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2 伊川曰 近日事如何오 對曰 天下何思何慮리잇고
伊川曰 是則是有此理어니와 賢却發得太早在라하시니
至誠之道 不思而得
注+中庸이라 按 中庸本意는 言其聖人之德이 眞實無妄하야 不待思而得也요 此는 就知上하야 說何思何慮하야 言順理自然하야 不費思慮云爾니 意相不同이라하니 初何容心
이리오
然未能
而遽欲坐忘絶念
이면 此告子之不動心
注+孟子라 按 不動心을 朱子謂於言에 有所不達이면 則當舍置其言하야 而不必反求其理於心이요 於心에 有所不安이면 則當力制其心하야 而不必更求其助於氣라하시니 하니 不可不辨이니라而反爲心害者也
니라
에 又道恰好著工夫也
注+問以說了로 爲絶句否아 發得太早在는 是恰好着工夫處否아 退溪曰 得人字絶句나 然得字는 粘着鍛鍊說이요 人字는 單擧說爲是라 發得太早處는 非是着工夫요 因是回頭하야 却就平實田地上做活計니 是恰好着工夫處耳니라 ○ 沙溪曰 葉氏는 以何思何慮, 是則是有此理로 爲恰好着工夫하고 朱子는 以發得太早在로 爲恰好着工夫하야 二說이 不同하니 鍛鍊得人說者는 貼是則是有此理否아 貼發得太早在否아 ○ 按 是有此理어니와 賢却發得太早는 是鍛鍊得人說了者也요 恰好着工夫는 則在其中하니 恐不可以鍛鍊得, 着工夫로 分屬上二句也니라로다
心無紛擾 乃進學之地라 故又曰恰好著工夫라하시니라
人所患者
는 不能見得大體
니 謝氏合下
注+沙溪曰 猶言當初니 退溪眉巖이 皆訓初하니라便見得
호되 只是下學之功都欠
이라
[張伯行 註] 此因上文戒顯道之詞하야 又詳記伊川一時之語하야 以明其善敎也라
言伊川先生이 最能隨時誘人하야 旣戒其發言太早하고 又欲乘機策其下工夫일새 曰恰好著工夫라
蓋上蔡亦是涵養得有些端倪하야 見得無欲之妙로되 但未有著實工夫하야 後來에 終成捕風捉影이라
故戒以輕易自足하고 復勉以及時下學하야 便能循循向上去라
77-1 사현도謝顯道(謝良佐)가 이천伊川을 뵙자,
일본一本에는 이천伊川이 백순伯淳(明道)으로 되어 있다.
이천伊川이 “근일近日에 무슨 일을 하는가?”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천伊川은 말씀하기를 “이것이 이러한 이치가 있으나 그대가 발설發說하기를 너무 일찍한다.” 하셨으니,
지성至誠의
도道는 생각하지 않고 저절로 터득하니,
注+‘지성지도至誠之道 불사이득不思而得’은 《중용中庸》에 보인다. 살펴보건대 《중용中庸》의 본의本意는 성인聖人의 덕德이 진실하고 망령됨이 없어서 생각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앎을 말한 것이요, 이것은 지상知上에 나아가 하사하려何思何慮를 말하여 이치의 자연함을 따라 사려思慮를 허비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뜻이 서로 같지 않다. 애당초 어찌 마음씀을 용납하겠는가.
그러나
의義가 정밀하고
인仁이 익숙하지 못하면서 대번에 앉아서 잊고 생각을 끊고자 한다면 이는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이어서
注+부동심不動心은 《맹자孟子》에 보인다. 살펴보건대 고자告子의 부동심不動心을 주자朱子는 “말에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마땅히 그 말을 버려두어 굳이 마음에 그 이치를 돌이켜 찾을 것이 없으며,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그 마음을 힘써 제재해서 굳이 기운에 도움을 구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였으니, 이는 사마자미司馬子微(司馬承禎)의 좌망坐忘과는 같지 않다. 그런데 섭씨葉氏가 뒤섞어 말하였으니, 분변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리어 마음에
해害가 된다.
이천伊川은 곧바로 사람을 단련시킬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또 공부를 잘하도록 말씀한 것이다.
注+“설료說了에서 구句를 떼야 합니까? 발득태조재發得太早在가 바로 공부를 잘하도록 말씀한 곳입니까?” 하고 묻자, 퇴계退溪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득인得人이라는 글자에서 구句를 떼야 한다. 그러나 득자得字에 단련鍛鍊을 붙여 말한 것이고, 인자人字는 단독으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옳다. 발득태조發得太早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요, 이로 인해 머리를 돌려서 다시 평실平實한 곳에 나아가 공부하게 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부를 잘하도록 한 것〔恰好着工夫〕이다.”
○ 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섭씨葉氏는 하사하려何思何慮와 시즉시유차리是則是有此理를 흡호착공부恰好着工夫로 여겼고, 주자朱子는 발득태조재發得太早在를 흡호착공부恰好着工夫로 여겨서 두 말씀이 같지 않다. 단련득인설鍛鍊得人說이라는 것은 시즉시유차리是則是有此理에 해당하는가? 발득태조재發得太早在에 해당하는가?”
○ 살펴보건대 ‘시유차리是有此理 현각발득태조賢却發得太早’는 사람을 단련시켜 말씀한 것〔鍛鍊得人說了〕이요, 흡호착공부恰好着工夫는 바로 이 가운데 들어 있으니, 단련득鍛鍊得과 착공부着工夫를 가지고 위의 두 구句에 나누어 소속시켜서는 안 될 듯하다.
단련鍛鍊은 야공冶工이 쇠를 다스리는 것이니, 사람을 성취시키고 다스리기를 잘함을 말한다.
마음이 분요紛擾함이 없는 것이 바로 학문學問에 나아가는 터전이므로 또 공부를 잘하도록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이 염려스러운 것은
대체大體를 보지 못함이니,
사씨謝氏가
합하合下(원래, 당초)
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합하合下는 당초當初란 말과 같으니, 퇴계退溪와 미암眉巖이 모두 초初로 풀이하였다.”에 이러한 이치를 보았으나 다만
하학下學의 공부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공부를 잘하도록 말씀하였다고 한 것이다.”
[張伯行 註] 이는 상문上文의 현도顯道를 경계한 말씀으로 인하여, 또 이천伊川이 한때에 한 말씀을 자세히 기록해서 잘 가르치심을 밝힌 것이다.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때에 따라 사람을 유인誘引하기를 가장 잘하여 발언發言을 너무 일찍함을 이미 경계하였고, 또 기회를 틈타 공부에 힘쓰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공부를 잘하도록 말씀하였다.”고 한 것이다.
상채上蔡(謝良佐) 또한 이러한 단서를 함양하여 무욕無欲의 묘리妙理를 알았으나 다만 착실한 공부가 없어서 후래後來에 끝내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잡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쉽게 스스로 만족해 함을 경계하였고, 다시 때에 미쳐 아래로 인사人事를 배움을 힘써서 차례차례 위를 향해 가게 한 것이다.
권계勸戒가 더함이 있고 그침이 없음이 이와 같았으니, 사람을 속히 성취하게 함이 당연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