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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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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傳經 爲難注+朱子曰 孔子後 若無箇孟子 也未有分曉 孟子後數千載 乃是得程先生兄弟하야 發明此理하시니 今看來 漢唐以下諸儒說道理하야 見在史策者 便直是說夢이니라하니 如聖人之後纔百年 傳之已差
聖人之學 若非子思孟子 則幾乎息矣리라
道何嘗息이리오마는 只是人不由之 道非亡也 幽厲不由也注+史記 幽王 名宮涅이니 周宣王之子 武王十二世孫也 厲王 名胡 夷王之子 武王十世之孫이라니라
群經 定于夫子之手하니 至孟子時하야 纔百年間이로되
猶賴曾子之門有傳하야 子思孟子之徒 相繼纘述하사 提綱挈領하고 闢邪輔正하야 以垂萬世하시니 如論語, 大學, 中庸, 孟子之書 可見矣니라


4.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경학經學을 전수하는 것이 어려우니,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공자孔子 이후에 만약 맹자孟子가 없었다면 또한 분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맹자孟子가 별세한 후 수천 년만에 비로소 정선생程先生 형제를 얻어 이 이치를 발명發明하셨으니, 지금 보건대 이후의 여러 유자儒者들이 도리道理를 설명하여 역사책에 나와 있는 것은 단지 꿈속의 얘기일 뿐이다.”성인聖人(孔子)이 별세한 뒤로 겨우 백 년이 지났는데도 함이 이미 잘못되었다.
성인聖人학문學問이 만약 자사子思맹자孟子가 아니었다면 거의 끊겼을 것이다.
가 어찌 일찍이 그치겠는가마는 다만 사람이 행하지 않는 것이니, 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유왕幽王여왕厲王注+사기史記》에 “유왕幽王은 이름이 궁녈宮涅이니 선왕宣王의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12세손世孫이며, 여왕厲王은 이름이 이니 이왕夷王의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10세손世孫이다.” 하였다.
〔補註〕혼우昏愚, 는 포악하다는 뜻으로 두 임금은 모두 나라를 쇠망衰亡하게 한 군주이다.
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여러 경서經書부자夫子의 손에서 정해졌는데, 맹자孟子 때에 이르러 겨우 백 년 사이였으나 미묘微妙한 말씀이 끊기고 대의大義가 어그러졌다.
그런데도 증자曾子문하門下에 전수함이 있음을 힘입어서 자사子思맹자孟子의 무리가 서로 이어 찬술纘述하여 강령綱領을 제시하고 부정한 말을 물리고 정도正道를 도와서 만대萬代에 남기셨으니, 《논어論語》‧《대학大學》‧《중용中庸》‧《맹자孟子》와 같은 책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역주
역주1 微言絶而大義乖 : 微言은 微妙한 眞理를 논한 聖人의 말씀이고, 大義는 大經의 큰 뜻을 이르는 바, 漢나라 劉歆이 太常博士를 꾸짖은 글에 “夫子가 별세하면서 微妙한 말씀이 끊겼고 70弟子가 죽으면서 大義가 어그러졌다.〔及夫子沒而微言絶 七十子卒而大義乖〕”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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