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咸之象曰 君子以
하야 虛受人
이라하니 傳曰 中無私主
면 則無感不通
이니 以量而容之
하고 擇合而受之
면 非聖人有感必通之道也
注+易咸卦象曰 山上有澤이 咸이니 君子以하야 虛受人이라하니라 ○ 程傳曰 夫人中虛則能受요 實則不能入矣라 虛中者는 无我也니 中无私主면 則無感不通云云이라니라
惟虛中而無所私主면 則物來能應하야 有感必通也니 若夫有量則必有限하고 有合則必有不合이니 此는 非聖人感通之道也니라
[張伯行 註] 咸之爲卦兌上艮下하야 爲山上有澤하니 其氣以虛而通이라
君子體其象하야 務使此心虛公無我하야 以受人之感하니 則亦無有不通之理矣라
伊川作易傳以解之曰 凡人이 中有所主則實이요 無所主則虛니 皆不足以言感通之妙라
惟聖人은 中無私主하야 實而能虛하야 一片天理公心하야
而未嘗先立意見하나니 如是則人感我應하고 我感人孚하야 無感而不通이라
若未能忘私면 其相感也에 或示寬深之量以容納之리니 恐貌結而心不洽이요 或擇其可合而承受之리니 恐得其同而或遺其異니 皆非聖人大公無我하야 有感必通之道也라
聖人則無所不感하고 無所不通하야 如山上之有澤而已니라
10-2 其九四曰 貞하면 吉하야 悔亡하리니 憧憧往來하면 朋從爾思라하니 傳曰
感之道 無所不通하니 有所私係면 則害於感通이니 所謂悔也라
聖人感天下之心
이 如寒暑雨暘
하야 無不通
하고 無不應者
는 亦貞而已矣
니 貞者
는 虛中無我之謂也
注+朱子曰 某尋常解經에 只要依訓詁說字하니 如貞字는 作正而固라 子細玩索하면 自有滋味하니 若曉得正而固면 則虛中無我도 亦在裏面이니라注+傳에 澤性은 潤下하고 土性은 受潤이라 澤在山上而其漸潤通徹하니 是二物之氣相感通也라 君子觀山澤通氣之象하야 而虛其中하야 以受於人하나니라 ○ 問以量而容之는 莫是要着意容之否아 曰 非也라 以量者는 乃是隨我量之大小하야 以容之니 便是不虛了니라 ○ 問感通之理한대 曰 感은 是事來感我요 通은 是自家受他感處之意니라니라
咸卦
는 取象人身
하니 初爲拇
요 二爲腓
요 三爲股
요 五爲脢
요 上爲輔頰舌
注+程傳云 輔頰舌은 皆所用以言也라이라
有感則有通이나 然使在此者有所私係면 則爲感之道狹矣라 必有所不通이니 是悔也라
聖人之感天下는 如寒暑雨暘하야 周徧公溥하야 無所私係라 故無不通應하나니 所謂貞吉而悔亡也라
或謂 貞者는 正也니 未有解爲虛中無我者라하니 愚聞之師하니
曰 諸卦之貞
은 各隨卦義以爲正
하니 乾
은 以健爲貞
하고 坤
은 以順爲貞
注+坤卦程傳曰 乾以剛固爲貞이요 坤則柔順而貞이라하니라이라
故曰利牝馬之貞
注+坤卦彖曰 坤은 元亨하고 利牝馬之貞이라하니라이라하니 虛中無我者
는 咸之貞也
라
然此與象以虛受人異者는 蓋象은 取山澤通氣之義하니 謂虛中以受人之感이요 爻는 取四爲感之主하니 謂虛中以感人也라
惟虛則能應人之感이요 惟虛則能感人之應하니 其理亦一也니라
10-3 若往來憧憧然하야 用其私心以感物이면 則思之所及者엔 有能感而動이어니와 所不及者엔 不能感也니 以有係之私心으로 旣主於一隅一事면 豈能廓然無所不通乎아
惟其私心有係라 故其所思者有及與不及하야 而其所感者有通與不通하니
所謂朋從爾思者는 蓋思惟及其朋類요 亦惟朋類 乃從其思耳니라
10-1
함괘咸卦의 〈
상전象傳〉에 “
군자君子가 이것을 보고서 겸허히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 하였는데,
이천선생伊川先生의 《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마음에 사사로이 주장함이 없으면 감동함에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양量(자신의 도량)으로써 용납하고 합함을 가려서 받아들인다면 감동함이 있음에 반드시 통하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아니다.” 하였다.
注+《주역周易》 함괘咸卦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괘咸卦이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응용하여 겸허히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 하였다.
○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에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비면 받아들일 수 있고 꽉 차면 들어갈 수가 없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무아无我(我私가 없음)이니, 심중心中에 사사로이 주장함이 없으면 감동함에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괘咸卦가 모두 감동함을 뜻으로 삼았다.
마음을 비우고 사사로이 주장하는 바가 없으면 사물이 옴에 능히 응하여 감동(감촉)함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는 것이니, 만약 일정한 양量이 있으면 반드시 한계가 있고, 합함이 있으면 반드시 합하지 않음이 있을 것이니, 이는 성인聖人의 감통感通하는 도道가 아니다.
[張伯行 註]함괘咸卦는 태兌가 위에 있고 간艮이 아래에 있어서 산 위에 못이 있음이 되니, 그 기운이 허虛함으로 통한다.
군자君子가 이 상象을 체득하여 되도록 이 마음이 비고 공정公正하여 사아私我가 없어서 남의 감동을 받게 하니, 이렇게 하면 또한 통하지 않을 이치가 없다.
이천伊川이 《역전易傳》을 지어 이것을 해석하기를 “사람들이 마음에 주장하는 바가 있으면 실實하고 주장하는 바가 없으면 허虛하니, 이는 모두 감통感通의 묘리妙理를 말할 수 없다.
오직 성인聖人은 마음에 사사로이 주장함이 없어서 실實하면서도 허虛하여 일편一片의 천리天理요 공심公心일 뿐이다.
일찍이 먼저 의견을 내세우지 않으니, 이렇게 하면 남이 감동시키거든 내가 응하고 내가 감동시키거든 남이 믿어서, 감동함에 통하지 않음이 없다.
만일 사私를 잊지 못하면 서로 감동할 적에 혹 넓고 깊은 도량度量을 보여주어 용납할 것이니 이렇게 하면 외모는 사귀나 마음이 흡족하지 않을까 두렵고, 혹 합할 만한 사람을 가려서 받아들일 것이니 이렇게 하면 같은 것은 얻고 혹 다른 것은 빠뜨릴까 두려우니, 이는 모두 크게 공정하고 사아私我가 없어서 감동함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아니다.
성인聖人은 감동하지 않는 바가 없고 통하지 않는 바가 없어서 산 위에 못이 있는 것과 같이 할 뿐이다.
10-2 함괘咸卦 구사효九四爻에 “정貞하면 길吉하여 후회가 없어질 것이니, 끊임없이〔憧憧〕 왕래하면 벗만 네 생각을 따른다.” 하였는데, 《역전易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므로 함괘咸卦가 모두 사람의 몸에 나아가 상象을 취하였다.
사四는 마음(心臟)의 위치에 해당하는데, ‘그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고 말하지 않음은 감동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감동하는 도道가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사사로이 매인 바가 있으면 감통感通을 해치는 바, 이른바 후회라는 것이다.
성인聖人이
천하天下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날씨가 춥고 덥고 비오고 맑은 것과 같아서 통하지 않음이 없고 응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또한
정貞일 뿐이니,
정貞이란 마음을 비워
아사我私가 없음을 이른다.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내가 평소 경전經傳을 해석할 적에 다만 훈고訓詁에 의하여 글자를 설명하려 하였으니, 예컨대 정자貞字는 ‘바르고 견고함〔正而固〕’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자세히 완미하여 찾아보면 저절로 재미가 있으니, 만약 정이고正而固를 깨우쳐 안다면 마음을 비워 무아無我가 되는 것도 이 안에 있을 것이다.”注+《역전易傳》에 “못의 성질은 적셔주고 아래로 내려가고, 흙의 성질은 적셔줌을 받아들인다. 못이 산 위에 있어 점점 적셔져서 통철通徹하니, 이는 두 물건의 기운이 서로 감통感通하는 것이다. 군자君子가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는 상象을 보고서 마음을 비워 남에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였다.
○ “양量으로써 용납한다는 것은 뜻을 두어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아니다. 양量으로써 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양量의 크고 작음에 따라 용납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비우지 않는 것이다.”
○ 감통感通하는 이치를 묻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감感은 일이 와서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고 통通은 자신이 저의 감동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함괘咸卦는 사람의 몸을
상象으로 취하였으니,
초初는 엄지발가락이 되고,
이二는 장단지가 되고,
삼三은 다리가 되고,
오五는 등뼈가 되고,
상上은
보협輔頰(뺨)과 혀가 된다.
注+《역전易傳》에 이르기를 “보輔, 협頰, 설舌은 모두 사용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였다.
사四가 마음(심장)의 자리에 해당하는데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감동함은 반드시 마음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감동함이 있으면 통함이 있으나 가령 여기에 있는 것이 사사로이 매인 바가 있으면 감동하는 도道가 좁아서 반드시 불통不通하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후회이다.
성인聖人이 천하天下 사람들을 감동시킴은 날씨가 춥고 덥고 비오고 맑은 것과 같아서 두루하고 공정하고 넓어서 사사로이 매이는 바가 없으므로 감통感通하여 응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이른바 ‘정貞하면 길吉하여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정貞은 정正이니 마음을 비워 아사我私가 없는 것으로 해석한 경우는 있지 않다.” 하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스승에게 들으니 여러
괘卦의
정貞은 각각
괘卦의 뜻을 따라 바름으로 삼으니,
건乾은 굳셈을
정貞으로 삼고
곤坤은 순함을
정貞으로 삼는다.
注+곤괘坤卦의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건乾은 강고剛固함을 정貞으로 삼고, 곤坤은 유순하여 정貞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빈마牝馬의
정貞이 이롭다고 한 것이니,
注+곤괘坤卦의 〈단사彖辭〉에 이르기를 “곤坤은 원元하고 형亨하고 빈마牝馬의 정貞이 이롭다.” 하였다. 마음을 비워
아사我私가 없는 것은
함괘咸卦의
정貞이다.
그러나 이것이 〈상전象傳〉의 ‘겸허히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다른 까닭은, 〈상전象傳〉은 산택山澤이 기운을 통하는 뜻을 취하였으니 마음을 비워 남의 감동을 받아들임을 말한 것이고, 효사爻辭는 사四가 감응感應의 주체主體가 됨을 취하였으니 마음을 비워 남을 감동시킴을 말한 것이다.
비우면 남의 감동에 응할 수 있고, 비우면 남의 응함에 감동할 수 있으니, 그 이치가 또한 똑같은 것이다.”
10-3 만일 왕래하기를 끊임없이 하여 사심私心을 써서 남을 감동시킨다면 생각이 미치는 곳에는 감동시킬 수 있으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감동시키지 못하니, 얽매임이 있는 사심私心으로 이미 한 쪽과 한 가지 일을 주장한다면 어찌 확연하여 통하지 않는 바가 없겠는가.”
만약 사심私心이 없으면 깨끗하고 태연할 것이니, 어찌 끊임없이 함에 이르겠는가.
오직 사심私心에 얽매임이 있으므로 생각하는 바가 미치고 미치지 못함이 있어서 감동시키는 바가 통하고 통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벗만 네 생각을 따른다’는 것은 생각함이 오직 붕류朋類들에게만 미치고 또한 붕류朋類들만 그 생각을 따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