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在諸公自思之니 將聖賢所言仁處하야 類聚觀之하야 體認出來하라
孟子曰 惻隱之心仁也라하시니 後人이 遂以愛爲仁이라
愛는 自是情이요 仁은 自是性이니 豈可專以愛爲仁이리오
孟子言 惻隱之心은 仁之端也라하시니 旣曰仁之端이면 則不可便謂之仁이라
仁者固博愛
나 然便以博愛爲仁
이면 則不可
注+韓文十一 原道云 博愛之謂仁이요 行而宜之之謂義라하니라注+朱子曰 仁是根이요 愛是苗니 不可便喚苗做根이라 然而這箇苗는 却定是從那根上來니라니라
仁者는 愛之性이요 愛者는 仁之情이니 以愛爲仁이면 是는 指情爲性이라
或謂 樊遲問仁이어늘 子曰 愛人이라하시니 是는 夫子亦嘗以愛言仁也니이다 曰
孔門問答
이 皆是敎人於已發處
에 用功
하시니 孟子所謂惻隱之心仁也
도 亦是於已發之端
에 體認
注+退溪錄云 體는 驗也요 認은 辨識也라이니라
但後之論仁者 無復知性情之別이라 故程子發此義以示人하야 欲使沿流而遡其源也케하시니 學者其深體之니라
“이는 제공諸公들이 스스로 생각함에 달려 있으니, 성현聖賢이 인仁을 말씀하신 곳을 가져다가 유類끼리 모아 살펴보아서 체인體認해 내어야 할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이다.’ 하였는데, 후인後人들은 마침내 사랑을 인仁이라 하였다.
사랑은 본래 정情이요 인仁은 본래 성性이니, 어찌 오로지 사랑을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맹자孟子가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端緖라고 말씀하였으니, 이미 인仁의 단서라고 말했다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곧바로 인仁이라고 이를 수 없는 것이다.
한퇴지韓退之(韓愈)가 널리 사랑함을 인仁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
인仁한 자는 진실로 널리 사랑하나 곧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다.”
注+《한창려집韓昌黎集》 11권卷 〈원도原道〉에 이르기를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이것을 행하여 마땅하게 하는 것을 의義라 한다.” 하였다.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인仁은 뿌리이고 사랑은 싹이니, 싹을 뿌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싹은 바로 뿌리 위에서 나온 것이다.”
인仁은 사랑의 성性이요 사랑은 인仁의 정情이니, 사랑을 인仁이라고 한다면 이는 정情을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단端이라고 이른 것은 인仁이 가운데에 있음에 단서端緖가 밖에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번지樊遲가 인仁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으니, 이는 부자夫子께서 일찍이 사랑으로 인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공문孔門에서
문답問答함은 모두 이미 발한 곳에 공부를 쓰게 하였으니,
맹자孟子의 이른바 ‘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이다.’라는 것도 이미 발한 단서에
체인體認注+퇴계退溪의 기록에 “체體는 징험함이요 인認은 분변하여 인식함이다.” 하였다. 한 것이다.
다만 후세에 인仁을 논하는 자들이 다시는 성性‧정情의 구별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정자程子가 이 뜻을 발명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 흐름을 따라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자 하신 것이니, 배우는 자들은 깊이 체인體認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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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문인한대 이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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