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習
은 重習也
니 時復思繹
하야 浹洽於中則說也
注+朱子曰 浹洽二字有深意라 如浸物於水하니 水若未入이면 只是外面濕이요 內面은 依然乾이니 必浸之久면 則透裏皆濕이라 習而熟하고 熟而說하야 脈絡貫通하니 程子所謂浹洽이 是也니라요
學者於所學之事에 時時思繹하야 不驟不輟하야 義理久면 則浹洽其中하야 自然悅豫也라
13-2 以善及人而信從者衆
이라 故可樂也
注+論語學而篇曰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하니라요
蓋與人爲善
注+孟子公孫丑上篇曰 君子이라하니라之意如此
라
13-3 雖樂於及人
이나 不見是而無悶
이라야 乃所謂君子
注+論語學而篇曰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하고 易乾卦文言曰 不成乎名하며 遯世无悶하야 不見是而无悶이라하니라 ○ 新安陳氏曰 引此語하야 解不知不慍이 甚切이니라注+雙峯饒氏曰 習字訓重故로 重險을 謂之習坎이라 ○ 朱子曰 說文에 習字從羽從白하니 月令所謂鷹乃學習이 是也라 ○ 程子曰 悅은 在心이요 樂은 主發散在外니라 朱子曰 程子非以樂爲在外也요 以爲積滿乎中而發越乎外耳라 悅則方得於內而未能達於外也니라 ○ 新安陳氏曰 不見是而無悶은 出易乾文言하니 不見是於人而無悶於心이라니라
雖樂於以善及人이나 然人或未信이면 則亦安其在我而已니 奚慍焉이리오
言朋來而樂고 蓋我之學이 旣有所得之善이면 便可推之以及人하야 而使之皆善이니 於是에 同有是善者 莫不興起而信從於我하리니
雖樂於及人이나 而同我者則知之하고 異我者或未必知之니 未知則難免於謗毁어늘
而我恬然處之하야 絶不生慍怒之意면 是卽易所云不見是而無悶者也니 乃所謂成德之君子라
然則夫子之言은 蓋謂學之成己요 而成己면 卽有以成物이니 乃成物之後에도 猶然爲己之心而已라
13-1 〈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
습習은 거듭함〔重習〕이니, 때때로 다시 생각하고 연구하여 마음속에 완전히 배어들면 기쁜 것이요,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협흡浹洽 두 글자는 깊은 뜻이 있다. 물건을 물에 담그는 것과 같으니, 물이 만약 깊숙이 스며들지 않으면 단지 외면外面만 젖고 내면內面은 그대로 말라 있으니, 반드시 적시기를 오래 하면 속까지 스며들어가서 모두 젖게 된다. 익혀서 익숙해지고 익숙하여 기뻐져서 맥락脈絡이 관통하니, 정자程子가 말씀한 협흡浹洽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역繹은 왕래하기를 주역紬繹(계속하여 끊이지 않음)하는 것이다.
배우는 자가 배운 바의 일에 대하여 때때로 생각하고 연구해서 급히 서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아니하여 의리義理를 오래도록 거듭하면 마음속에 완전히 배어들어서 자연 기뻐지는 것이다.
13-2
선善으로써 남에게 미쳐 믿고 따르는 자가 많으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요,
注+《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 말하였다. “동지同志가 먼 지방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선善을 자기 몸에 소유하여 남에게 미칠 수 있다.
믿고 따르는 자가 많아서 함께 선善에 돌아가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남과 함께
선善을 하는 뜻이 이와 같은 것이다.
注+《맹자孟子》〈공손추公孫丑 상편上篇〉에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남과 함께 선善을 하는 것보다 더 훌륭함이 없다.”
13-3 비록 남에게 미침을 즐거워하나 옳게 여김(인정)을 받지 못하여도 근심함이 없어야 비로소 이른바
군자君子라는 것이다.”
注+《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이르기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하였고,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이르기를 “이름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세상에 은둔하여도 근심함이 없어서 옳게 여김을 받지 못하여도 근심하지 않는다.” 하였다.
○ 신안진씨新安陳氏가 말하였다. “이 말을 인용하여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음’을 해석한 것이 매우 간절하다.”注+쌍봉요씨雙峯饒氏가 말하였다. “습자習字는 거듭의 뜻이 있으므로 〈《주역周易》의 감괘坎卦에〉 거듭 험한 것을 습감習坎이라 한 것이다.”
○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설문說文》에 습자習字는 우羽를 따르고 백白을 따랐으니,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이른바 ‘새매가 날기를 배워 익힌다’는 것이 이것이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열悅은 마음속에 있고 락樂은 발산함을 위주하여 밖에 있는 것이다.”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정자程子가 락樂을 밖에 있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요, 마음속에 가득히 쌓여서 밖에 나타난다고 하셨을 뿐이다. 열悅은 이제 막 안에 얻었고 아직 밖에는 도달하지 못한 뜻이다.” 하였다.
○ 신안진씨新安陳氏가 말하였다. “불견시이무민不見是而無悶은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보이니, 남에게 옳게 여김을 받지 못해도 마음에 근심함이 없는 것이다.”
〈《정씨경설程氏經說》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비록 선善으로써 남에게 미침을 즐거워하나 사람들이 혹 믿지 않으면 또한 자신에게 있는 것을 편안히 여길 뿐이니, 어찌 서운하게 여길 것이 있겠는가.
스스로 믿음이 독실하여 밖에 기다림이 없으니, 이 때문에 덕德을 이룸이 되는 것이다.
[張伯行 註] 이는 정자程子가 《논어論語》 수장首章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배움에 습習이라고 말한 것은 반복하여 익숙하게 하는 것이니, 때로 익숙하게 하는 것이 어째서 기쁠 수 있는가.
때때로 자세히 다시 생각하여 의리가 마음속에 흡족하게 하면 기뻐지는 것이다.
나의 학문學問이 이미 얻은 바의 선善이 있으면 곧 이것을 미루어 남에게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선善하게 하여야 하니, 이에 함께 이 선善을 소유한 자가 흥기하여 나를 믿고 따르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습講習하는 자가 날로 많아지고 의기意氣가 날로 믿어지므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아야 비로소 군자君子’라고 말함은 어째서인가.
비록 남에게 미치는 것을 즐거워하더라도 나와 같은 자는 알아주지만 나와 다른 자는 혹 알아주지 않을 것이니, 알아주지 않으면 훼방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내가 태연히 대처하여 서운해 하고 성내는 뜻을 전혀 내지 않는다면 곧 《주역周易》에서 말한 ‘옳게 여김을 받지 못하여도 근심함이 없다’ 는 자이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성덕군자成德君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자夫子의 말씀은 배워서 자기를 이루고 자기를 이루면 곧 남을 이루게 할 수 있으니, 이는 바로 남을 이루게 한 뒤에도 오히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일 뿐임을 말씀한 것이다.
이 어찌 배우지 않는 자가 알 수 있는 것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