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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2)

근사록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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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爲民立君 所以養之也
14-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백성을 위하여 군주를 세움은 백성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養民之道 在愛其力하니 民力足則生養遂하고 生養遂則敎化行而風俗美
백성을 기르는 는 힘을 아낌에 있으니, 백성의 힘이 풍족하면 생양生養이 이루어지고 생양生養이 이루어지면 교화敎化가 행해져서 풍속風俗이 아름다워진다.
故爲政 以民力爲重也
그러므로 정사를 함은 백성의 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春秋 凡用民力 必書하시니 其所興作 不時害義 固爲罪也 雖時且義라도 必書 見勞民爲重事也니라
춘추春秋》에 ‘백성의 힘을 쓴 것’을 반드시 기록하였으니 흥작興作(工役을 일으킴)이 때에 맞지 않고 에 해로우면 진실로 죄가 되며, 비록 때에 맞고 의롭더라도 반드시 기록한 것은 백성을 수고롭게 함이 중한 일이 됨을 나타낸 것이다.
春秋 書不時者 如隱公七年夏 城中丘注+按 中丘 魯邑이라 曰 凡書城者 完舊也 書築者 創始也 城中丘하야 使民不以時하니 非人君之心也之類 書時者 如桓十六年冬 城向之類 書不義者 如莊二十三年 丹桓宮楹注+按 桓宮 桓公廟也 柱也 ○ 胡氏傳曰 自常情觀之하면 丹楹刻桷 宜若小失이어늘 而春秋詳書于策하고 御孫以爲大惡 何也 하니 乃有亂心이라 廢人倫하고 悖天道하야 而不知正者也니라之類 書義者 如莊元年 築王姬之館注+按 王將嫁女于齊할새 旣命魯爲主 故公在諒闇 慮齊侯하야 當親迎이로되 不忍便以禮接於廟 又不敢逆王命이라 故築舍於外 齊强魯弱하고 又委罪於彭生하야 魯不能讐齊 然喪未闋이라 故異其禮하니 得禮之變이니라之類니라
춘추春秋》에 때에 맞지 않는 일을 기록한 것은 예컨대 은공隱公 7년 여름에 중구中丘축성築城注+살펴보건대 중구中丘나라 고을이다. 《호씨전胡氏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이라고 쓴 것은 옛것을 수축修築하여 완전하게 한 것이고, 이라고 쓴 것은 처음 만든 것이다. 중구中丘수축修築하여 백성을 부리기를 농한기에 하지 않았으니, 인군人君의 어진 마음이 아니다.”한 따위이고, 때에 맞는 일을 기록한 것은 환공桓公 16년 겨울에 땅에 축성築城한 따위이고, 의롭지 않은 일을 기록한 것은 장공莊公 23년에 환공桓公의 사당에 기둥을 단청丹靑注+살펴보건대 환궁桓宮환공桓公의 사당이고 은 기둥이다.
○ 《호씨전胡氏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관찰하면 사당의 기둥에 단청丹靑을 하고 서까래를 조각한 것이 작은 실수인 듯하나 《춘추春秋》에 이것을 책에 자세히 기록하고 어손御孫이 큰 죄악罪惡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환공桓公나라에서 죽임을 당하였는데 원수를 갚지 못하고 그 사당을 성대히 꾸며서 원수인 나라 임금의 여자女子(文姜)에게 과시하였으니, 이는 어지러운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인륜人倫을 버리고 천도天道를 어겨서 바른 도리를 알지 못한 자이다.”
한 따위이고, 의로운 일을 기록한 것은 장공莊公 원년元年왕희王姬관사館舍를 건축注+살펴보건대 주왕周王이 장차 나라에 딸을 시집보내려 할 적에 이미 나라에 명하여 혼인을 주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장공莊公양암諒闇(喪中)에 있으면서 나라 임금을 생각하여 마땅히 왕의 딸을 친영親迎해야 하나 차마 대로 사당에서 접견할 수가 없고, 또 감히 왕명王命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밖에 집을 지은 것이다. 당시 나라는 강하고 나라는 약하였으며, 또 나라가 팽생彭生에게 환공桓公을 죽인 죄를 전가하여 나라가 나라를 원수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그 를 다르게 한 것이니, 을 얻은 것이다.
〔補註〕을 얻었다는 것은 변례變禮에 맞음을 말한 것이다.
한 따위이다.
14-2 然有用民力之大而不書者하니 爲敎之意深矣
14-2 그러나 백성의 힘을 크게 쓰고도 기록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가르친 뜻이 깊다.
僖公 修泮宮注+按 毛氏曰 天子 辟雍이요 諸侯 泮宮이라한대 鄭氏曰 辟雍者 築土하야 壅水之外하야 圓如璧하야 四方來觀者均也 泮之言 半也 泮水者 蓋東西門하야 以南通水하고 無也 辟雍泮宮圖 見詩傳하니라 ○ 問 管子中說 辟雍 不是學이요 只是君和也라하니이다 朱子曰 旣不是學이면 君和又是箇甚物事 且如辟廱之義 古不可考 或以爲學名이라하고 或以爲樂名이라하야 無由辨證이나 但本說作學 亦說得好了 亦有人說辟雍 是天子之書院이라하니 太學又別이라 王制註 明也 和也 頖之言이니 所以班政敎也라하니라 ○ 胡氏曰 辟雍 未有明言其義 夫辟 君也 和也 言人君有和德이면 則天地之和應之라하니 出綱目漢平帝記하니라하고 復閟宮 非不用民力也언마는 然而不書하니 二者 復古興廢之大事
희공僖公반궁泮宮注+살펴보건대 모씨毛氏(毛萇)은 “천자天子벽옹辟雍이고 제후諸侯반궁泮宮이다.” 하였는데, 정씨鄭氏(鄭玄)은 “벽옹辟雍이라는 것은 흙을 쌓아 물의 밖을 막아서 구슬처럼 둥글게 만들어 사방에서 구경오는 자들이 고르게 한 것이고, 이라는 말은 이라는 뜻이니 반수泮水란 동쪽과 서쪽에 을 내어 남쪽으로 물을 통하게 하고 북쪽에는 없는 것이다.” 하였다. 벽옹辟雍반궁泮宮의 그림은 《시전詩傳》에 보인다.
○ “관자管子의 《중설中說》에 ‘벽옹辟雍은 학교가 아니고 다만 군주君主함이다.’ 하였습니다.” 하고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미 학교가 아니라면 군주의 화함이란 또 어떠한 물건인가? 우선 벽옹辟廱같은 뜻은 옛날에 상고할 수가 없다. 혹은 학교學校의 이름이라 하고 혹은 음악音樂의 이름이라 하여 변증할 방법이 없으나, 다만 학교라고 말한 것이 또한 내용이 좋다. 또한 어떤 사람은 벽옹辟雍천자天子서원書院이라고 하니, 이는 태학太學과는 또 다르다. 〈왕제王制〉의 에 ‘은 밝음이요 은 화함이며, 이라는 말은 반포班布함이니 정교政敎반포班布하는 것이다.’ 하였다.”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벽옹辟雍은 그 뜻을 분명히 말한 것이 있지 않다. 군주君主이고 함이니, ‘인군人君이 온화한 이 있으면 천지天地가 응한다.’ 하였는 바, 《강목綱目》의 〈한평제기漢平帝記〉에 보인다.”〔補註〕벽옹辟雍벽옹璧廱, 벽옹辟廱으로 쓰기도 하며, 반궁泮宮 역시 반궁頖宮으로 쓰기도 한다.
을 수리하고 비궁閟宮을 복구할 적에 백성의 힘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 두 가지는 옛 것을 회복하고 폐지된 것을 일으키는 큰일이다.
爲國之先務 如是而用民力 乃所當用也
나라를 다스리는 급선무急先務이니, 이와 같은 일을 하려고 백성의 힘을 쓰는 것은 당연히 써야 하는 경우이다.
人君 知此義 知爲政之先後輕重矣리라
임금이 이러한 의리義理를 안다면 위정爲政선후先後경중輕重을 알 것이다.”
〈經說 下同〉
〈《정씨경설程氏經說》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半也 諸侯之學 鄕射之宮 其東西南方 有水하야 形如半璧하니 以其半於天子之辟廱이라 故曰泮宮也
이니, 제후諸侯학궁學宮향사鄕射하는 西의 세 방위에 물이 있어서 모양이 반벽半璧과 같으니, 천자天子벽옹辟廱(太學)에 이 되기 때문에 반궁泮宮이라 이른다.
閉也 幽陰之義 廟也
는 닫음이니 그윽하고 음침한 뜻이고, 은 사당이다.
毛氏曰 先妣姜嫄之廟라하고 孟仲子注+沙溪曰 此孟仲子 恐非孟註所謂孟子之從弟者也 其時恐無註語로라曰 是媒宮注+詩正義曰 孟仲子曰 是謂媒宮이니 蓋以姜嫄祈郊媒而生后稷이라 故名姜嫄之廟하야 爲媒宮이라하니라注+沙溪曰 禮記月令 玄鳥至之日 以大(太)牢 祀于高禖라한대 高禖 先媒之神也 史記 簡狄 祭于高媒하고 呑卵生契라하니 後世 因謂皇后宮爲媒宮이라하니라라하니라
모씨毛氏(毛萇)는 “비궁閟宮선비先妣강원姜嫄의 사당이다.” 하였고, 맹중자孟仲子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이 맹중자孟仲子는 《맹자孟子》의 에 나오는 맹자孟子종제從弟가 아닌 듯하다. 맹자孟子 당시에는 가 없었을 듯하다.”는 “매궁媒宮注+시경정의詩經正義》에 맹중자孟仲子가 말하기를 “이것을 매궁禖宮이라 하니, 강원姜嫄교매郊媒에 기도하여 후직后稷을 낳았기 때문에 강원姜嫄의 사당을 이름하여 매궁媒宮이라 한다.” 하였다.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예기禮記》〈월령月令〉에 ‘현조玄鳥(제비)가 이르는 날에 태뢰太牢고매高禖에 제사한다.’ 하였는데, 그 에 ‘고매高禖선매先媒이다. 《사기史記》에 「帝嚳의 간적簡狄고매高媒(禖)에 제사를 지내고는 알을 삼켜 을 낳았다.」 하였는데, 후세에는 인하여 황후궁皇后宮매궁媒宮이라 칭했다.’ 하였다.”이다.” 하였다.
泮宮者 所以敎育賢材 閟宮者 所以尊事祖先이니 二者 皆爲國之先務
반궁泮宮은 어진 자와 재주 있는 자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요, 비궁閟宮선조先祖를 높여 섬기기 위한 것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 나라를 다스리는 급선무急先務이다.
以是而用民力故 無議焉하니라
이를 위하여 백성의 힘을 썼기 때문에 비판이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胡氏傳 : 胡安國이 지은 《春秋傳》을 이른다.
역주2 桓公見殺于齊……誇示仇人之女 : 仇人의 女란 魯나라 桓公의 夫人인 文姜을 이른다. 文姜은 齊나라 僖公의 딸로 오라비인 襄公과 通情을 하였다. 桓公 18년 桓公이 文姜과 함께 齊나라에 갔는데, 이들이 또다시 通情을 하다가 발각되자, 襄公은 公子 彭生을 시켜 桓公을 시해하게 하였으며, 결국 모든 책임을 彭生에게 전가하여 彭生을 죽였다.

근사록집해(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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