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有言未感時
에 知何所寓
注+退溪曰 心經及遺書엔 知下에 有如字하니 知乃不知之意로 發語辭라 華語에 稱不知에 或去不하고 只稱知하니라닛고 曰
操則存
하고 舍則亡
하야 出入無時
하야 莫知其鄕
注+朱子曰 先聖이 只說操則存-存則靜而其動也 無不善矣라-, 舍則亡-於是乎有動而流於不善者라-, 出入無時, 莫知其鄕-出者는 亡也요 入者는 存也니 本無一定之時요 亦無一定之處요 特係於人之操舍如何耳라- 只此四句 說得心之體用始終眞妄邪正하야 無所不備요 又見得此心이 不操卽捨하고 不出卽入하여 別無閑處可安頓之意니라이니 更怎生尋所寓
리오
人心無常
이로되 亦惟操之則存
注+按 以此釋誠便存하니 恐不精이니라이니 學者實用力而有見於斯
하면 則眞得所以存心之要
하야 而不患於出入無時
注+按 朱子曰 出入兩字 有善有惡이라하니 然則並出入而謂之患은 恐不精이니라莫知其鄕矣
리라
46. “감동하지 않았을 때에는 마음이 어디에 붙여져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注+퇴계退溪가 말씀하였다. “《심경心經》과 《이정유서二程遺書》에는 지자知字 아래에 여자如字가 있으니, 지知는 바로 부지不知의 뜻으로 발어사發語辭이다. 중국말에 부지不知를 칭할 적에 혹 불不을 제거하고 다만 지知라고만 칭한다.” 하고 묻자, 〈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마음은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으니,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선성先聖(孔子)이 다만 ‘잡으면 보존되고〔操則存〕 놓으면 잃어서〔舍則亡〕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出入無時〕 그 방향을 알지 못한다.〔莫知其鄕〕’고 말씀하였으니, -잡으면 보존된다는 것은 정靜하여 그 동動함이 불선不善함이 없는 것이고, 놓으면 잃는다는 것은 이에 동動하여 불선不善함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출出은 망亡이고 입入은 존存이니, 본래 일정한 때가 없고 또한 일정한 장소가 없고, 다만 사람이 잡느냐 놓느냐의 여하에 달려있을 뿐이다. - 다만 이 네 구는 마음의 체體와 용用, 시始와 종終, 진眞과 망妄, 사邪와 정正을 말한 것이 모두 구비되었고, 또 이 마음이 잡지 않으면 곧 잃어버리고 나가지 않으면 곧 들어와서 별도로 편안히 머물 만한 한가로운 곳이 없는 뜻을 볼 수 있다.” 다시 어떻게 붙여져 있는 바를 찾겠는가.
다만 잡음이 있을 뿐이니, 잡는 방도는 공경하여 안을 곧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일정함이 없으나 또한 잡으면 보존되니,
注+살펴보건대 이것으로 성誠이 보존됨을 해석하였으니, 정밀하지 못한 듯하다. 배우는 자가 실제로 힘을 써서 이것을 봄이 있으면 마음을 보존하는 바의 요점을 참으로 알아서 나가고 들어옴이 일정한 때가 없어서
注+살펴보건대 주자朱子는 “출입出入 두 글자는 선善이 있고 악惡이 있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출입出入을 아울러 환患이라고 말한 것은 정밀하지 못한 듯하다. 그 방향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