕이 부족한데 황제를 칭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라 하자 마원이 고개를 조아리고 사례해서 말하였다. “오늘날 시대에 단지 임금만 신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하도 또한 임금을 택합니다. 신은 공손술과 한 고을에서 살아서 어려서 서로 친했습니다. 신이 전에 蜀에 갔을 적에 공손술은 섬돌 사이에 창을 호위병을 진열한 뒤에 신을 나오게 하였습니다. 신은 이제 멀리서 왔는데도 폐하께서 어찌 제가 자객이나 간인이 아닐 줄 어찌 알고 이처럼 경솔하게 대하십니까?” 그러자 황제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경은 자객이 아니라 단지 세객일 뿐이오.” 마원이 말하기를 “천하가 뒤집어져서 제왕의 이름을 도둑질한 가진 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를 보니 넓고 큰 도량이 高祖와 부합하시니, 이에 비로소 제왕이 본래 진정한 제왕이 있음을 알겠습니다.”라 하였다.(≪後漢書≫ 〈馬援傳〉)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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