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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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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孔明注+朱子曰 孟子以後人物 只有子房與孔明이니라 ○ 孔明 天資甚美하고 氣象宏大 但所學 不盡純正이니라 ○ 孔明 本不知學하야 全是駁雜了 然却有儒者氣象하니 後世 誠無他比니라 ○ 孔明 出於申韓하니 如授後主以六韜等書 與用法嚴處 可見이니라 이나 道則未盡이라
10-1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공명孔明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맹자孟子 이후의 인물人物은 오직 자방子房(張良)과 공명孔明이 있을 뿐이다.”
공명孔明천품天稟이 매우 아름답고 기상氣象이 컸으나 다만 배운 바가 극진히 순정純正하지 못했을 뿐이다
공명孔明은 본래 학문을 몰라서 완전히 잡박雜駁하였으나 유자儒者기상氣象이 있었으니, 후세後世에는 진실로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다.
공명孔明신불해申不害한비韓非에서 나왔으니, 예컨대 후주後主(劉禪)에게 《육도六韜》 등의 병서兵書를 가르치고 을 엄격히 적용하도록 한 곳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왕좌王佐의 마음이 있었으나 는 미진하다.
王者 如天地之無私心焉하야 行一不義而得天下라도 不爲하나니
왕자王者천지天地처럼 사심私心이 없어서 한 가지 불의不義를 행하여 천하天下를 얻을 수 있더라도 하지 않는다.
孔明 必求有成而取劉璋注+劉璋者 劉焉之子 劉焉 魯恭王後也 先主取劉璋 事見于蜀志一劉璋傳하며 又後漢書列傳六十五劉焉傳附之하니라注+按 綱目獻帝紀 劉璋 遣法正하야 迎備러니 正至荊州하야 說備取益州한대 龐統曰 荊州 荒殘하고 人物殫盡하야 難以得志 今益州 戶口百萬이요 土沃財富하니 誠得以爲資하면 大業可成하리이다 備曰 以小利而失信義於天下하면 奈何 統曰 若事定之後 封以大國이면 何負於信이리잇고 今日不取 終爲人利耳니이다 備以爲然하야 自將步卒數萬而西하다 劉璋 隨在 所供奉贈遺 以巨萬計 劉備入成都하야 遷璋公安하고 自領益州牧하며 以諸葛亮으로 爲軍師將軍하니라 ○ 朱子曰 取劉璋一事 却不是 或以爲先主之謀 未必是孔明之意라하니라하니 聖人 寧無成耳언정 此不可爲也니라
그런데 공명孔明은 반드시 성취成就함이 있기를 구하여 유장劉璋을 취하였으니,注+유장劉璋유언劉焉의 아들이니, 유언劉焉나라 공왕恭王의 후손이다. 선주先主(劉備)가 유장劉璋을 취한 것은 이 사실이 《촉지蜀志》 1권 〈유장전劉璋傳〉에 보이며, 또 《후한서後漢書》〈列傳〉 65의 〈유언전劉焉傳〉에 부록으로 기록되어 있다.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의 〈헌제기獻帝紀〉에 유장劉璋법정法正을 보내어 유비劉備를 맞이하게 하였는데, 법정法正형주荊州에 이르러서 유비劉備에게 익주益州를 점령한다고 설득하였다. 이에 방통龐統이 말하기를 “형주荊州는 황폐하고 인물人物이 모두 다하여 뜻을 얻기가 어려우며, 지금 익주益州호구戶口백만百萬이고 토지土地가 비옥하고 재정財政이 풍부하니, 진실로 이곳을 얻어 밑천으로 삼으면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였다. 유비劉備가 “작은 이익 때문에 천하에 신의信義를 잃으면 어찌하는가.” 하고 걱정하자, 방통龐統은 “만약 일이 이루어진 뒤에 큰 나라를 봉해주면 신의信義에 무슨 저버림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점령하지 않으면 끝내 남의 이로움이 될 뿐입니다.” 하니, 유비劉備가 그 말을 옳게 여겨 스스로 보병步兵 수만 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갔다. 유장劉璋유비劉備가 있는 곳마다 물건을 주어 봉양하고 선물한 것이 거만巨萬에 이르렀다. 유비劉備성도成都에 들어가 유장劉璋공안公安으로 옮기고 스스로 익주목益州牧을 겸하였으며 제갈량諸葛亮군사장군軍師將軍으로 삼았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유장劉璋을 취한 한 가지 일은 옳지 못하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선주先主(劉備)의 계책이고 반드시 공명孔明의 뜻은 아닐 것이다.’라고 한다.”
성인聖人은 차라리 성취成就하지 못할지언정 이러한 짓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諸葛亮 字孔明이라
제갈량諸葛亮공명孔明이다.
東漢末 曹操據漢將簒한대 孔明 輔先主하야 志欲攘除姦凶하고 興復漢室하니 而其規模宏遠하고 操心公平하야 有王佐之心이나 然於王道則有所未盡이라
동한東漢 말기末期조조曹操나라를 점거하고 찬탈簒奪하려 하자, 공명孔明선주先主(劉備)를 보필輔弼하여 마음에 간흉姦凶을 제거하고 나라 왕실王室흥복興復하려 하였으니, 그 규모規模원대遠大하고 마음가짐이 공평公平하여 왕좌王佐의 마음이 있었으나 왕도王道에는 미진한 바가 있다.
蓋聖人之道 如天地發育하야 無有私意
성인聖人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발육發育하듯 하여 사심私心이 있지 않다.
行一不義하면 雖可以得天下而不爲어늘 先主以詐取劉璋하니 孔明 不得以無責이라
한 가지 불의不義를 행하면 비록 천하天下를 얻을 수 있더라도 하지 않았는데, 선주先主는 속임수로 유장劉璋을 취하였으니, 공명孔明이 책임이 없을 수 없다.
蓋其志於有成하야 行不義而不暇顧
이는 일을 성취함에 뜻을 두어서 불의不義를 행하면서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若聖人則寧漢無興이언정 不忍爲此也니라
만약 성인聖人이라면 차라리 나라를 일으키지 않을지언정 차마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10-2 若劉表子琮 將爲曹公所幷하니 取而興劉氏 可也注+按 綱目 或勸備攻琮이면 荊州 可得이라한대 備曰 劉荊州臨亡 托我以孤遺하니 背信自濟 死何面目以見荊州乎아하고 將其衆去라가 過襄陽할새 呼琮한대 琮懼하야 不能起하니 琮左右及荊州人 多歸備 備過辭表墓할새 涕泣而去하니라 ○ 朱子曰 劉表之後 君弱勢孤하야 必爲他人所取 較之取劉璋하면 不若得荊州之爲愈也니라니라
10-2 유표劉表의 아들 으로 말하면 장차 조공曹公(曹操)에게 겸병兼倂당하게 되었으니, 이 땅(荊州)을 취하여 유씨劉氏를 일으키는 것은 괜찮다.注+살펴보건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혹자或者유비劉備에게 유종劉琮을 공격하면 형주荊州를 점령할 수 있다고 권하자, 유비劉備는 말하기를 “유형주劉荊州(劉表)가 죽을 적에 나에게 어린 아들을 부탁하였으니,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스스로 성공成功한다면 죽어서 무슨 면목으로 유형주劉荊州를 뵙겠는가?” 하고 거절하였다. 유비劉備가 병력을 거느리고 떠나가다가 양양襄陽을 지날 적에 유종劉琮을 불렀는데, 유종劉琮이 두려워하여 일어나지 못하니, 유종劉琮의 좌우 측근들과 형주荊州 사람들이 유비劉備에게 귀의하는 자가 많았다. 유비劉備유표劉表의 묘소를 지날 적에 눈물을 흘리고 떠나갔다. 〔補註〕유형주劉荊州형주자사荊州刺史유표劉表를 가리킨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유표劉表가 죽은 뒤에 군주가 약하고 세력이 고립孤立되어서 반드시 타인에게 점령당할 입장에 있었으니, 유장劉璋을 취한 것에 비교하면 형주荊州를 점령하는 것이 훨씬 낫다.”
先主依劉表러니 曹操南侵하니 會表卒하고 子琮迎降이라
선주先主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는데 조조曹操가 남쪽으로 침공하니, 마침 유표劉表가 죽고 아들 조조曹操를 맞이하여 항복하였다.
孔明說先主하야 取荊州로되 先主不忍하니 琮降則地歸曹氏矣
공명孔明선주先主를 설득하여 형주荊州를 취하게 하였으나 선주先主가 차마 취하지 못하였으니, 유종劉琮이 항복하면 형주荊州 땅은 조씨曹氏에게 돌아간다.
取以興漢이면 何負於表리오
이 땅을 취하여 나라를 일으킨다면 유표劉表에게 무슨 저버림이 있겠는가.
較之取劉璋하면 則曲直有間矣니라
유장劉璋을 취한 것에 비교하면 이 간격이 있다.
或謂 先主雖得荊州라도 未必能禦曹操
혹자는 이르기를 “선주先主가 비록 형주荊州를 얻었더라도 반드시 조조曹操를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然此又特以利鈍言者也니라
그러나 이는 또 이둔利鈍(利害)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有王佐之心 : 王佐는 王者를 보좌함을 이른다. 王者는 湯王‧武王과 같은 聖君을 이르며, 王者를 보좌한다는 것은 伊尹이나 周公‧姜太公과 같은 名臣을 이른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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