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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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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故夏之即序 周之于攘 太宗之翦亂 皆乗其時而善用其勢者也
古公之避狄 文景之和親 神堯之降禮注+① 突闕傳 “頡利倚父兄餘資, 兵銳馬多, 視中國爲不足與, 書辭悖慢, 多求. 神堯高祖方經略天下, 故每屈禮, 多所舍貸.” 皆順其時而不失其稱者也
秦皇之長城 漢武之窮討 皆知其事而不度其時者也
向若遇孔熾之勢하여 行即序之方하면 則見侮而不從矣 乗可取之資하되 懷畏避之志하면 則失機而養寇矣
有攘却之力호되 用和親之謀하면 則示弱而勞費矣 當降屈之時하여 務翦伐之略하면 則召禍而危殆矣
故曰 知其事而不度其時則敗하고 附其時而不失其稱則成이라하니 是無必定之規하고 亦無長勝之法이라 得失著效 不其然歟
至於察安危之大情하며 計成敗之大數하여 百代之不變易者 蓋有之矣
其要 在於失人肆慾則必蹶하고 任人從衆則必全이니 此乃古今所同而物理之所壹也


9-1-5 그러므로 하우夏禹의 교화가 미쳐 서융西戎을 안정시킨 것과 나라가 〈성을 쌓아 험윤玁狁을〉 물리친 것과 태종太宗(이세민李世民)께서 〈돌궐을〉 정벌한 것은 모두 시기를 타서 그 형세를 잘 사용한 것이고,
고공단보古公亶父을 피한 것과 문제文帝경제景帝가 〈흉노匈奴와〉 화친을 맺은 것과 신요황제神堯皇帝( 고조高祖)께서 예를 낮춘 것은注+① 神堯之降禮:≪新唐書≫ 〈突闕傳〉에 “頡利는 아버지와 형이 남긴 재물에 힘입은 데다 병사들이 날쌔고 말도 많아 중국이 자신들을 상대할 만하지 못하다고 여겨 〈중국에 보내는〉 글의 내용이 오만했으며 대부분 재물을 요구해온 것이었다. 神堯大聖光孝皇帝 高祖가 이제 막 천하를 경략하던 차였으므로 매번 예를 낮추고 금품을 많이 주었다.”고 하였다. 모두 시기를 따라 그 알맞음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시황제始皇帝장성長城을 쌓아 〈흉노를 막은〉 것과 무제武帝가 〈흉노를〉 끝까지 토벌한 것은 모두 일을 알았지만 시기를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를 만났을 때 그들을 회유하여 안정시키는 방책을 시행하였다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취할 만한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데도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뜻을 품었다면 기회를 놓쳐 외적들을 길러주었을 것이며,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화친의 계책을 사용하였다면 유약함을 드러내어 재력을 소비했을 것이고, 낮추고 굽혀야 할 시기를 당하여 저들을 정벌하려는 계략에 힘썼다면 화를 자초해 위태로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알고 그 시기를 헤아리지 못하면 패하고 그 시기에 부합하고 그 알맞음을 잃지 않으면 성공한다.”고 한 것이니, 이는 반드시 정해진 규칙도 없고 늘 이기는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득실의 드러난 결과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안위의 큰 정황을 살피며 성패의 큰 수를 헤아려서 백 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이러한 경우들도 있는데,
그 요체는 사람을 잃고 욕심을 제멋대로 하면 반드시 무너지고 사람을 믿고 대중을 따르면 반드시 보전하는 데에 있으니, 이는 바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만물의 이치에 있어 똑같은 것입니다.


역주
역주1 맹위를……형세 : 원문은 ‘孔熾之勢’이다. ≪詩經≫ 〈小雅 六月〉에 “玁狁이 맹위를 떨치니, 나도 이 때문에 서두른다네. 왕께서 이에 출정하여 왕국을 바로잡으라고 하시니라.[玁狁孔熾 我時用急 王于出征 以匡王國]”라고 한 것을 변용한 것이다.
역주2 (激)[須] : 저본에는 ‘激’로 되어 있으나, ≪新唐書≫ 〈突闕傳〉에 의거하여 ‘須’로 바로잡았다.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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