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今學者 敬而不(見)〔自〕得
하고 又不安者
는 只是心生
注+朱子曰 只是敬心不熟也라이며
持敬而無自得之意하고 又爲之不安者는 但存心未熟之故니라
且覺如此則安이요 不如此則不安이니 此學者所以貴居敬也라
大槪是存於心者尙生하야 未到純熟時候하야 此中尙有扞格處耳니라
16-2 亦是太以敬來做事得重이니 此恭而無禮則勞也라
恭者
는 私爲恭之恭也
요 禮者
는 非體之禮
注+記禮器曰 禮는 時爲大요 順次之요 體次之라하니 項氏曰 體者는 其支體라하고 嚴陵方氏曰 形之辨之謂體라 孔子閒居에 子夏曰 敢問何謂三無잇고 孔子曰 無聲之樂과 無體之禮와 無服之喪이니 此之謂三無라 威儀逮逮라 不可選也라하니 無體之禮也라하니라 註言仁人威儀之盛하야 自有常度하야 不容有所選擇하니 初不待因物以行禮而後에 可見이라 故以喩無體之禮也라 藍田呂氏曰 此三者는 皆行之在心하고 外無形狀이라 故稱無也라 禮必有體하니 其無體者는 非禮之文이요 乃禮之本也라하니 以此兩語觀之면 非體之禮는 本此而言耶아 恭而無禮之禮字는 非形體可見之禮요 是乃自然之理也니라라
是自然底道理也
어늘 只恭而不爲自然底道理
라 故不自在也
니 須是恭而安
注+安字有人爲之意하니 只言自然이 可也니라이니라
作意太過하야 勉强以爲恭而不知禮本自然하니 是以로 勞而不安也라
私爲恭者는 作意以爲恭而非其公行者也요 非體之禮는 謂非升降揖遜之儀와 鋪筵設几之文이라 蓋自然安順之理니라
16-3 今에 容貌必端하고 言語必正者는 非是道獨善其身하야 要人道如何라 只是天理合如此니 本無私意요 只是箇循理而已니라
循理則順乎自然
이요 盡乎當然
注+按 恐非循理之意라이니 何不安之有
리오
16-1 〈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지금 배우는 자가 공경하되
자득自得하지 못하고 또 편안하지 못한 것은 다만 〈공경하는〉 마음이 생소해서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심생心生은 단지 공경하는 마음이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이며,
경敬을 잡아 지키되 자득自得하는 뜻이 없고 또 편안하지 못한 것은 다만 마음을 보존함이 미숙未熟하기 때문이다.
[張伯行 註] 이는 정자程子가 공손하기만 하고 편안하지 못한 자를 위하여 말씀한 것이다.
경敬은 진실로 근엄謹嚴한 뜻이나 억지로 힘쓰고 구박拘迫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가운데에도 일찍이 우유優游(한가롭고 여유로움)하여 자득自得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이다.
또 이와 같이 하면 편안하고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음을 깨달으니, 이 때문에 배우는 자들이 거경居敬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제 경敬을 하되 자득自得하지 못함이 있는 것은 바로 억지로 하기 때문이다.
또 정신이 속박당하고 뜻이 급박하여 마음속에 편안하지 못한 바가 있는 듯함은 어째서인가.
대체로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가 아직 생소해서 순수하고 익숙해지는 시기에 이르지 못하여, 이 마음속에 아직도 한격扞格(갈등과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16-2 이 또한 경敬을 가지고 종사하기를 너무 중重하게 해서이니, 이는 공손하기만 하고 예禮가 없으면 수고롭다는 것이다.
〈여기의〉
공恭은 사사로이 공손하게 하는
공恭이요,
예禮는
형체形體의
예禮가 아니다.
注+《예기禮記》〈예기禮器〉에 “예禮는 때가 중요하고 순順함이 그 다음이고 체體가 그 다음이다.” 하였는데, 항씨項氏는 “체體는 지체支體이다.” 하고, 엄릉방씨嚴陵方氏는 “형체를 따라 분변함을 체體라 한다.” 하였다. 〈공자한거孔子閒居〉에 자하子夏가 “무엇을 삼무三無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소리없는 음악音樂과 체體(형체)가 없는 예禮와 복服이 없는 상喪이니, 이것을 삼무三無라 한다. 《시경詩經》에 ‘위의威儀가 익숙하여 가릴 것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체體가 없는 예禮이다.” 하였다. 그 주註에 “인인仁人은 위의威儀가 성대하여 저절로 떳떳한 법도法度가 있어서 취사선택할 것이 없으니, 애당초 물건을 따라 예禮를 행한 뒤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체體가 없는 예禮에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남전여씨藍田呂氏가 말하기를 “이 세 가지는 모두 행함이 마음속에 있고 밖에 형상形狀이 없으므로 무無라 칭한 것이다. 예禮는 반드시 체體가 있어야 하니, 체體가 없다는 것은 예禮의 문文이 아니고 바로 예禮의 근본根本이다.” 하였으니, 이 두 말로 살펴보면 체體가 없는 예禮는 이에 근본하여 말씀한 것일 것이다. 공손하기만 하고 예禮가 없다는 예자禮字는 형체로 볼 수 있는 예禮가 아니고 바로 자연의 이치이다.
이는
자연自然의
도리道理인데, 다만 공손하기만 하고
자연自然의
도리道理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자재自由自在하지 못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공손하면서도 편안해야
注+안자安字는 인위人爲로 하는 뜻이 있으니, 다만 자연自然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다.
작의作意(억지로 의욕을 냄)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여 억지로 힘써서 공손함을 행하고 예禮가 본래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지 못하니, 이 때문에 수고로워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사사로이 공손하게 한다는 것은 작의作意하여 공손함을 행해서 공정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요, 형체의 예禮가 아니라는 것은 오르고 내리고 읍揖하고 공손하게 하는 위의威儀와 자리를 펴고 궤几(안석)를 설치하는 문文이 아니라 자연스러워서 편안하고 순한 이치를 이른다.
16-3 지금 용모容貌를 반드시 단정하게 하고 언어言語를 반드시 바르게 하는 것은 홀로 자기 몸을 선善하게 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말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다만 천리天理가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니, 본래 사사로운 뜻이 없고 다만 이치를 따를 뿐이다.”
사의私意는 교식矯飾(억지로 꾸밈)함을 이르니, 작위作爲의 뜻이다.
이치를 따르면
자연自然에 순하고 당연함을 다하니,
注+살펴보건대 이치를 따르는 뜻이 아닌 듯하다. 어찌 편안하지 않음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