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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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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謬以儒學으로 選居翰林하니 雖職異而恩參近侍로되
當陛下用兵之會하여하고 從陛下避狄之遊하여 靡出奇之計하고 見危 闕授命之節하고 知難하여
事君大猷 臣則皆曠하니 屑屑供職 曾何足云이리잇고


4-1-2 이 외람되이 유학儒學으로 선발되어 의 직책을 담당하였는데, 비록 직분상 조정의 대사를 보익하고 은혜롭게 근시近侍의 반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폐하께서 용병用兵을 하시는 때를 당하여 승리를 결정하는 계책을 내는 데 부족하였고, 폐하께서 역도들을 피하여 원유遠遊하실 때 호종하면서 뛰어난 계책을 내지 못하였고, 위기危機를 보고 목숨을 바치는 절조節操가 없었고 위난危難을 알고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간쟁함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임금을 섬기는 큰 계책을 신이 모두 방치하였는데 말단의 사무를 수행한 것을 어찌 말씀드릴 것이 있겠습니까.


역주
역주1 翰林 : 內翰이라고도 한다. 唐나라 때 翰林院에 소속된 관원으로서 황제의 詔令을 기초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唐나라 玄宗 26년에 翰林學士를 두어 內制를 담당하게 하고, 中書舍人에게 外制를 담당하게 하였다.
역주2 訏謨 : ≪詩經≫ 〈大雅 抑〉에서 “계책을 크게 하고 명령을 살펴 정하며 계획을 장구하게 하고 때에 따라 고하며, 위의를 공경하고 삼가야 백성의 모범이 되리라.[訏謨定命 遠猶辰告 敬愼威儀 維民之則]”라고 하였다.
역주3 决勝之籌 : 漢나라 高祖의 謀士인 張良이 “장막 안에서 산가지를 놓아 천 리 밖에서 결승한다.[運籌策帷幄中 決勝千里外]”라고 한 데서 나왔다.(≪漢書≫ 〈張良傳〉)
역주4 伏死之爭 : ≪春秋左氏傳≫ 成公 2년에 “신하는 군주의 번뇌를 다스리고 군주의 의혹을 제거하는 자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간쟁하는 것이다.[臣 治煩去惑者也 是以伏死而爭]”라고 하였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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