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代之時에 人君이 必有師傅保之官하야 師는 道之敎訓하고 傅는 傅之德義하고 保는 保其身體러니
4-2 後世엔 作事無本하야 知求治而不知正君하고 知規過而不知養德하니
君正則治可擧요 德盛則過自消니 正君養德者는 本也요 求治規過者는 末也니라
4-3 傅德義之道 固已疎矣요 保身體之法이 復無聞焉이라
4-4 臣以爲傅德義者는 在乎防見聞之非하고 節嗜好之過하며
非禮之事를 不接于耳目하고 嗜好之私를 不溺乎心術이면 則德義進矣리라
4-5 保身體者는 在乎適起居之宜하고 存畏愼之心하니
外適起居之宜하고 內存畏謹之念이면 則心神莊肅하고 氣體和平矣리라
4-6 今旣不設保傅之官이면 則此責이 皆在經筵하니
宮中言動服食之間에 經筵官이 皆得與聞之면 則深宮燕私之時 無異於經筵講誦之際요 對宦官宮妾之頃이 猶若師保之臨乎前也리라
4-7 有剪桐之戱면 則隨事箴規하고 違持養之方이면 則應時諫止니이다
史記
에 成王
이 與叔虞戱
할새 曰 以此封若
이라한대 史佚曰 天子無戱言
이라하고 遂請封叔虞於唐
하니라
遺書又云 某嘗進言하야 欲令上으로 於一日之中에 親賢士大夫之時多하고 親宦官宮人之時少하니 所以涵養氣質하고 薰陶德性이니라
4-1 이천선생伊川先生의 상소上疏에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삼대시대三代時代에는 임금이 반드시 사師와 부傅와 보保의 관원官員이 있어서 사師는 교훈敎訓으로 인도하고 부傅는 덕의德義를 보태주고 보保는 신체身體를 보호하였는데,
선생先生이 숭정전崇政殿 설서說書에 제수되자 첫 번째로 이 상소를 올렸다.
도道는 열어서 유인誘引하는 것이요, 부傅는 덧붙여주는 것이요, 보保는 안전安全하게 하는 것이다.
4-2 후세後世에는 일을 하는 것이 근본이 없어서 다스려지기를 구할 줄만 알고 임금을 바로잡을 줄을 알지 못하며, 허물을 바로잡을 줄만 알고 덕德을 기를 줄을 알지 못하니,
군주君主가 바르면 다스림을 거행할 수 있고, 덕德이 성하면 허물이 저절로 사라지니, 군주를 바로잡고 덕德을 기름은 근본이요, 다스려지기를 구하고 허물을 바로잡음은 지엽이다.
4-3 덕의德義를 덧붙여주는 도道가 진실로 이미 소략하고 신체身體를 보호하는 법이 다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후세後世에는 한갓 부傅와 보保의 명칭만 있고 직책이 없다.
사師를 말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 경연관經筵官이 교훈敎訓으로 인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4 신臣이 생각하건대 덕의德義를 덧붙여주는 것은 보고 듣는 잘못을 막고 기호嗜好의 지나침을 절제節制하는 데에 있으며,
예禮가 아닌 일을 귀와 눈에 접하지 않고 기호嗜好의 사사로움을 심술心術에 빠뜨리지 않으면 덕의德義가 진전될 것이다.
4-5 신체身體를 보호함은 기거起居의 마땅함을 알맞게 하고,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보존함에 있으니,
밖으로는 기거起居의 마땅함을 알맞게 하고 밖으로는 두려워하고 삼가는 생각을 보존하면 마음과 정신이 씩씩하고 엄숙하며 기운과 신체身體가 화평할 것이다.
4-6 지금 이미 사부師傅의 관원官員을 두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이 책임이 모두 경연經筵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황제皇帝께서 궁중宮中에 계실 적에 언동言動과 복식服食(말하고 동작하고 의복衣服을 입고 음식飮食을 먹는 것)을 모두 경연관經筵官으로 하여금 알게 하여
궁중宮中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입고 먹는 사이에 경연관經筵官이 모두 참여하여 들으면 깊은 궁중宮中에 사사로이 있을 때도 경연經筵에서 책을 강講하고 외울 때와 다름이 없을 것이요,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을 대하는 시간에도 오히려 사보師保가 앞에 임한 것과 같게 될 것이다.
4-7 오동나무 잎을 오려서 주는 장난이 있으면 일을 따라 경계하고 타이르며, 몸을 지켜 기르는 방법을 어기면 때에 따라 간하여 그치게 하여야 합니다.”
《사기史記》에 “성왕成王이 숙우叔虞(아우인 우虞)와 장난할 적에 오동나무 잎을 오려 규珪를 만들어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너를 봉해주겠다.’고 말하자, 사관史官인 윤일尹佚이 ‘천자天子는 농담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마침내 숙우叔虞를 당唐나라에 봉할 것을 청했다.” 하였다.
“〈유서遺書〉에 또 이르기를 ‘내 일찍이 진언進言해서 성상聖上으로 하여금 하루 동안에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가까이 하는 때가 많고 환관宦官과 궁인宮人을 가까이 하는 때가 적게 하고자 하였으니, 기질氣質을 함양涵養하고 덕성德性을 훈도薰陶하기 위해서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