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陸宣公奏議(2)

당육선공주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육선공주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竇參 於臣素分 陛下 固所明知하시니 有何顧懷하여 輒欲營救리오마는
良以事關國體하고 義絶私嫌일새 所冀典刑 不濫於淸時하고 君道 免虧於聖德하노니
特希天鑑 俯亮愚誠하노이다 謹奏


9-2-4 두참이 신과 평소 어떤 사이였는지는 폐하께서 진실로 잘 알고 계신 바이니, 무슨 돌보아줄 것이 있어 번번이 구제하려 하겠습니까.
진실로 사안에 있어서는 국체國體와 유관하고 의리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혐의를 끊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법을 집행함이 청명한 세상에 남용되지 않고, 군도君道성덕聖德과 어긋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저 폐하께서 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굽어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두참竇參은 선조가 북주北周에서 나라에 투신한 호문세족豪門世族이었던 까닭에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올랐다. 학문이 부족하였으며 음험하고 강퍅한 성품이었으나 다른 사람을 탄핵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므로 덕종德宗의 총애를 입어 정원貞元 5년(789) 재상에 올랐다. 당시 동진董晉도 재상으로 있었지만 “단지 조서를 받들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但奉詔書 領然諾而已]”(≪구당서舊唐書≫ 〈동진전董晉傳〉)이었으므로, 두참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를 수 있었다. 황제가 재신들을 모아 회의를 할 때면 늘 황제 옆에 서서 진언을 일삼았으며, 곳곳에 친당親黨을 심어 다른 관원들의 동태를 밀고하게 하였다. 두참의 권세를 두려워한 관리들은 뇌물을 갖다 바쳤으며, 그 명단에는 치청절도사淄青節度使 이납李納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두참의 족질 두신竇申급사중給事中에 임명된 뒤 두참의 힘을 믿고 불법을 자행하였다. 이에 덕종은 두참에게 두신을 엄중히 경고하도록 하였지만 두참은 이를 가벼이 여겼으며, 이칙지李則之오통현吳通玄오통미吳通微 형제 등과 함께 육지陸贄를 무고하기도 하였다. 결국 두참은 침주별가郴州別駕로 폄직되었으며, 두신도 도주사마道州司馬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두참이 침주에 도착한 뒤 선무군절도사宣武軍節度使 유사영劉士寧으로부터 비단 50필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두참과 틈이 있었던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이손李巽이 이를 고변하자, 대노한 덕종에 의해 사사될 뻔하였다가 육지가 적극적으로 구원해준 덕분에 면할 수 있었다. 육지의 〈상량처치두참사체장商量處置竇參事體狀〉은 바로 이때 두참을 구원하기 위해 작성된 글로, ≪구당서舊唐書≫ 〈두참전竇參傳〉에도 상당 부분이 절록되어 있다. 육지는, 자신이 두참을 비호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한편 재상 반열에 있는 사람을 처분할 때는 법과 원칙에 따름으로써 사사로이 결정했다는 혐의[사혐私嫌]를 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자신을 무함한 자에 대해서도 사감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국체國體를 염려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상량처치두참사체장〉은 영의정 이덕형李德馨(1561~1613)이 사직하며 올린 차자에도 인용된 바 있다. 요지는 영창대군이 아직 어리기에 죄를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주요한 부분만 절록하여 밝힌다.
이의李㼁가 죽으면 화의 뿌리가 끊어져 나라가 편안해질 것이며 이의가 죽지 않으면 인심이 흔들려 조정이 위태로울 것이니,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 속히 처단하고자 하는데 조정에 있는 재상들 또한 누군들 이런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역모를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나이가 혹 차지 않았을 경우 법적으로 형을 시행할 수 없는데, 법은 왕이 삼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근을 제거하는 데 어찌 적절한 방법이 없겠습니까. 신과 여러 재상들이 감히 다른 논의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삼가 옥당의 차자를 보건대, 잇따라 배척을 가하며 역적을 놓아주어 임금을 위태롭게 한다는 죄로 지목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부터 모골이 송연하였습니다.……법망이 흉악한 무리들을 빠져나가게 할 경우 무리들을 불러모아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매번 큰 염려를 하는 일종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들이 모두 국은을 입었고 모두 이목이 있으니, 의분에 북받쳐 발언하는 것이 어찌 다른 사람에게 뒤지겠습니까. 저 옥당의 논의가 비록 지나친 염려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원근에 전해지자 인심이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육지가 여우처럼 의심하여 지나치게 방지하는 것을 깊이 경계한 것은 바로 오늘날 마땅히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당육선공주의(2)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