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辭立其誠을 不可不仔細理會니 言能修省言辭 便是要立誠이라
修省言辭者는 中有其誠하야 省治之하야 將以立實德也요 修飾言辭者는 中無其誠하고 虛飾之하야 將以爲誇美也니 省飾之閒이 乃天理人欲之分이니라
橫渠는 以立言傳後로 爲修辭居業이요 明道所謂修辭는 但是非禮勿言이니라
16-2 若修其言辭는 正爲立己之誠意니 乃是體當自家의 敬以直內, 義以方外之實事니라
蓋修其言辭者
는 所以
其敬義之實事
요 而非徒事於虛辭也
니라
將日用間凡有所言에 便當斟酌하야 恐心口或有相違하고 內外未能如一이니 此乃是體當自家平日主敬守義하야 無念不實하고 無事不方底工夫니
有此實事而不敢苟면 則此中之辭 不期省而自省하야 而當其言辭之省時가 卽是誠意之立時矣리라
惟立誠이라야 纔有可居之處니 有可居之處면 則可以修業也니라
惟立己之誠意라야 始有可據守之地니 此誠旣立이면 則其業之所就 日以廣大하리라
16-4 終日乾乾
이 로되 却只是忠信所以進德
이 爲實下手處
요 修辭立其誠
이 爲實修業處
니라
君子終日乾乾
은 是體天行健
注+乾卦象曰 天行이 健하니 君子以하야 自强不息이라하니라之事
니 可謂大矣
나
然其實則惟忠信積於內而無一念之不實者 爲用功之地
요 修辭立於外而無一言之不實者 爲見功之地
니 蓋表裏一於誠
이라 至誠故
로 乾乾而不息
注+按 擬議는 非體當之意요 且修辭立於外도 文字有病이라 無一言之不實도 亦是用功이니 豈是見功之地乎아 無一念之不實하고 無一言之不實이면 則表裏一於誠也니 此乾乾不息底工夫어늘 又推而極之曰至誠故로 乾乾而不息이라하니 似非本文意로라注+中庸曰 至誠無息이라하니라이니라
“말을 닦음에 성誠을 세우는 것을 자세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니, 언사言辭를 닦고 살핌에 곧 성誠을 세워야 함을 말한 것이다.
만약 다만 언사言辭를 수식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다만 거짓을 할 뿐이다.
언사言辭를 닦고 살핀다는 것은 마음에 성실(진실)함이 있어 살피고 다스려서 장차 진실한 덕德을 세우려는 것이요, 언사言辭를 수식한다는 것은 마음에 성실함이 없고 헛되이 꾸며서 장차 아름다움을 자랑하려는 것이니, 살피고 수식하는 사이는 바로 천리天理와 인욕人慾의 분계分界이다.
“횡거橫渠는 말을 세워 후세後世에 전하는 것을 수사거업修辭居業이라고 여겼고, 명도明道의 이른바 수사修辭는 다만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다.”
16-2 언사言辭를 닦는 것으로 말하면 바로 자신의 성의誠意를 세우는 것이니, 바로 자신의 경이직내敬以直內와 의이방외義以方外를 체당體當(體行)하는 진실한 일이다.
성의誠意는 경敬과 의義의 실제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체당體當은 시속時俗의 말이니, 이른바 체험體驗, 감당勘當이라는 말과 같다.
언사言辭를 닦는 것은 경敬과 의義의 실제 일을 의의擬議하는 것이요, 한갓 허사虛辭를 일삼는 것이 아니다.
[張伯行 註]체당體當이란 체인體認하여 자신에게 합하게 하는 것이다.
언사言辭를 닦고 살피는 것으로 말하면 바로 자기의 성의誠意를 세우기 위하여 그러한 것이다.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말하는 바가 있을 적에 곧 참작하여 마음과 입이 혹 서로 위배됨이 있고 안과 밖이 한결같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자신이 평소에 경敬을 주장하고 의義를 지켜서 생각마다 진실하지 않음이 없고 일마다 방정하지 않음이 없음을 체당體當하는 공부이다.
이러한 실제의 일이 있어서 감히 구차하게 하지 않으면 이 가운데의 말이 살피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펴져서 언사言辭를 살펴야 할 때가 바로 성의誠意가 확립되는 때일 것이다.
16-3 도道가 호호浩浩하여 광대廣大하니, 어느 곳에 손을 써야 하는가.
오직 성의誠意를 세워야 비로소 의거依據할 곳이 있을 것이니, 의거依據할 곳이 있으면 업業을 닦을 수 있다.
도道가 광대하니, 어디에 힘을 써야 하겠는가.
오직 자신의 성의誠意를 세워야 비로소 의거하여 지킬 곳이 있게 되니, 이 성의誠意가 이미 확립되면 업業의 성취되는 바가 날로 광대해질 것이다.
16-4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쓰는 것〔乾乾〕이 매우 큰 일이나 다만 ‘충신忠信이 덕德을 진전시키는 것’이 실제로 힘을 쓰는 곳이 되고, ‘말을 닦음에 성실함을 세우는 것’이 실제로 업業을 닦는 곳이 된다.”
〈《정씨유서程氏遺書》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내용이 모두 《주역周易》 〈문언전文言傳〉에 보인다.
군자君子가 종일토록 부지런히 힘쓰는 것은 하늘의
운행運行이 굳셈을
체행體行하는 일이니,
注+건괘乾卦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응용하여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크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그 실제는 오직
충신忠信이 안에 쌓여서 한 생각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 공력을 쓰는 곳이 되고, 말을 닦아 밖에 세워서 한 마디 말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
공효功效를 보는 곳이 되니,
표리表裏가 성실함에 한결같아 지극히 성실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서 쉬지 않는 것이다.
注+살펴보건대 의의擬議는 체당體當의 뜻이 아니며, 또 말을 닦아 밖에 세운다는 것도 문자文字에 병통이 있다. ‘한 마디 말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 역시 공력을 쓰는 것이니, 어찌 공효功效를 보는 자리이겠는가. 한 생각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고 한 마디 말도 성실하지 않음이 없으면 표리表裏가 성실함에 한결같은 것이니, 이것이 부지런히 힘써 쉬지 않는 공부이다. 그런데 또 미루어서 ‘지극히 성실히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힘써 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본문本文의 뜻이 아닐 듯하다.注+《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