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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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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古人有言호되 撫我則后 虐我則讐라하니 惠澤所及 謳歌乃歸하리니 流聞四方하면 孰不欣戴리오
趙殺鳴犢이어늘 聖人輟行注+① 史孔子世家 “孔子旣不得用於衛, 將西見趙簡子. 至於河而聞竇鳴犢․舜華之死也, 臨河而嘆, 乃還息乎陬鄕, 作爲陬操以哀之.”하시고 燕尊郭隗어늘 賢士繼往注+② 燕昭王卑身厚幣以招賢者, 郭隗曰 王必欲致士, 先從隗始. 況賢於隗者, 豈遠千里哉. 於是昭王爲隗改築宮而師事之. 樂毅自魏往, 鄒衍自齊往, 劇辛自趙往.하니
況乎天子所作 天下式瞻이라 一言阻物하면 則天下 莫不自疑하고 一事恤人하면 則天下 莫不同悅하나니
固不可以小失爲無損而不悔 亦不可以小善爲無益而不行이니 小猶愼之어든 矧又非小온여
願陛下 惟事無大小 皆以覆車之轍爲戒하시면 實宗社無疆之休니이다 謹奏


5-6-13 옛사람의 말에 이르기를 라 하였습니다. 은택이 미치는 곳에 칭송하는 노래가 모일 것이니, 소문이 사방에 퍼지면 누가 기뻐하며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조간자趙簡子두명독竇鳴犢을 죽이자 성인이 가던 길을 멈추셨으며,注+① 趙殺鳴犢 聖人輟行:≪史記≫ 〈孔子世家〉에 이르기를 “孔子가 衛나라에서 등용되지 않은 뒤에 서쪽으로 가서 趙簡子를 만나보려고 하였다. 황하에 이르러 竇鳴犢과 舜華가 조간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하 가에 이르러 탄식하고는 陬鄕으로 돌아가 〈陬操〉를 지어 그들을 애도하였다.”라고 하였다. 나라가 곽외郭隗를 높이자 어진 선비가 잇달아 왔습니다.注+② 賢士 繼往:燕나라 昭王이 자신을 낮추고 폐백을 두텁게 하여서 현자를 불렀다. 郭隗가 말하기를 하였다. 이에 소왕이 곽외를 위해 궁을 개축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자 樂毅가 魏나라로부터 오고 鄒衍은 齊나라로부터 왔으며 劇辛이 趙나라로부터 왔다.
臨河返駕(孔子가 黃河 가에 이르러 수레를 되돌리다.)臨河返駕(孔子가 黃河 가에 이르러 수레를 되돌리다.)
하물며 천자께서 하시는 바는 온 천하가 우러러 본받으니, 만물을 가로막은 한마디 말이 있으면 천하가 절로 의심하지 않음이 없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한 가지 일이 있다면 천하가 함께 기뻐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진실로 작은 잘못이라도 해될 것이 없다고 여겨서 후회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또한 작은 선이라도 이익이 없다고 여겨서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니, 작은 것도 삼가야 하는데 하물며 또 작지 않은 것에 있어서겠습니까.
원컨대 폐하께서는 일에 있어서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모두 전철前轍을 경계로 삼으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실로 종묘사직의 무궁한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덕종德宗양주梁州로 도피한 뒤 장안長安을 탈출한 관리들이 연달아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렀다. 덕종은 이 관리들이 역적의 진영에서 왔다는 이유로 ‘양선良善’하지 않다고 단정하고 엄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건邢建도 이런 취급을 받은 관리 중 한 사람으로, 반란군의 형세에 대해 말했다가 염탐하려는 술책으로 의심받아 구금당하는 데 이르렀다. 이 주장奏狀은 덕종이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은 데 대한 회답으로,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증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전經典을 인용해 덕종의 기우杞憂를 해소하고자 하였으며, 오직 ‘성심을 미루어[추성推誠]’ 처신하도록 권하는 한편 형건과 같은 관리들은 역도逆徒가 아니므로 재능에 맞는 관직을 줌으로써 ‘열근래원悅近來遠’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글은 조선의 문신들에게도 즐겨 인용되었다. 이를테면 송희규宋希奎(1494~1558)가 나라 양제煬帝에 관해 말하기를 “한 사람의 보고 듣는 것으로 우주가 변화하는 모습을 궁구하였고, 계책은 중인衆人이 꾀를 압도할 만하였지만 신하를 가볍게 대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생각은 만기萬機에 두루 미쳤지만 홀로 온 천하를 부리려는 생각이 있었다.”(≪야계집倻溪集≫ 권1 〈정책政策〉)고 한 것은 순서만 조금 다를 뿐 육지의 말을 전적으로 차용한 사례라 하겠다. 또한 숙종肅宗 때의 문신인 이담명李聃命(1646~1701)은 “옛날의 명철한 군주는 감던 머리를 움켜쥔 채 먹던 음식도 뱉고 나갈 정도로 인재를 구함에 힘쓰고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지 않음이 없어 기탄없이 말할 수 있는 문호를 열고 과감히 진언하는 기운을 진작하였으며, 간언을 따름에 거스르지 않았고 잘못을 고침에 주저함이 없었으니, 도가 그 몸에 쌓이고 다스림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정재집靜齋集≫ 권3 〈옥당차玉堂箚〉)라 한 바 있는데, 이는 육지가 〈흥원논속종적중부행재관등장興元論續從賊中赴行在官等狀〉에서 활용한 구절인 ‘철목토포輟沐吐哺 허금탄회虛襟坦懷’와 〈흥원논해강공보장興元論解姜公輔狀〉에서 활용한 구절인 ‘종간불불從諫不咈’을 적절히 취사한 사례라고 하겠다.


역주
역주1 나를……원수다 : ≪書經≫ 〈周書 泰誓 下〉에 보인다.
역주2 왕께서……하겠습니까 : ≪史記≫ 〈燕昭公世家〉에 보인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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