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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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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蕭復 往年 曾任常州刺史어늘 其時寄住常州 首尾二年하여 閱其理行하고 及到京邑 多與往來하여 歲月滋深하니 情意相得할새 復之志性 臣則備諳하노니
本是貴門이요 又聯戚屬하나 痛自修勵하여 慕爲淸貞호되 矯枉太深하여 時或過當하여
論經義 則以하여 執心不回 爲本하고 議人物이면 則以魏元忠宋璟으로 爲師注+① 元忠初相武后, 有淸直名. 璟剛直之節, 老而彌篤.하여 己之所行 皆欲盡善이라
故涉好名之累하고 亦無應變之才하니 用雖不周하나 行則可保
至如二三爽德하여 翻覆挾姦 復之爲人 必不至是 安有親承計議하고 退自變渝하여 私誘官僚하여 曲令干說이리오
是同兒戲하여 非近人情하니 雖甚狂愚라도 猶應不敢이요 若稍恭愼이면 固當不爲어든
況乃見稱名流하고 獲踐淸貫하여 備股肱之任하고 承渥澤之私하니 何心何顔으로 忍至於此
假令蕭復之意 或欲逗留인들 在於從一之徒하여 寧肯附會리오


4-3-2 소복蕭復이 왕년에 상주자사常州刺史로 부임하였는데 이 당시 상주常州에 잠시 머물렀던 기간이 모두 3년이어서 그의 치적을 살펴보았고, 경읍京邑에 이르러서도 많이 왕래하여 세월이 자심하니 정의情意를 통하게 되었으므로, 소복의 성정을 신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소복은 본시 귀문貴門의 출신인데다가 또한 황가의 척족이기도 하지만, 매우 스스로를 수행하고 면려하여 청렴하고 정직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기를 너무 심하게 하여 때로는 혹 마땅함을 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의經義를 논하면 목숨을 걸고 정도正道를 지켜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바꾸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인물을 의론하면 을 스승으로 삼아注+① 魏元忠宋璟爲師:魏元忠은 처음에 則天武后 조정에서 재상을 지냈는데,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명성이 있었다. 宋璟은 강직한 절개가 늙어갈수록 더욱 돈독해졌다. 자기가 행동하는 바에 모두 최선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명성을 좋아한다는 혐의에 연루되고 또한 임기응변하는 재주가 없기에, 일에서는 비록 주밀하지 못하나 행실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여 덕을 해치며 간악한 마음을 품고 번복하는 일은 소복의 됨됨이로 볼 때 필시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니, 그가 어찌 직접 의론을 받들고 물러나 평소의 뜻을 바꾸어, 몰래 관료들을 꾀어서 명령을 어기겠습니까.
이는 아이의 놀이와 같아서 인정에 맞지 않으니, 비록 매우 미치고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감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조금이라도 신중하다면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명류名流라고 일컬어지고 청직淸職에 올라 의 직임에 있으면서 사사로이 큰 은택을 받았는데, 무슨 염치와 면목으로 차마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가령 소복이 여기에 머물고 가지 않으려는 뜻이 있다 하더라도 유종일劉從一 등이 어찌 견강부회牽强附會하겠습니까.


역주
역주1 魏元忠 : ?~707. 唐나라 高宗 때 吐蕃이 침입하자 대책을 건의한 일로 발탁되어 殿中侍御史가 되었고, 則天武后 때에 李敬業의 반란을 토벌하여 司刑正에 발탁되었다가 御史中丞을 거쳐 同鳳閣鸞臺平章事에 올랐다. 中宗이 東宮으로 돌아온 뒤에는 張易之와 張昌宗의 전횡을 막을 것을 武后에게 간언하였는데, 도리어 무함을 입고 高要尉로 좌천되었다. 중종이 복위하자 中書令이 되었다.
역주2 宋璟 : 663~737. 則天武后 때 누차 左台御使中丞에 임명되었는데, 강직한 관리로서 측천무후의 신임을 받았다. 睿宗 복위 후에 폐단을 혁파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과정에서 太平公主의 미움을 받아 楚州刺史로 좌천되었다. 玄宗 開元 초년에 다시 刑部尙書에 임명되었다. 개원 4년(716)에 姚崇을 이어 재상이 되어 요숭과 함께 개원의 賢相으로 일컬어진다. 철석과 같은 심장의 소유자로 명성이 있다. 송경이 일찍이 〈梅花賦〉를 지었는데, 뒤에 皮日休가 〈桃花賦序〉에서 송경의 〈매화부〉를 들어 “내가 일찍이 정승 宋廣平의 바르고 강직한 자질을 사모하여 생각하기를 그의 철석과 같은 심장으로는 아마도 유순하고 애교 넘치는 글을 토해낼 줄 모르리라고 여겼었는데, 그의 〈매화부〉를 읽어보니 내용이 통창하면서도 풍부하고 화려하여 南朝의 문체를 닮아서 그 사람됨과는 아주 달라 보였다.”라고 한 일화가 있다.
역주3 股肱 : 여기서는 시종신의 반열에 이른 신하를 말한다. ≪書經≫ 〈虞書 益稷〉에 “帝가 말하기를 ‘신하는 고굉과 이목이 된다.[帝曰 臣作股肱耳目]’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 疏에는 “임금은 원수가 되고 신하는 고굉과 이목이 되니 대체로 한 몸이다.[君爲元首 臣爲股肱耳目 大體如一身也]”라고 하였다.
역주4 守死善道 : ≪論語≫ 〈泰伯〉에서 孔子가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며 도를 잘 실행해야 한다.[篤信好學 守死善道]”라고 한 말이 보인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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