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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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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侯師聖注+河東人이니 二先生舅氏 華陰先生無可之孫이니라
22. 후사성侯師聖(侯仲良)注+후사성侯師聖하동河東 사람이니, 두 정선생程先生의 외숙인 화음선생華陰先生 무가無可의 손자이다.이 말하였다.
朱公掞[琰]注+河南偃師人이니 登進士第하야 官至集賢院學士하고 卒年五十八이라 初受學於安定이러니 後從二程於洛하니라 見明道于汝하고 歸謂人曰 光庭 在春風中하야 坐了一箇月이로라
주공염朱公琰(朱光庭)注+주공섬朱公掞하남河南 언사偃師 사람이니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벼슬이 집현원集賢院 학사學士에 이르렀으며 죽을 때 나이가 58세였다. 처음 안정安定 호원胡瑗에게 수학受學하였는데, 뒤에 낙양洛陽에서 두 정선생程先生에게 수학受學하였다.명도明道여주汝州에서 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춘풍春風 속에서 1개월 동안 앉아 있었다.’ 하였다.
游楊 初見伊川 伊川 瞑目而坐어시늘 二子侍立이러니 旣覺 顧謂曰 賢輩尙在此乎
유작游酢양시楊時가 처음 이천伊川을 뵈었을 때에 이천伊川이 눈을 감고 앉아 계시므로 두 사람이 모시고 서 있었는데, 이천伊川이 눈을 뜨신 다음 돌아보고 말씀하기를 ‘현자賢者들이 아직도 여기에 있었는가.
日旣晩하니 且休矣어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선 쉬어라.’ 하였다.
及出門하니 門外之雪 深一尺注+朱子曰 其嚴厲如此러니 晩年接學者 乃更平易하시니 蓋其學 已到至處 但於聖人氣象 差小從容爾시니라 明道則已從容이로되 惜其早死하야 不及用也 使及用於元祐間이면 則不至有今日事矣리라이러라
두 사람이 문을 나오니, 문밖에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나 되었다.”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그 엄함이 이와 같으셨는데 만년晩年에 배우는 자들을 접할 적에는 마침내 더욱 평이平易하셨으니, 그 학문이 이미 지극한 곳에 이른 것이다. 다만 성인聖人기상氣象에 있어 다소 종용從容함이 부족했을 뿐이다. 명도明道는 이미 종용從容하셨는데, 일찍 별세別世하여 미처 쓰이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만일 살아 계셔서 원우元祐 연간年間등용登用되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侯仲良 字師聖이요 朱光庭 字公琰이니 皆程子門人也
후중량侯仲良사성師聖이고 주광정朱光庭공염公琰이니, 모두 정자程子문인門人이다.
明道 接人和粹하고 伊川 師道尊嚴注+按 伊川年譜 明道先生 嘗謂先生曰 異日能使人尊嚴師道者 吾弟也 若引接後學하야 隨人材而成就之 則予不得讓焉이라하시니라하니
명도明道는 사람을 접할 적에 온화하고 순수하셨으며 이천伊川사도師道가 존엄하셨다.注+살펴보건대 이천伊川연보年譜명도선생明道先生이 일찍이 이천선생伊川先生에게 이르기를 “후일後日에 사람들로 하여금 스승의 존엄尊嚴하게 할 자는 우리 아우이며, 만약 후학後學들을 인접引接하여 인재人材에 따라 성취成就시키는 것은 내가 그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셨다.
皆盛德所形이로되 但其氣質成就 有不同耳 明道 似顔子하고 伊川 似孟子하시니라
모두 성덕盛德이 나타난 것이나 다만 기질氣質성취成就가 똑같지 않음이 있을 뿐이니, 명도明道안자顔子와 유사하고 이천伊川맹자孟子와 유사하셨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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