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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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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陛下 旣闕愼于始하시고 又失圖于中하시니 收之西隅 唯在玆日注+① 馮異傳云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楡.”이어늘 豈可復使一事紕繆하며 一言過差哉
今賊泚未平하고 懷光繼叛하여 都邑城闕 猰㺄迭居注+② 猰, 公八․烏八二切. 山海經曰 “南海之外有猰㺄, 狀如貙, 龍首, 食人.” 德宗幸奉天, 朱泚入居前殿, 僭卽皇帝位于宣政殿. 後李懷光反, 又屯兵咸陽.하고 豺狼雜處하고 朝廷 僻介於遠郡하고 道路 緣歷於連山하니 杖策從君 其能有幾리오


5-6-10 폐하께서 이미 처음에 신중함을 빠뜨리셨고 또 중간에선 도모함을 잃으셨으니, 은 오직 지금에 달려 있습니다.注+① 收之西隅 唯在玆日:≪後漢書≫ 〈馮異傳〉에 이르기를 “해가 뜨는 새벽에 잃었다가 해가 지는 저녁에 거두었다고 할 만하다.” 하였다. 어찌 다시 한 가지 일로 어긋나게 하며 한마디 말로 그르치게 하십니까.
지금 역적 주자朱泚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 이회광李懷光이 이어 모반하여 도성과 궁궐에 와 같은 것들이 번갈아 살고注+② 猰㺄迭居:猰은 公과 八의 반절, 烏와 八의 반절이다. ≪山海經≫에 이르기를 “남해의 바깥에는 알유가 있는데 형상은 이리 같고 용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하였다. 德宗이 奉天으로 거둥하자 朱泚가 前殿에 들어가 살았고, 참칭하여 宣政殿에서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그 뒤 李懷光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또한 咸陽에 주둔했다. 관보關輔관내도關內道에 승냥이와 이리들이 섞여 살며, 조정은 먼 지역에 치우쳐 있고 도로는 첩첩산중에 이어져 있으니, 지팡이를 짚고 임금을 따르는 자가 능히 몇이나 되겠습니까.


역주
역주1 西隅에서 수습함 : 뒤늦게나마 만회함을 이른다. ≪後漢書≫ 〈馮異傳〉에 따르면, 後漢 때의 장수인 馮異가 赤眉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처음 싸움에서 대패하고, 얼마 뒤에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황제가 친히 글을 내려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비록 回谿에서 날개를 드리웠지만 마침내 黽池에서 날개를 떨칠 수 있었으니, 東隅에서는 잃었지만 桑楡에서 거두었다 이를 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는데, 육지는 ‘東隅’라는 말을 ‘西隅’로 변용한 것이다.
역주2 猰㺄(알유) : 고대의 짐승 이름으로, 모양은 龍의 머리 같기도 하고 너구리 같다고도 하는데 매우 빠르며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淮南子≫에 보인다.
역주3 關輔郊畿 : 關輔는 關中과 三輔의 병칭으로, 近畿 지역을 말한다. 관중은 지금의 섬서성 중부이고, 삼보는 지금의 서안 근교이다. 郊畿도 京城 밖의 지역으로 바로 근기 지역을 말한다. 唐나라는 이 지역에 關內道를 두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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