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漢儒에 如毛萇, 董仲舒 最得聖賢之意나 然見道不甚分明이요 下此卽至揚雄하야는 規模又窄狹矣니라
毛萇은 治詩하야 爲河間獻王博士하고 仲舒는 擧賢良對策하야 爲膠西相하니 二子言治에 皆以修身齊家爲本하고 先德敎而後功利하야 最爲得聖賢意요 揚雄은 以淸淨寂寞爲道하야 無儒者規模하니라
如云性者生之質과 性非敎化不成은 似不識本然之性이니라
如關雎에 所謂夫婦有別則父子親하고 父子親則君臣敬하고 君臣敬則朝廷正하고 朝廷正則王化成이라하니
8.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한漢나라 유자儒者 중에 모장毛萇과 동중서董仲舒 같은 이가 가장 성현聖賢의 뜻을 얻었으나 도道를 봄이 그리 분명하지 못하였고, 이보다 내려와 양웅揚雄에 이르러서는 규모가 또 좁다.”
모장毛萇은 시詩를 전공하여 하간헌왕河間獻王의 박사博士가 되었고, 동중서董仲舒는 현량과賢良科로 천거되고 대책對策을 하여 교서왕膠西王의 정승이 되었는데, 두 사람은 정치를 말함에 모두 수신修身‧제가齊家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덕교德敎를 먼저 하고 공리功利를 뒤에 하여 가장 성현의 뜻을 얻었고, 양웅揚雄은 청정淸淨과 적막寂寞을 도道라 하여 유자儒者의 규모規模가 없다.
○ 혹자가 이천伊川이 ‘동중서董仲舒는 도道를 봄이 분명하지 못하다.’고 한 것을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예컨대 ‘성性은 생生의 질質이다.’라고 한 것과 ‘성性은 교화敎化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한 것은 본연本然의 성性을 알지 못한 듯하다.”
또 “무엇을 주장하여 모공毛公(毛萇)을 취했습니까?” 하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시전詩傳》을 상고해보면 긴요緊要한 것이 몇 군데 있다.
예컨대 〈관저關雎〉에 이른바 부부夫婦가 분별分別이 있으면 부자간父子間이 친하고 부자간父子間이 친하면 군신간君臣間이 공경하고 군신간君臣間이 공경하면 조정朝廷이 바르고 조정朝廷이 바르면 왕화王化가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요컨대 또한 이러한 내용을 많이 볼 수는 없으나 다만 기상氣象이 대체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