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近思錄集解(2)

근사록집해(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근사록집해(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4. 感慨殺身者하고 從容就義者하니라
一時感慨하야 至於殺身而不顧 此匹夫匹婦 猶或能之어니와 若夫從容就義하야 死得其所 自非義精仁熟者 莫之能也
中庸曰 白刃 可蹈어니와 中庸 不可能이라하니 是也니라
○ 張南軒曰
君子 不避難하고 亦不入於難이요 惟當夫理而已 於所不當避而避 固私也 於所不當預而預 乃勇於就難이니 是亦私而已
皆從容乎義之所當然而已니라


44.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감개感慨하여 몸을 죽이기는 쉽고 종용從容를 이루기는 어렵다.”
일시적一時的으로 감개感慨하여 몸을 죽이면서도 돌아보지 않는 것, 이는 필부匹夫필부匹婦도 오히려 능할 수 있거니와 만약 종용從容를 이루어 죽음이 제자리를 얻는 것은 가 정밀하고 이 익숙한 자가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중용中庸》에 “흰 칼날은 밟을 수 있어도 중용中庸은 능히 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것이다.
장남헌張南軒이 말하였다.
군자君子을 피하지 않고 또한 에 들어가지도 않고 오직 도리道理에 마땅하게 할 뿐이니, 마땅히 피해서는 안 되는데 피하면 진실로 사사로운 것이요, 마땅히 참예해서는 안 되는데 참예하면 바로 에 나아감을 용맹하게 하는 것이니, 이 또한 사사로움일 뿐이다.
증자曾子자사子思을 피하기도 하고 피하지 않기도 한 것과 삼인三仁이 혹 죽기도 하고 혹 죽지 않기도 한 것은 모두 의 당연한 바에 종용從容한 것일 뿐이다.”


역주
역주1 如曾子子思……或死或不死 : 三仁은 세 사람의 仁者로 微子와 箕子와 比干을 이른다. 曾子는 武城에 있을 적에 武城의 邑宰가 지극 정성으로 받들었으나 越나라의 침략이 있자 즉시 피난을 갔고, 子思는 衛나라에 있을 때에 齊나라의 침략이 있자, 혹자가 피난을 가라고 권하였으나 子思는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나가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지키겠는가.” 하시고 떠나가지 않으셨다. 이에 대하여 孟子는 “曾子는 당시 스승이셨고 부형이셨기 때문에 떠나가신 것이요, 子思는 신하이셨고 미천하셨기 때문에 떠나가지 않으신 것이니, 曾子와 子思가 처지를 바꿨으면 모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하였다. 殷王 紂가 포악한 정치를 자행하자, 紂王의 庶兄인 微子는 도성을 떠나갔고 紂王의 叔父인 箕子는 거짓 狂人이 되었고 比干은 간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대하여 孔子는 “殷나라에 세 仁者가 있었다.〔殷有三仁〕”고 칭찬하셨다. 위의 내용은 《孟子》〈離婁 下〉에 보이고 아래의 내용은 《論語》〈微子〉에 보인다.

근사록집해(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