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夏之即序와 周之于攘과 太宗之翦亂이 皆乗其時而善用其勢者也요
古公之避狄
과 文景之和親
과 神堯之降禮
注+① 突闕傳 “頡利倚父兄餘資, 兵銳馬多, 視中國爲不足與, 書辭悖慢, 多求. 神堯高祖方經略天下, 故每屈禮, 多所舍貸.”는 皆順其時而不失其稱者也
요
秦皇之長城과 漢武之窮討는 皆知其事而不度其時者也라
向若遇孔熾之勢하여 行即序之方하면 則見侮而不從矣요 乗可取之資하되 懷畏避之志하면 則失機而養寇矣요
有攘却之力호되 用和親之謀하면 則示弱而勞費矣요 當降屈之時하여 務翦伐之略하면 則召禍而危殆矣라
故曰 知其事而不度其時則敗하고 附其時而不失其稱則成이라하니 是無必定之規하고 亦無長勝之法이라 得失著效가 不其然歟아
至於察安危之大情하며 計成敗之大數하여 百代之不變易者는 蓋有之矣니
其要가 在於失人肆慾則必蹶하고 任人從衆則必全이니 此乃古今所同而物理之所壹也라
9-1-5 그러므로 하우夏禹의 교화가 미쳐 서융西戎을 안정시킨 것과 주周나라가 〈성을 쌓아 험윤玁狁을〉 물리친 것과 태종太宗(이세민李世民)께서 〈돌궐을〉 정벌한 것은 모두 시기를 타서 그 형세를 잘 사용한 것이고,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적狄을 피한 것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
흉노匈奴와〉 화친을 맺은 것과
신요황제神堯皇帝(
당唐 고조高祖)께서 예를 낮춘 것은
注+① 神堯之降禮:≪新唐書≫ 〈突闕傳〉에 “頡利는 아버지와 형이 남긴 재물에 힘입은 데다 병사들이 날쌔고 말도 많아 중국이 자신들을 상대할 만하지 못하다고 여겨 〈중국에 보내는〉 글의 내용이 오만했으며 대부분 재물을 요구해온 것이었다. 神堯大聖光孝皇帝 高祖가 이제 막 천하를 경략하던 차였으므로 매번 예를 낮추고 금품을 많이 주었다.”고 하였다. 모두 시기를 따라 그 알맞음을 잃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진秦 시황제始皇帝가 장성長城을 쌓아 〈흉노를 막은〉 것과 한漢 무제武帝가 〈흉노를〉 끝까지 토벌한 것은 모두 일을 알았지만 시기를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를 만났을 때 그들을 회유하여 안정시키는 방책을 시행하였다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취할 만한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데도 두려워하고 피하려는 뜻을 품었다면 기회를 놓쳐 외적들을 길러주었을 것이며,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화친의 계책을 사용하였다면 유약함을 드러내어 재력을 소비했을 것이고, 낮추고 굽혀야 할 시기를 당하여 저들을 정벌하려는 계략에 힘썼다면 화를 자초해 위태로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알고 그 시기를 헤아리지 못하면 패하고 그 시기에 부합하고 그 알맞음을 잃지 않으면 성공한다.”고 한 것이니, 이는 반드시 정해진 규칙도 없고 늘 이기는 방법도 없는 것입니다. 득실의 드러난 결과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안위의 큰 정황을 살피며 성패의 큰 수를 헤아려서 백 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에 이르러서는 대체로 이러한 경우들도 있는데,
그 요체는 사람을 잃고 욕심을 제멋대로 하면 반드시 무너지고 사람을 믿고 대중을 따르면 반드시 보전하는 데에 있으니, 이는 바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만물의 이치에 있어 똑같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