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敎人에 未見意趣면 必不樂學이니 欲且敎之歌舞로라
如古詩三百篇은 皆古人作之하니 如關雎之類는 正家之始라
欲別作詩하야 略言敎童子灑掃應對事長之節하야 令朝夕歌之하노니 似當有助니라
[張伯行 註] 敎人者必有以興起其好學之心而後에 樂之不厭이니 若未見此中意趣하야 心多扞格이면 那肯好學이리오
故古人敎童子에 歌詩學樂하고 舞勺舞象하니 無非欲見意趣하야 使其性情手足之間으로 皆得其養하야 而欣欣樂學耳라
故夫子云 興於詩라하시고 又云 詩可以興이라하시니 如首篇關雎之類는 尤爲正家之始하야 最極切要라
當時鄕人邦國에 皆遍用之하니 正欲使人日聞其詩하야 有以得哀樂之正하야 而想見不淫不傷之風也라
然此等詩는 言簡約而意深奧하야 老師宿儒도 猶待訓詁而後通이어든 況童子耶아
今欲別作易曉之詩하야 敎之以灑掃應對事長之節하야 使習爲易能之事하야 朝夕唱歎이면 意趣躍如하야 似於小學에 不爲無助라
朱子嘗作六經四書中要義하야 約爲韻語하고 名曰性理吟이라하야 以訓其子하시니 亦卽明道先生別欲作詩之意也니라
8.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사람을 가르칠 적에 의취意趣를 보게 하지 못하면 반드시 배움을 좋아하지 않으니, 우선 노래와 춤을 가르쳐야 한다.
고시古詩 3백 편 같은 것은 모두 옛사람이 지은 것이니, 〈관저關雎〉와 같은 따위는 집안을 바로잡는 시초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방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국가에도 사용하여 날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 시詩는 그 말이 간략하고 심오하여 지금 사람들이 쉽게 깨닫지 못한다.
나는 별도로 시詩를 지어 동자童子들로 하여금 쇄소응대灑掃應對하며 어른을 섬기는 예절을 간략히 말하여 아침저녁으로 노래하게 하고자 하니, 이렇게 하면 마땅히 도움이 있을 듯하다.”
[張伯行 註]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학문學問을 좋아하는 마음을 흥기시킨 뒤에야 배움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게 할 수 있으니, 만약 이 가운데의 의취意趣를 보지 못하여 마음에 한격扞格(갈등)이 많으면 어찌 학문을 좋아하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동자童子를 가르칠 적에 시詩를 노래하고 음악을 배우며 작勺으로 춤추고 상象으로 춤추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의취意趣를 보아 성정性情과 수족手足 사이에 모두 잘 길러줌을 얻어서 흔연欣然히 학문을 좋아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시古詩 3백 편篇은 영탄詠歎하고 음일淫佚(詩의 내용이 풍부하여 말 밖에 넘침)하여서 의미意味가 심장深長하다.
그러므로 부자夫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시詩에서 흥기한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시詩는 흥기하게 할 수 있다.” 하셨으니, 《시경詩經》의 수편首篇인 〈관저장關雎章〉과 같은 따위는 더더욱 집안을 바로잡는 시초가 되어서 가장 절실하고 요긴하다.
그리하여 당시에 지방 사람들과 국가에서 모두 사용하였으니, 이는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날마다 그 시詩를 듣고서 슬퍼함과 즐거움의 올바름을 얻어 즐거워하면서도 너무 빠지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너무 지나치게 상하지 않는 풍모風貌를 상상해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詩는 말이 간략하고 뜻이 심오하여 노사숙유老師宿儒도 오히려 〈《옥편玉篇》 등의〉 훈고訓詁를 필요로 한 뒤에야 알 수 있으니, 하물며 동자童子에 있어서이겠는가.
이제 별도로 깨닫기 쉬운 시詩를 지어서 쇄소응대灑掃應對하고 어른을 섬기는 예절을 가르쳐서 하기 쉬운 일을 익히게 하여 아침저녁으로 부르고 감탄하게 하고자 하니, 이렇게 하면 의취意趣가 약여躍如하여 소학小學에 도움이 없지 않을 듯하다.
주자朱子가 일찍이 육경六經과 사서四書 가운데에 중요한 뜻을 요약하여 운어韻語를 만들고 이름하기를 〈성리음性理吟〉이라 하여 자제子弟들을 가르치셨으니, 이 또한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별도로 시詩를 짓고자 하신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