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伊川先生曰 凡看文字에 先須曉其文義然後에 可求其意니 未有文義不曉而見意者也니라
[張伯行 註] 讀書는 是格物第一義니 則看文字에 不可不求作者之意라
然必先曉其文義而後에 意看得出이니 所以訓詁之學도 亦不可不用心이라
若於文義有所未曉에 謂可略觀大義라하면 必至穿鑿附會하야 失立言之本指矣리라
或一字分數解하고 或一義分數類하며 或斷或續하고 或單或合하며 或緩讀하고 或急讀이어늘 學究家不潛心理會하고 誤執舊見하야 拘泥不通하야 遂使作者之意不明하니 豈云曉文義者乎아
23.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무릇 문자文字를 볼 적에 먼저 모름지기 글뜻을 깨우친 뒤에야 본의本意를 찾을 수 있으니, 글뜻을 깨닫지 못하고서 본의本意를 아는 자는 있지 않다.”
〈《정씨유서程氏遺書》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張伯行 註]독서讀書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첫 번째 의리義理이니, 문자文字를 볼 적에 작자作者의 본의本意를 찾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그 글뜻을 깨달은 뒤에 본의本意를 볼 수 있으니, 이 때문에 훈고학訓詁學도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글뜻을 분명히 알지 못할 경우에 ‘대의大義를 대략 볼 뿐’이라고 말한다면 반드시 천착穿鑿하고 부회附會하여 글을 쓴 본지本指를 잃게 될 것이다.
혹자或者가 묻기를 “문장文章을 찾고 글귀를 따오면 도리어 학구學究(무식한 시골 학구學究)를 이룸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사람들은 글을 쓸 때에 각기 가리킨 뜻이 있으니, 모름지기 전후前後의 글뜻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혹 한 글자가 몇 가지 해석으로 나뉘고 혹 한 뜻이 몇 가지 종류로 나뉘며, 혹은 단절되고 혹은 연속되며, 혹은 한 가지만 말하고 혹은 여러 가지를 합하여 말하며, 혹은 느리게 읽고 혹은 급하게 읽어야 하는데, 학구가學究家들은 마음을 가라앉혀 이해하지 않고 예전의 잘못된 소견을 고집하여, 구애되고 빠져서 통하지 못하여 마침내 작자作者의 뜻이 분명하지 못하게 하니, 어찌 글뜻을 깨달은 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