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使四五兇渠로 俱稟梟鴟之性하고 其下同惡이 復有十百相從이라도 是皆卒伍庸流요 闒茸下品이라
其志好
가 不過聲色財貨之樂
이요 其材用
이 不過蹴踘距踴之能
注+① 史蘇秦傳 “臨淄民無不吹竽鼓瑟, 六博蹴鞠.” 劉向別錄 “蹴鞠者, 傳言黃帝所作, 或云起戰國時, 所以練武士, 知有材也. 今軍中無事, 但使蹴鞠.” 郭璞三蒼解詁曰 “鞠, 毛團, 可蹋戱.” 左僖二十八年 “晉文公欲殺魏犨, 而愛其材, 使視之. 犨見使者, 距躍三百, 曲踊三百, 乃舍之.” 距躍, 超越也. 曲踊, 跳踊也. 踊與踴通.이요
其約從締交則迭相侮詐하여 以爲智謀하고 其御衆使人則例質妻孥하여 以爲術數하니
1-1-8 설령 네댓 명의 원흉元兇이 모두 완악한 천성을 타고났고, 그 아래에 함께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또 수많은 무리들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오합지졸들이요 수준 낮은 비루한 이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취향은
성색聲色과
재화財貨를 즐기는 데에 불과하고 그들의 재주는 공차기나 뜀뛰기를 하는 능력에 불과합니다.
注+① 蹴踘距踴之能:≪史記≫ 〈蘇秦傳〉에 “臨淄의 백성들은 피리를 불고 비파를 타며 노름을 하고 공차기를 하지 않는 자가 없다.”라고 하였고, 劉向의 ≪에 “공차기는, 전에 오는 말에 따르면 黃帝가 만들었다 하기도 하고, 혹은 전국시대에 시작되었는데, 武士들에게 연습시켜서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군영에서 일이 없을 때에는 공차기를 시킨다.”라고 하였으며, 郭璞의 ≪에 “鞠은 털을 둥글게 뭉친 것으로, 차면서 놀 수 있다.”라고 하였고, ≪春秋左氏傳≫ 僖公 28년에 “晉나라 文公이 魏犨를 죽이고자 하였지만, 그의 재주를 아껴 사람을 시켜서 그의 負傷 정도를 살펴보게 하였다. 위주가 사자를 보고서 높이뛰기를 3백 번, 멀리뛰기를 3백 번 하자 죽이려는 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하였다. ‘距躍’은 뛰어넘는 것이고, ‘曲踊’은 멀리 뛰는 것이다. 踊은 踴과 字義가 통한다.
그들이 약속을 하고 친교를 맺음에는 번갈아 서로 업신여기고 속이는 것을 지모智謀로 여기고 그들이 무리를 통솔하고 사람을 부림에는 으레 처자식을 인질로 삼는 것을 술수術數로 여길 따름입니다.
이야말로 도둑질을 하여 안일을 꾀하는 무리이지, 간웅奸雄의 특별하고 남다른 자질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