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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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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漢儒 如毛萇, 董仲舒 最得聖賢之意 然見道不甚分明이요 下此卽至揚雄하야는 規模又窄狹矣니라
毛萇 治詩하야 爲河間獻王博士하고 仲舒 擧賢良對策하야 爲膠西相하니 二子言治 皆以修身齊家爲本하고 先德敎而後功利하야 最爲得聖賢意 揚雄 以淸淨寂寞爲道하야 無儒者規模하니라
○ 或問 한대 朱子曰
如云性者生之質 性非敎化不成 似不識本然之性이니라
又問 何所主而取毛公이잇고
攷之詩傳하면 緊要有數處
如關雎 所謂夫婦有別則父子親하고 父子親則君臣敬하고 君臣敬則朝廷正하고 朝廷正則王化成이라하니
要之亦不多見이나 只是氣象大槪好니라


8.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나라 유자儒者 중에 모장毛萇동중서董仲舒 같은 이가 가장 성현聖賢의 뜻을 얻었으나 를 봄이 그리 분명하지 못하였고, 이보다 내려와 양웅揚雄에 이르러서는 규모가 또 좁다.”
모장毛萇를 전공하여 하간헌왕河間獻王박사博士가 되었고, 동중서董仲舒현량과賢良科로 천거되고 대책對策을 하여 교서왕膠西王의 정승이 되었는데, 두 사람은 정치를 말함에 모두 수신修身제가齊家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덕교德敎를 먼저 하고 공리功利를 뒤에 하여 가장 성현의 뜻을 얻었고, 양웅揚雄청정淸淨적막寂寞라 하여 유자儒者규모規模가 없다.
○ 혹자가 이천伊川이 ‘동중서董仲舒를 봄이 분명하지 못하다.’고 한 것을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예컨대 ‘이다.’라고 한 것과 ‘교화敎化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한 것은 본연本然을 알지 못한 듯하다.”
또 “무엇을 주장하여 모공毛公(毛萇)을 취했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시전詩傳》을 상고해보면 긴요緊要한 것이 몇 군데 있다.
예컨대 〈관저關雎〉에 이른바 부부夫婦분별分別이 있으면 부자간父子間이 친하고 부자간父子間이 친하면 군신간君臣間이 공경하고 군신간君臣間이 공경하면 조정朝廷이 바르고 조정朝廷이 바르면 왕화王化가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요컨대 또한 이러한 내용을 많이 볼 수는 없으나 다만 기상氣象이 대체로 좋다.


역주
역주1 伊川謂 仲舒見道不分明 : 위의 原文을 보면 모두 明道의 말씀인데, 여기서는 또 伊川의 말씀이라 하여 서로 맞지 않는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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