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爲文이 不專意則不工이요 若專意則志局於此니 又安能與天地同其大也리오
人所以參天地
注+中庸第二十二章曰 可以與天地參矣라하니라而並立者
는 惟此心爲之主耳
니 苟志有所局
이면 又安能與天地參哉
아
故玩習外物이면 則正志喪失하리니 專意爲文도 亦玩物也라
57-2 呂與叔
注+按 淵源錄에 大鈞之弟니 藍田人이라 始學於橫渠先生이러니 卒乃入洛하야 事二先生하고 有東見錄하니라有詩云 學如元凱方成癖
이요 文似相如殆類俳
라
獨立孔門無一事
하니 只輸
注+退溪曰 猶致也요 又爲也라 柳眉巖曰 輸는 猶負也니 勝負를 謂之輸라 按 此輸字는 當作爲字意看이니라顔氏得心齋
注+莊子人間世篇에 顔回曰 敢問心齋하노이다 仲尼曰 云云 道集虛하니 虛者는 心齋也라하니라注+退溪曰 一志虛心이 爲心齋라 顔淵能心齋故로 孔子告之以道하시니라라하니 此詩甚好
라
古之學者는 惟務養情性이요 其他則不學이러니 今爲文者는 專務章句하야 悅人耳目하니 旣務悅人이면 非俳優而何오
杜元凱嘗自謂有左氏癖이라하고 所著訓解凡十餘萬言이라
司馬相如는 作子虛上林等賦에 徒衒文詞하야 務以悅人이라 故曰類俳라하니라
[張伯行 註] 因上文하야 言爲文亦玩物하고 遂引與叔詩하야 以明其不誣也라
莊子言顔子心齋坐忘이라하니 與叔이 實用其語하니라
人見六經
하고 便以謂聖人亦作文
이라하나니 不知聖人亦攄發胸中所蘊
하야 自成文耳
니 所謂有德者必有言也
注+論語憲問篇曰 子曰 有德者는 必有言이어니와 有言者는 不必有德이라하니라니라
聖人은 道全德盛하야 非有意於爲文이나 而文自不可及耳니라
游夏亦何嘗秉筆
하야 學爲詞章也
注+論語先進篇曰 文學은 子游子夏라하니라리오
舊說
注+益軒曰 考檀弓樂記之古注疏及漢書藝文志컨대 無此說하니 未知出處라에 子游作檀弓
하고 子夏作樂記之類
라
凡此皆道體之流行이요 人事之儀則이니 固未嘗秉筆學爲如此之文이요 而亦非若後世無用之空言也니라
57-5 且如觀乎天文
하야 以察時變
하고 觀乎人文
하야 以化成天下 此豈詞章之文也
注+賁卦彖曰 觀乎天文하야 以察時變하고 觀乎人文하야 以化成天下라하니라리오
天文은 謂日月星辰之文이요 人文은 謂人倫禮樂之文이라
57-1 “문장文章을 짓는 것이 도道에 해롭습니까?” 하고 묻자,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무릇 문장文章을 짓는 것은 전심專心하지 않으면 잘하지 못하고, 만약 전심專心하면 뜻이 여기에 국한局限되니, 또 어떻게 천지天地처럼 클 수 있겠는가.
《서경書經》에 ‘물건을 보고 익히면 뜻을 상실한다.〔玩物喪志〕’ 하였으니, 문장文章을 짓는 것도 완물玩物이다.
사람이
천지天地에 참예되어
注+《중용中庸》 제第22章에 이르기를 “천지天地와 더불어 참여된다.” 하였다.천지天地와
병립並立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이 마음이 주가 되기 때문이니, 만일
심지心志가
국한局限되는 바가 있다면 또 어떻게
천지天地에 참예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외물外物을 보고 익히면 바른 뜻이 상실되는 것이니, 문장文章을 짓는 데에 전심專心하는 것도 완물玩物이다.
여여숙呂與叔注+살펴보건대 《연원록淵源錄》에 “여여숙呂與叔은 여대균呂大鈞의 아우이니, 남전藍田 사람이다. 처음 횡거선생橫渠先生에게 배웠는데, 마침내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두 정선생程先生을 사사師事하였으며, 저서로 《동견록東見錄》이 있다.” 하였다.의
시詩에 ‘배움은
원개元凱(杜預)와 같으면
벽癖을 이루고, 문장은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같으면 자못
배우俳優와 유사하네.
오직
공문孔門에는 한 가지 일도 없으니,
注+퇴계退溪가 말씀하기를 “수輸는 치致와 같고 또 위爲(함)이다.” 하였다. 유미암柳眉巖(柳希春)은 “수輸는 부負와 같으니, 승부勝負를 영수贏輸라 한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수자輸字는 마땅히 위자爲字의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안씨顔氏(顔回)의 마음을 공경함만 못하다네.’
注+《장자莊子》〈인간세편人間世篇〉에 말하였다. “안회顔回가 말하기를 ‘감히 심재心齋를 묻습니다.’ 하니, 중니仲尼가 말씀하기를 ‘…… 도道는 허虛한 곳에 모이니, 허虛한 것은 심재心齋이다.’ 하였다.”注+퇴계退溪가 말씀하였다. “뜻을 한결같이 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심재心齋라 한다. 안연顔淵이 마음에 재계齋戒하였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도道를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였으니, 이
시詩가 매우 좋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오직 성性을 기름을 힘썼고 그 나머지는 배우지 않았는데, 지금에 문장을 짓는 자들은 오로지 장구章句에 힘써서 사람들의 이목耳目을 기쁘게 하니, 이미 남을 기쁘게 하기를 힘쓴다면 배우俳優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대림呂大臨의 자字가 여숙與叔이니, 장자張子와 정자程子의 문인門人이다.
두원개杜元凱가 일찍이 스스로 이르기를 “좌씨左氏(左傳)의 벽癖이 있다.” 하였고, 자신이 지은 훈해訓解(해석서)가 모두 십여만자十餘萬字이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와 〈상림부上林賦〉 등을 지을 적에 한갓 문사文詞를 자랑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힘썼으므로 배우俳優와 유사하다고 한 것이다.
재齋는 제숙齊肅하고 순일純一한 뜻이니, 심재心齋는 내용이 《장자莊子》에 보인다.
[張伯行 註]상문上文을 인하여 문장文章을 짓는 것도 완물玩物임을 말하고, 마침내 여여숙呂與叔의 시詩를 인용하여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심재心齋는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재계齋戒할 때와 같이 하는 것이다.
《장자莊子》에 ‘안자顔子가 심재心齋를 하고 좌망坐忘을 했다.’ 하였으니, 여여숙呂與叔이 실로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옛날에도 문장文章을 짓는 것을 배웠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사람들이
육경六經을 보고는 곧
성인聖人도
문장文章을 지었다고 이르는데, 이는
성인聖人 또한 가슴속에 쌓인 것을 펴내어 저절로
문장文章을 이루었을 뿐임을 알지 못한 것이니, 이른바 ‘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다’는 것이다.”
注+《논어論語》〈헌문편憲問篇〉에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훌륭한 말이 있거니와, 훌륭한 말이 있는 자는 반드시 덕德이 있지는 못하다.’ 하였다.”
성인聖人은 도道가 온전하고 덕德이 성대하여 문장文章을 짓는데 뜻을 둔 것이 아니나 문장文章이 〈훌륭하여〉 자연 미칠 수 없을 뿐이다.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를 문학文學이라 칭함은 어째서입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도 어찌 일찍이 붓을 잡고서
사장詞章(文章)을 짓는 것을 배웠겠는가.
注+《논어論語》〈선진편先進篇〉에 “문학文學은 자유子游와 자하子夏이다.” 하였다.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는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의 글을 익힌 자이다.
옛 주석
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단궁檀弓〉과 〈악기樂記〉의 옛 주소注疏 및 《한서漢書》〈藝文志〉를 상고해 보건대 이러한 말이 없으니, 출처出處를 알 수 없다.”에 ‘
자유子游가 〈
단궁檀弓〉(禮記의 편명)을 짓고
자하子夏가 〈
악기樂記〉를 지었다는 따위이다.’ 하였다.
이러한 글은 모두 도체道體의 유행流行이요 인사人事의 의칙儀則이니, 진실로 붓을 잡고서 이와 같은 문장文章을 짓는 방법을 배운 것이 아니요, 또한 후세에 쓸데없는 빈 말과 같은 것이 아니다.
또 ‘
천문天文을 관찰하여
시변時變을 살피고
인문人文을 관찰하여
천하天下를
화성化成(교화하여 이룸)한다’와 같은 것이 어찌
사장詞章의 글이겠는가.”
注+비괘賁卦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천문天文을 관찰하여 시변時變을 살피고 인문人文을 관찰하여 천하天下를 화성化成한다.” 하였다.
천문天文은 일日‧월月‧성신星辰의 문文을 이르고 인문人文은 인륜人倫과 예악禮樂의 문文을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