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凡解文字에 但易其心이면 自見理니 理는 只是人理라 甚分明하야 如一條平坦底道路라
詩曰 周道如砥
하니 其直如矢
라하니 此之謂也
注+益軒曰 平易其心이니 不可求之過深也라注+按 性理大全에 平坦底道路下에 有且如隨卦에 言君子向晦入宴息이라하니 解者多作遵養時晦之晦라 或問作甚晦字닛고 曰 此只是隨時之大者니 向晦則宴息也니라니라
理本平直하니 苟以崎嶇委曲之意로 觀之면 乃失之鑿이라
25-2 或曰 聖人之言을 恐不可以淺近看他니이다 曰
聖人之言이 自有近處하고 自有深遠處하니 如近處를 怎生强要鑿敎深遠得이리오
故聖人之言道 亦無所不至하니 如食毋求飽, 居毋求安은 是其近者요 如一貫之旨, 性天之言은 是其遠者니 固無非道也라
25-3 揚子曰 聖人之言
은 遠如天
하고 賢人之言
은 近如地
라하니 頤欲改之曰 聖人之言
이 其遠如天
하고 其近如地
注+按 二程全書曰 聖人之言은 遠如天하고 近如地하야 其遠也若不可得而及이요 其近也亦不可得而行이라 揚子曰 聖人之言은 遠如天하고 賢人之言은 近如地라하니 非也라하니 此段文字 與此小異하니라라하노라
其遠者
는 雖子貢
이라도 猶未易得而聞
注+公冶長篇에 子貢曰 夫子之文章은 可得而聞이어니와 夫子之言性與天道는 不可得而聞也라하니라이요 其近者
는 雖鄙夫
라도 可得而竭也
注+子罕篇에 有鄙夫問於我호되 空空如也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하노라니라
○ 或曰 聖人之言이 包蓄無所不盡하야 語近而不遺乎遠하고 語遠而不遺乎近이라
故曰其遠如天하고 其近如地라하시니 非但高遠而已니라
愚按 此段은 本欲人平心以觀書요 不可妄生穿鑿이며
如此則謂語近而不遺乎遠者로 意自不同也니 前說爲是니라
25-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무릇 문자文字를 해석할 적에 다만 그 마음을 평이平易(和平)하게 하면 저절로 이치를 볼 수 있으니, 이치는 다만 사람의 이치(도리)여서 매우 분명하여 한 줄기의 평탄平坦한 도로道路와 같다.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
주도周道(큰 길)가 숫돌과 같으니, 그 곧음이 화살과 같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그 마음을 평이平易하게 하여야 하니, 구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깊이 해서는 안 된다.”注+살펴보건대 《성리대전性理大全》에 ‘평탄저도로平坦底道路’ 아래에 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예컨대 수괘隨卦에 ‘군자君子가 날이 어둠을 향하면 방안에 들어가 편안히 쉰다.〔君子向晦入宴息〕’고 한 내용이 있는데, 해석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것을 ‘준양시회遵養時晦(도를 따라 힘을 길러 때에 따라 감춤)’의 회晦로 본다. 혹자或者가 “어떤 회자晦字로 보아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이는 다만 때를 따름의 큰 것이니, 날이 어둠을 향하면 방안에 들어가 편안히 쉬는 것이다.” 하였다.
이치는 본래 평탄하고 곧으니, 만일 기구崎嶇(평탄치 않음)하고 위곡委曲(구불구불함)한 뜻으로 본다면 마침내 천착穿鑿함에 잃을 것이다.
위의 시詩는 〈소아小雅 대동편大東篇〉에 보인다.
25-2 혹자가 말하기를 “성인聖人의 말씀을 천근淺近하게 보아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자,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은 본래 천근淺近한 곳이 있고 본래 심원深遠한 곳이 있으니, 예컨대 천근淺近한 곳을 어떻게 억지로 천착穿鑿하여 심원深遠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성인聖人의 도道는 원근遠近과 정조精粗가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도道를 말씀한 것 또한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밥을 먹을 때에 배부름을 구하지 말고 거처할 때에 편안함을 구하지 말라.’는 것 같은 것은 바로 천근淺近한 것이요, 일관一貫(一以貫之)의 뜻과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한 말씀 같은 것은 심원深遠한 것이니, 진실로 도道 아닌 것이 없다.
또 어찌 심원深遠한 것을 찾아서 지나치게 천착穿鑿함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
25-3
양자揚子가 말하기를 ‘
성인聖人의 말씀은
심원深遠하기가 하늘과 같고
현인賢人의 말씀은
천근淺近하기가 땅과 같다.’ 하였는데, 나는 이것을 고쳐 ‘
성인聖人의 말씀이
심원深遠한 것은 하늘과 같고
천근淺近한 것은 땅과 같다.’고 하려 한다.”
注+살펴보건대 《이정전서二程全書》에 “성인聖人의 말씀은 심원深遠한 것은 하늘과 같고 천근淺近한 것은 땅과 같아서, 그 심원深遠한 것은 미칠 수가 없을 듯하고 그 천근淺近한 것도 행할 수가 없다. 양자운揚子雲이 말하기를 ‘성인聖人의 말씀은 심원함이 하늘과 같고, 현인賢人의 말씀은 천근함이 땅과 같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하였으니, 이 단락의 문자는 이와 조금 다르다.
심원深遠한 것은 비록
자공子貢이라도 오히려 쉽게 얻어 듣지 못하였고,
注+《논어論語》〈공야장편公冶長篇〉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부자夫子의 문장文章(威儀와 문사文辭)은 얻어 들을 수 있으나 부자夫子께서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씀한 것은 얻어 들을 수 없다.” 하였다.천근淺近한 것은 비록 비루한 지아비라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注+《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비부鄙夫가 나에게 무엇을 묻되, 그가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나는 그 〈묻는 내용의〉 양단兩端(上과 하下, 본本과 말末)을 다 말해준다.” 하였다.
○ 혹자는 말하기를 “성인聖人의 말씀은 함축含蓄하여 다하지 않는 바가 없어서 천근淺近한 것을 말씀하면서도 심원深遠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심원深遠한 것을 말씀하면서도 천근淺近한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심원深遠한 것은 하늘과 같고 천근淺近한 것은 땅과 같다고 하신 것이니, 다만 고원高遠하기만 할 뿐만이 아니다.” 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살펴보건대, 이 단락은 본래 사람들이 마음을 평이하게 하여 책을 볼 것이요 망령되이 천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게 하고자 하신 것이며,
또 ‘성인聖人의 말씀은 본래 심원深遠한 곳이 있고 본래 천근淺近한 곳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다면 ‘천근淺近한 것을 말하면서도 심원深遠한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과는 뜻이 자연 같지 않으니, 앞의 해설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