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今無宗子라 故朝廷에 無世臣하니 若立宗子法이면 則人知尊祖重本하리니
人知尊祖而重本하야 上下相維하면 自然固結而不渙散이라
18-2 古者
에 子弟從父兄
注+綱目에 沛令이 欲應陳涉한대 主吏蕭何曹參曰 君爲秦吏하야 今背之하면 恐子弟不聽하니 願召諸亡在外者하야 以劫衆하소서 乃召劉季하니 之衆이 已數十百人이라 令悔閉城이어늘 季乃書帛하야 射城上하야 遺沛父老하야 爲陳利害한대 父老乃率子弟하고 殺令迎季하야 立以爲沛公하니라 ○ 又綱目에 唐蒙이 請通夜郎道하야 爲置吏어늘 上이 拜蒙爲中郞將하야 將千人하고 從筰關하야 入見夜郞侯하고 厚賜之하며 喩以威德하고 約爲置吏하다 蒙이 還報한대 上以爲犍爲郡하고 發卒治道하니 卒多物故하야 有逃亡者어늘 用하야 誅之한대 巴蜀民이 大驚恐이라 上이 使司馬相如로 責蒙等하고 因喩告巴蜀民以非上意하니 其檄書 載司馬相如傳하니라하더니 今
에 父兄從子弟
하나니 由不知本也
라
且如漢高祖欲下沛時에 只是以帛書로 與沛父老한대 其父兄이 便能率子弟從之하고
又如相如使蜀에 亦移書責父老然後에 子弟皆聽其命而從之하니 只有一箇尊卑上下之分然後에 順從而不亂也라
漢初엔 去古未遠하야 猶有先王之遺俗하야 尊卑之分이 素定하니 所以上下順承而無違悖也니라
18-3 且立宗子法이 亦是天理니 譬如木必有從根直上一幹하고 亦必有旁枝하며
又如水雖遠이나 必有正源하고 亦必有分派處니 自然之勢也니라
故曰古者天子建國
이면 諸侯奪宗
注+沙溪曰 庶子爲諸侯면 則奪其宗子之大宗이니 如漢蕭何曹參之類라 雖支子나 爲諸侯면 則奪其大宗하야 以立祖廟也라 通典에 漢梅福云 諸侯奪宗이라하니 此謂父爲士하고 庶子封爲諸侯면 則庶子奪宗嫡하야 主祭祀也라 在諸侯라도 尙有奪義어든 況天子乎아 所言聖庶者는 謂如武王은 庶子로되 有聖德하야 奪代伯邑考之宗嫡也라云
이니라
天子
는 爲天下主
라 故得封建侯國
하야 賜之土而命之胙
注+按 周制에 建大社于國中호되 其壝는 東靑土, 南赤土, 西白土, 北驪土요 中央은釁以黃土라가 將建諸侯면 鑿取其方面之土하야 包以黃土하고 苴以白茅하야 以爲土封이라 又按 韻會에 建置社稷曰胙니 胙는 報也라 又胙는 祭福肉也라하고 諸侯
는 爲一國之主
라
18-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지금은 종자宗子가 없으므로 조정朝廷에 세신世臣이 없으니, 만약 종자법宗子法을 세운다면 사람들이 선조先祖를 높이고 뿌리를 소중히 여길 줄을 알 것이다.
사람들이 이미 뿌리를 소중히 여긴다면 조정朝廷의 세勢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옛날에는 종자宗子가 세록世祿을 세습하였으므로 세신世臣이 있었다.
사람들이 선조先祖를 높이고 뿌리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서 상하上下가 서로 유지維持되면 자연히 굳게 맺어져서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정朝廷의 세勢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18-2 옛날에는
자제子弟들이
부형父兄을 따랐는데,
注+《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패령沛令이 진섭陳涉에게 호응하여 〈진秦나라를〉 배반하려고 하자, 주리主吏인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 말하기를 ‘군君께서 진秦나라 관리가 되어 이제 배반하면 자제子弟들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되니, 도망하여 밖에 있는 자들을 모두 불러서 무리를 위협하시오.’ 하였다. 현령縣令이 마침내 유계劉季(劉邦)를 부르니, 유계劉季의 병력이 이미 수십 백 명에 이르렀다. 패령沛令이 후회하여 성문을 닫자 유계劉季는 마침내 흰 비단에 글을 써서 성 위로 쏘아 패읍沛邑의 부로父老에게 보내어서 이해利害를 설명하였다. 이에 부로父老들은 마침내 자제子弟들을 인솔하고 패령沛令을 살해한 다음 유계劉季를 맞이하여 세워서 패공沛公으로 삼았다.” 하였다.
○ 또 《강목綱目》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당몽唐蒙이 야랑夜郞의 길을 통하여 관리를 둘 것을 청하자, 상上(武帝)은 당몽唐蒙을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하여 병사 천 명을 거느리고 작관筰關을 따라 들어가서 야랑후夜郞侯를 만나보고 물건을 많이 하사하였으며, 위엄과 덕德으로 타이르고 관리를 둘 것을 약속하였다. 당몽唐蒙이 돌아와 보고하자 무제武帝는 야랑夜郞을 건위군犍爲郡으로 삼고 병졸을 징발하여 길을 닦게 하였는데, 병졸들이 많이 죽자, 도망하는 자가 있었다. 이에 군흥법軍興法을 적용하여 이들을 주벌하자, 파촉巴蜀의 백성들이 크게 놀라 두려워하였다. 상上은 사마상여司馬相如로 하여금 당몽唐蒙 등을 책망하고, 인하여 격문檄文을 돌려 파촉巴蜀의 백성들에게 고유告喩하여 이는 황제皇帝의 뜻이 아님을 말하게 하였다. 그 격문檄文은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에 실려 있다.” 지금에는
부형父兄이
자제子弟들을 따르니, 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漢 고조高祖가 패읍沛邑을 함락시키려 할 때에 다만 백서帛書를 패읍沛邑의 부로父老들에게 주자, 부형父兄들이 곧 자제子弟를 인솔하여 따랐다.
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촉蜀땅에 사신갔을 적에 또한 글을 보내어 부로父老들을 책責한 뒤에야 자제子弟들이 모두 명령을 듣고 따랐으니, 다만 하나의 존비尊卑와 상하上下의 분별分別이 있은 뒤에 순종順從하여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만약 법法으로 연속聯屬함이 없다면 어찌 가可하겠는가.
한漢나라 초기에는 옛날과 거리가 멀지 않아 아직도 선왕先王의 남은 풍속이 있어서 존비尊卑의 구분이 평소 정해졌으니, 이 때문에 상하上下가 순히 받들어 어김이 없었던 것이다.
18-3 또 종자법宗子法을 세우는 것이 또한 천리天理이니, 비유하면 나무가 반드시 뿌리에서부터 곧바로 올라간 한 줄기가 있고 또 반드시 곁가지가 있는 것과 같다.
또 물이 비록 멀리 흘러가나 반드시 바른 근원根源이 있고 또한 반드시 갈라진 물줄기가 있으니, 이는 자연自然의 형세이다.
곧은 줄기와 바른 근원은 대종大宗과 같고 곁가지와 갈라진 물줄기는 소종小宗과 같다.
18-4 그러나 또 곁가지가 발달하여 줄기가 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옛날에
천자天子가
제후국諸侯國을 세워주면
제후諸侯가
종宗을 빼앗는다.
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서자庶子가 제후諸侯가 되면 종자宗子의 대종大宗을 빼앗으니, 예컨대 한漢나라 소하蕭何와 조참曹參과 같은 따위이다. 비록 지자支子라도 제후諸侯가 되면 대종大宗을 빼앗아 선조先祖의 사당祠堂을 세운다. 《통전通典》에 한漢나라 매복梅福이 말하기를 ‘제후諸侯가 종宗을 빼앗는다.’ 하였으니, 이는 아버지가 사士가 되고 서자庶子가 제후왕諸侯王에 봉해지면 서자庶子가 종적宗嫡을 빼앗아 제사祭祀를 주관함을 말한 것이다. 제후諸侯에 있어서도 오히려 빼앗는 의리가 있는데, 하물며 천자天子이겠는가. 성왕聖王의 서자庶子를 말하면 무왕武王은 서자庶子이지만 성덕聖德이 있어서 형인 백읍고伯邑考의 종적宗嫡을 빼앗아 대신함과 같은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천자天子는
천하天下의
군주君主가 되므로
제후국諸侯國을
봉건封建하여 땅을 주고
조胙(社稷)를 명하며,
注+살펴보건대 주周나라 제도에 태사太社를 국중(서울)에 세우는데, 그 흙담은 동쪽은 청토靑土, 남쪽은 적토赤土, 서쪽은 백토白土, 북쪽은 흑토黑土로 하고, 중앙은 황토黃土를 발라 두었다가 장차 제후諸侯를 세우게 되면 그 방면의 흙을 파내어 황토로 싸고 흰 띠풀로 싸서 제후를 봉하는 흙으로 삼는다. 또 살펴보건대 《운회韻會》에 “사직社稷을 세우는 것을 조胙라 하니, 조胙는 보답함이다. 또 조胙는 제사의 음복飮福고기이다.” 하였다.제후諸侯는 한 나라의
군주君主가 된다.
그리하여 비록 종자宗子가 아니라도 또한 종宗을 자기에게 옮겨서 종묘宗廟를 세워 좨주祭主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