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前件事宜로 臣이 昨晩에 自行營迴하여 面奉進止호니 以臣의 所商量許李晟移就城東이 灼然穩便호되
但慮懷光이 不免悵望하여 因此生詞하여 轉難調息이면 則不如不去일새 令臣으로 更審細思量하여 奏來者라하시니 臣以事機得失이 所繫安危라 千慮百思하여 通夕忘寐하니
誠以貪因循而不能矯失者
는 終有大患
하고 處
而不思出險者
는 必無久安
일새 罄陳蒭蕘
하노니 惟所省擇
이니이다 謹奏
라
4-6-4
으로
신臣이 지난밤에
행영行營에서 돌아와 인견하고 성상의
성지聖旨를 받았는데 이르기를 ‘
신臣의
상량商量한 바대로
이성李晟에게 군사를 옮겨 장안성 동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 분명히 온당하다.
그러나 이회광李懷光이 틀림없이 실망하여 이로써 트집을 잡는 말을 하여 더욱 제어하기 어렵게 되면, 이성이 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하니, 신으로 하여금 다시 세밀하게 살피고 생각하여 상주하라.’ 하셨습니다. 신은 사기事機의 득실得失이 안위安危에 관계된 바여서, 밤새도록 숙고하였습니다.
진실로 지난 방식에 안주하여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끝내 큰 환란이 있게 되고,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여 험로를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필시 영구히 편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의 하찮은 의견을 다 아뢰오니, 부디 살피시어 채택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 이 주의奏議는 앞의 〈봉천논이성소관병마장奉天論李晟所管兵馬狀〉에서 이성李晟의 군대를 장안 동쪽으로 옮기도록 건의하여 이성이 이회광李懷光의 군대에서 떨어져 나가고 난 뒤에 그 후속조처에 관한 것이다. 이 주의奏議에서 육지陸贄는 이회광과 이건휘李建徽․양혜원楊惠元의 상황을 분석하여, 이건휘․양혜원의 군대도 이회광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육지는 “지금 병사를 모아놓았는데 쓰려고 하지 않고 장수들을 모아놓았는데 합심하지 못하니, 그들이 저절로 간악한 자가 되어 곧 변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을 머물러두어도 상대를 제압할 수가 없어서, 그저 앙화를 조장할 뿐이고, 분산시키면 각각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 경쟁하다가 혹 공적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육지는 군사를 통제하고 장수를 제어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하였다. 즉 “군사를 통제하고 장수를 제어함에 있어서 귀하게 여겨야 할 바는 실정을 보아 분리하거나 결합하는 일, 신속히 이동하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것에 각각 마땅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군대를 신속히 이동시키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것은 군사 훈련의 하나로 이미 ≪주례周禮≫에서도 중시한 바 있다. 즉 ≪주례周禮≫ 〈하관夏官 대사마大司馬〉에 “좌작坐作ㆍ진퇴進退와 질서疾徐ㆍ소삭疏數의 절도를 가르쳤다.[以敎坐作進退 疾徐疏數之節]”라고 하였다. 또한 육지는 “일에는 반드시 그러한 것이 있어서 결단코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툼을 풀려면 떨어뜨려놓지 않을 수 없고, 위급함을 구하려면 신속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이치를 거듭 말하였다. 그리고 이미 내린 명령이라고 하여도 사태를 보아 수정하지 안 된다는 뜻을 말하여 “진실로 지난 방식에서 안주하여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끝내 큰 환란이 있게 되고,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여 험로를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필시 영구히 편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인순고식因循姑息하지 말고 교실矯失해야 한다고 충언을 한 것이다. 여기서 교실矯失이란 말은 통상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교왕과직矯枉過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하지만 ≪주역周易≫ 소과괘小過卦 괘사卦辭에 “소과小過는 형통하니 정함이 이롭다.[소과小過 亨 利貞]”라고 하였고, 후대의 ≪이천역전伊川易傳≫에 “과過는 보통을 넘는 것이다. 굽은 것을 바로잡음에 바룸을 과하게 함과 같으니, 과하게 함은 바름에 나아가는 것이다. 일은 때의 당연함이 있어 과하게 함을 기다린 뒤에 능히 형통함이 있다. 그러므로 소과小過는 스스로 형통할 뜻이 있는 것이다.[過者 過其常也 若矯枉而過正 過所以就正也 事有時而當然 有待過而後能亨者 故小過自有亨義]”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교왕과정矯枉過正은 취정就正의 한 방법으로 존중될 만하다. 육지의 교실矯失도 취정就正의 방법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