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者潛心正道하야 不容有差니 其始는 甚微나 其終則不可救라
如師也過
와 商也不及
注+問 伊川謂師商過不及이 其弊爲楊墨이라하니이다 朱子曰 不似楊墨이라 墨氏之學은 萌孽已久하야 晏子時에 已有之라 兼師商之過不及하니 與兼愛爲我不關事니라 ○ 沙溪曰 子夏之學은 傳田子方하야 流爲莊周하니 則然矣어니와 子張之學이 流爲墨氏는 則未詳이니라이 於聖人中道
에 師
는 只是過於厚些
요 商
은 只是不及些
로되 然而厚則漸至於兼愛
하고 不及則便至於爲我
하니 其過不及
이 同出於儒者
로되 其末
이 遂至楊墨
하니라
至如楊墨도 亦未至於無父無君이언마는 孟子推之에 便至於此하시니 蓋其差必至於是也니라
子張은 才高志廣하야 泛愛兼容이라 故常過乎中하고 子夏는 篤信自守하야 規模謹密이라 故常不及乎中이라
二子於道에 亦未遠也나 然師之過는 其流必至於墨氏之兼愛요 子夏之不及은 其後傳田子方하고 子方之後에 爲莊周하니 是楊氏爲我之學也라
孟子推楊墨之極致하사 則兼愛者는 至於無父하니 蓋愛其父를 亦同於路人이면 是無父也요 爲我者는 至於無君하니 蓋自私其身而不知有上下면 是無君也니라
“유자儒者는 정도正道에 마음을 잠겨(두어) 차이가 있음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니, 〈차이가 있으면〉 그 시초에는 매우 미미하나 그 종말에는 구제할 수 없게 된다.
사師(子張)는
과過(지나침)하고
상商(子夏)은
불급不及(미치지 못함)한
注+“이천선생伊川先生이 사師와 상商의 과過함과 불급不及함이 그 말류末流의 병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하고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사師와 상商은 양주楊朱나 묵적墨翟과 똑같지 않다. 묵씨墨氏의 학문學問은 싹튼 지가 이미 오래되어서 안자晏子(晏嬰) 때에 이미 있었다. 사師와 상商의 과過와 불급不及을 겸하였으니, 묵적墨翟의 겸애兼愛와 양주楊朱의 위아爲我와 상관없는 일이다.”
○ 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자하子夏의 학문은 전자방田子方에게 전수하여 흘러가 장주莊周가 되었으니, 자하子夏의 불급不及함이 양주楊朱가 되었다는 것은 옳으나 자장子張의 학문이 흘러가 묵씨墨氏가 되었다는 것은 자세하지 않다.” 것이
성인聖人의
중도中道에 있어
사師는 다만 조금 후함에 지나치고
상商은 다만 조금 미치지 못한 것이었으나, 후하면 점점
겸애兼愛에 이르고 미치지 못하면 곧
위아爲我에 이르니,
과過함과
불급不及함이 똑같이
유자儒者에게서 나왔으나 그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에 이르는 것이다.
양주楊朱와 묵적墨翟도 무부無父, 무군無君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맹자孟子가 이것을 미루어 확대함에 곧 여기에 이르신 것이니, 그 차이가 반드시 여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師는 자장子張의 이름이고 상商은 자하子夏의 이름이다.
자장子張은 재주가 높고 뜻이 넓어서(커서) 널리 사랑하고 겸하여 포용하였으므로 항상 중도中道에 지나쳤고, 자하子夏는 독실하게 믿고 스스로 지켜서 규모規模가 삼가고 치밀하였으므로 항상 중도中道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 두 사람은 도道에 있어 또한 거리가 멀지 않았으나 사師의 지나침은 그 흐름이 반드시 묵씨墨氏의 겸애兼愛에 이르고, 자하子夏의 미치지 못함은 그 후에 전자방田子方에게 전수되고 전자방田子方의 뒤에 장주莊周가 되었으니, 이는 양씨楊氏의 자신을 위하는 학문이다.
맹자孟子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폐해의 극치極致를 미루어 확대해서 겸애兼愛하는 자는 무부無父에 이른다고 하셨으니 자기 부모를 사랑하기를 또한 길가는 사람과 같이 한다면 이는 부모가 없는 것(부모를 하찮게 생각함)이요, 자신을 위하는 자는 무군無君에 이른다고 하셨으니 스스로 자기 몸을 사사롭게 하여 상하上下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군주가 없는 것(군주를 하찮게 생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