得天理之正
하고 極人倫之至者
는 堯舜之道也
요 用其私心
하야 依仁義之偏者
는 霸者之事也
注+欄外書曰 依는 猶言依託이니 與論語依於仁之依不同이라 偏은 是一偏이요 非仁義之全體니라 又曰 三代已下에 無此議論이요 或有此議論이라도 而無此人하니 惜乎라 神宗之不終用也여라
熙寧二年
에 先生
이 以大臣薦
으로 召除太子中允
이어늘 上疏
하야 首言王霸之事
호되 有天理人欲之分, 綱常純駁之辨
하시니라
2-2 王道는 如砥하야 本乎人情하고 出乎禮義하니 若履大路而行하야 無復回曲이요 霸者는 崎嶇反側於曲逕之中하야 而卒不可與入堯舜之道라
王道는 本乎人情之公하고 出乎禮義之正하야 平易正直而無回邪委曲之行이라
2-3 故誠心而王則王矣요 假之而伯(霸)則伯矣니 二者其道不同하니 在審其初而已라
惟陛下稽先聖之言하고 察人事之理하사 知堯舜之道備於己하고 反身而誠之하야 推之以及四海하시면 則萬事[世]幸甚하리이다
王者는 修己愛民하고 正中國, 攘夷狄이 無非以誠心而行乎天理요 霸者는 假尊王攘夷, 救災討叛之名義하야 以號令天下而自尊大耳니 其道雖霄壤之不侔나 然其初는 但根於一念之公私誠僞而已니라
宣帝雜王伯
注+前漢書元帝紀曰 元帝嘗侍燕할새 從容言 陛下持刑太深하시니 宜用儒生이니이다 宣帝作色曰 漢家自有制度하야 本以霸王道雜之라 奈何純任德敎하야 用周政乎아하니라하니 元不識王伯
하야 只是以寬慈
로 喚做王
하고 嚴酷
으로 喚作伯
하니 自古
로 論王伯至明道先生此箚
하야 無餘蘊矣
니라
[張伯行 註] 心之誠與不誠은 非他人所得與也요 在人主耳니 誠能稽於易[書]而思先聖立言之意하고 察於治而思人事盛衰之理하면 則知堯舜可爲而其道皆備於己리라
堯舜之道는 仁義之道也니 仁義命乎天하고 具乎性하야 足乎內하고 無待乎外하니 反求之身而已矣라
反身而誠이면 則存養克治之功深하야 粹然無復計功謀利之念이요 仁民愛物之意切하야 坦然皆成蕩平正直之規라
擧斯加彼하야 推及四海하면 中外禔福하고 遐邇蒙休하야 萬世之後에 以爲堯舜復生이리니 豈不幸甚이리오
觀程子此言하면 眞所謂堯舜其君者요而辨誠僞於心術之微하니 抑亦深切而著明矣로다
2-1 명도선생明道先生이 신종神宗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
천리天理의 올바름을 얻고
인륜人倫의 지극함을 다한 것은
요순堯舜의
도道이고, 사사로운 마음을 써서
인의仁義의 한쪽에 의탁한 것은
패자霸者의 일입니다.
注+《난외서欄外書》에 말하였다. “의依는 의탁依託이란 말과 같으니, 《논어論語》〈述而〉에 ‘의어인依於仁’의 의依와는 같지 않다. 편偏은 이 일편一偏이요 인의仁義의 전체全體가 아니다.” 또 말하였다. “삼대三代 이후에 이러한 의논이 없었고 혹 이러한 의논이 있더라도 이러한 사람이 없었으니, 애석하다. 신종神宗이 끝내 명유名儒를 등용하지 못함이여.”
희령熙寧 2년年에 선생先生이 대신大臣의 추천으로 태자중윤太子中允 권감찰어사이행權監察御史裏行에 제수되자, 글을 올려 첫 번째로 왕자王者와 패자霸者의 일을 아뢰었는데,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구분과 강상綱常의 순수純粹함과 잡박雜駁함의 구분이 있으셨다.
2-2 왕도王道는 숫돌처럼 평평하여 인정人情에 근본하고 예의禮義에서 나오니 큰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 다시는 돌거나 굽은 것이 없고, 패자霸者는 굽고 작은 길 가운데에서 기구崎嶇(險難)하고 불안不安하여 끝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왕도王道는 인정人情의 공정公正함에 근본하고 예의禮義의 바름에서 나와 평이平易하고 정직正直하여 간사하거나 위곡委曲한 행실이 없다.
기구崎嶇는 어렵고 험한 것이요, 반측反側은 불안한 뜻이다.
2-3 그러므로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왕도王道를 행하면 왕자王者가 되고 가식으로 하여 패도霸道를 행하면 패자霸者가 되니, 두 가지는 길이 같지 않으니, 그 처음을 살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주역周易》에 이른바 ‘털끝만한 차이가 천리나 어긋난다.’는 것이니, 처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선성先聖의 말씀을 상고하고 인사人事의 도리를 살피시어 요순堯舜의 도道가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아시고 몸에 돌이켜 성실하게 하여 미루어서 사해四海에 미치시면 만세萬世에 매우 다행할 것입니다.
〈《명도선생문집明道先生文集》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왕자王者는 자기 몸을 닦고 백성을 사랑하며 중국中國을 바로잡고 이적夷狄을 물리침에 진실한 마음으로 천리天理를 행하지 않는 것이 없고, 패자霸者는 왕자王者를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치며 재난災難을 구원하고 반역자叛逆者를 토벌한다는 명의名義를 빌려서 천하天下를 호령하여 스스로 존대尊大하게 할 뿐이니, 그 도道가 비록 하늘과 땅처럼 같지 않으나 그 처음은 단지 한 생각의 공公‧사私와 성誠‧위僞에 근원할 뿐이다.
“
한漢나라
선제宣帝는
왕도王道와
패도霸道를 뒤섞어 말하였으니,
注+《전한서前漢書》〈원제본기元帝本紀〉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원제元帝가 일찍이 한가로울 때에 부황父皇인 선제宣帝를 모시고 있었는데, ‘폐하陛下께서 형벌을 집행하시기를 너무 깊게 하시니, 마땅히 유생儒生을 등용하여야 합니다.’ 하고 조용히 말하자, 선제宣帝는 낯빛을 붉히고 말하기를 ‘한漢나라에는 따로 제도가 있어 본래 왕도王道와 패도霸道를 섞어서 사용하였으니, 어찌하여 순수히 덕교德敎에 맡겨 주周나라 정사政事를 사용한단 말인가.’ 하였다.”원래
왕도王道와
패도霸道를 알지 못하여 다만 너그럽고 인자한 것을
왕도王道라 부르고 엄하고 가혹한 것을
패도霸道라 불렀으니, 예로부터
왕도王道와
패도霸道를 논한 것이
명도선생明道先生의 이
차자箚子에 이르러 남김이 없게 되었다.”
[張伯行 註] 마음의 성실하고 성실하지 않음은 타인이 관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요 군주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진실로 서적書籍을 상고하여 선성先聖이 글을 쓰신 뜻을 생각하고 정치를 살펴서 인사人事의 성하고 쇠하는 이치를 생각한다면 요순堯舜이 될 수 있어서 그 도道가 모두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요순堯舜의 도道는 인의仁義의 도리道理이니, 인의仁義는 하늘로부터 명령을 받고 나의 성性에 갖추어져 있어서 내면內面에 충족하여 외면外面에서 기다릴 것이 없으니, 자기 몸에 돌이켜서 찾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기 몸에 돌이켜서 성실하면 존양存養과 극치克治의 공부가 깊어져서 순수하여 다시는 공功을 계산하고 이로움을 도모하는 생각이 없을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고 물건을 아끼는 뜻이 간절해서 평탄하여 모두 탕평蕩平하고 정직正直한 규모를 이룰 것이다.
이것을 들어 저기에 가하여 미루어서 사해四海에 미치면 중외中外가 모두 복을 받고 하이遐邇(遠近)가 아름다움을 입어서 만세萬世의 뒤에 요순堯舜이 다시 탄생했다고 말할 것이니, 어찌 심히 다행스럽지 않겠는가.
정자程子의 이 말씀을 보면 참으로 이른바 ‘그 임금을 요순堯舜으로 만든다.’는 것이요, 진실함과 거짓을 은미한 심술心術에서 분변할 수 있으니, 또한 깊고 간절하면서 드러나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