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人象之而畫卦爻하야 使人體卦爻之變易而隨時以從道也라
○ 或問 易卽道也
注+范氏念德曰 易也, 時也, 道也 皆一也니 自其流行不息而言之면 則謂之易이요 自其推遷而無常而言之면 則謂之時요 而所以然之理는 則謂之道니라니 何以言變易以從道
닛고 朱子曰
易之所以變易은 固皆理之當然이어니와 聖人作易은 因象明理하야 敎人以變易從道之方耳시니 如乾初則潛, 二則見之類 是也니라
49-2 其爲書也廣大悉備하야 將以順性命之理하며 通幽明之故하며 盡事物之情하야 而示開物成務之道也니 聖人之憂患後世 可謂至矣로다
開物者는 使其知之明이요 成務者는 使其行之就也라
然而前儒는 失意以傳言하고 後學은 誦言而忘味하니 自秦而下로 蓋無傳矣라
予生千載之後
하야 悼斯文之湮晦
하야 將俾後人
으로 沿流而求源
注+按 葉註에 謂因言求意라하니 愚則以爲因傳而求易也라하노라케하니 此傳所以作也
라
49-4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니
吉凶消長之理와 進退存亡之道 備於辭라 推辭考卦하면 可以知變이니 象與占은 在其中矣니라
象者는 天地山澤雷風水火之類是也요 占者는 吉凶悔吝厲無咎之類是也라
辭者는 言之則也라 故以言者尙其辭하고 變者는 動之時也라 故以動者尙其變하고 象事知器라 故制器者尙其象하고 占事知來라 故卜筮者尙其占이라
然辭變象占이 雖各有尙이나 而吉凶消長進退存亡의 易之大用이 皆具於辭라
49-5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
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
注+按 易有聖人之道以下 皆歸重於辭也라하나니 得於辭
하고 不達其意者
는 有矣
어니와 未有不得於辭而能通其意者也
注+按 意는 象與變占之意也라니라
蓋卦之象은 可觀이나 而辭之理則無窮이라 故必玩習其辭요 爻之變은 可觀이나 而占之義則無窮이라 故必玩習其占이라
體用一源
이요 顯微無間
이니 觀會通以行其典禮
注+繫辭라 朱子曰 會는 謂理之所聚而不可遺處요 通은 謂理之可行而無所礙處니 如庖丁解牛에 會則其族而通則其虛也라면 則辭無所不備
니라
自理而觀하면 則理爲體, 象爲用하야 而理中有象하니 是一源也요 自象而觀하면 則象爲顯, 理爲微하야 而象中有理하니 是無間也니라
會는 以理之所聚而言이요 通은 以事之所宜而言이니 其實은 一也니라
衆理會處에 便有許多難易窒礙하니 必於其中에 得其通處라야 乃可行耳니라
49-7 故善學者는 求言을 必自近하나니 易於近者는 非知言者也라
予所傳者는 辭也니 由辭以得意는 則在乎人焉이니라
道無遠近之間이나 然觀書者 必由粗以達於精하고 卽顯以推其微하야 本民彛日用之常而極於窮神知化之妙니 不可忽乎近而徒務乎高遠也니라
49-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지은 《역전易傳》 서序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역易은 변역變易함이니, 때에 따라 변역變易하여 도道를 따르는 것이다.
음양陰陽이 변역變易하여 만 가지 조화造化를 낸다.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떠 괘효卦爻를 그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괘효卦爻의 변역變易을 체득하여 때에 따라 도道를 따르게 한 것이다.
○ 혹자가 “
역易이 바로
도道이니
注+범염덕范念德이 말하였다. “역易과 시時와 도道가 모두 같으니, 유행하여 그치지 않는 입장에서 말하면 역易이라 이르고, 옮기고 바뀌어서 무상無常한 입장에서 말하면 시時라 이르고, 그 소이연所以然의 이치는 도道라 이른다.” 어찌하여
변역變易하여
도道를 따른다고 말하였습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역易이 변역變易하는 소이所以는 진실로 모두 당연한 이理이지만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은 것은 상象으로 인하여 이理를 밝혀서, 사람들에게 변역變易하여 도道를 따르는 방법을 가르치신 것이니, 예컨대 건괘乾卦의 초구효初九爻는 잠룡潛龍이요 구이효九二爻는 현룡見龍인 따위가 이것이다.”
49-2 이 《주역周易》 책은 광대廣大하여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장차 성명性命의 이치를 순히 하고 유幽‧명明의 원인(所以然)을 통달하고 사물事物의 실정實情을 다하여 개물성무開物成務(사물을 열어주고 일을 이룸)의 도道를 보여주었으니, 성인聖人이 후세後世를 우려함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다.
개물開物은 앎을 밝게 하는 것이요, 성무成務는 행실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49-3 옛날과 거리가 비록 머나 남아있는 유경遺經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선유先儒들은 말만 전하여 뜻을 잃고 후학後學들은 말만 암송하여 의미를 잃었으니, 진秦나라 이래로는 전함이 없었다.
나는 천년 후에 태어나서
사문斯文이 어두워짐을 안타깝게 여겨, 장차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흐름을 거슬러
근원根源을 찾게 하였으니,
注+살펴보건대 연류이구원沿流而求源을 섭씨葉氏의 주註에 “말로 인하여 뜻을 찾는 것이다.” 하였는데, 나는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으로 인하여 《주역周易》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
역전易傳》을 짓게 된 이유이다.
흐름을 거슬러 근원根源을 찾는다는 것은 말로 인하여 그 뜻을 찾음을 이른다.
49-4 역易에는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가 있으니, 말에 응용하는 자는 그 말〔辭〕을 숭상하고, 동動함에 응용하는 자는 그 변화〔變〕를 숭상하고, 기물器物을 만드는 데에 응용하는 자는 그 모양〔象〕을 숭상하고, 점占을 치는 데에 응용하는 자는 그 점괘〔占〕를 숭상한다.
길흉吉凶‧소장消長의 이치와 진퇴進退‧존망存亡의 도道가 말에 갖추어져 있으니, 말을 미루어 괘卦를 상고하면 변화變化를 알 수 있으니, 상象과 점占이 이 가운데에 들어 있다.
사辭는 성인聖人이 붙이신 말씀(卦辭와 효사爻辭)이요, 변變은 음陰‧양陽, 노老‧소少의 변화變化이다.
상象은 천天‧지地‧산山‧택澤‧뇌雷‧풍風‧수水‧화火 따위가 이것이요, 점占은 길吉‧흉凶, 회悔‧인吝, 여厲‧무구無咎 따위가 이것이다.
사辭는 말의 법칙이므로 말하는 자는 그 말을 숭상하고, 변變은 동하는 때이므로 동하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며, 일을 형상하여 기물器物을 알므로 기물器物을 만드는 자는 그 모양을 숭상하고, 일을 점쳐 미래를 알므로 복서卜筮하는 자는 그 점괘를 숭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辭‧변變‧상象‧점占이 비록 각각 숭상함이 있으나 길흉吉凶‧소장消長과 진퇴進退‧존망存亡의 《주역周易》의 큰 운용運用이 모두 말에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말을 미루면 변화를 알 수 있으니, 상象과 점占이 모두 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9-5
군자君子가 편안히 거처할 때에는 그
상象을 관찰하여 말(글)을 살펴보고 동할 때에는
변화變化를 관찰하여
점사占辭를 살펴보니,
注+살펴보건대 ‘역유성인지도易有聖人之道’ 이하는 모두 사辭에 중함을 돌린 것이다. 말(글)을 알고도 뜻을 통달하지 못하는 자는 있으나 말(글)을 알지 못하면서 뜻을 통달하는 자는 있지 않다.
注+살펴보건대 의意는 상象과 변變과 점占의 뜻이다.
완玩은 실컷 익힘이요 보는 것에 그칠 뿐만이 아니다.
괘卦의 상象은 볼 수 있으나 말(글)의 이치는 무궁하므로 반드시 그 말을 완습玩習하는 것이요, 효爻의 변變은 볼 수 있으나 점占의 뜻은 무궁하므로 반드시 그 점사占辭를 완습玩習하는 것이다.
편안히 거처할 때에 상象을 보고 말을 완미玩味하면 효爻의 운용運用을 각기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상象과 변變과 점占이 모두 말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반드시 말로 말미암아 그 뜻을 통달하는 것이다.
49-6 지극히 은미한 것은 이理이고 지극히 드러난 것은 상象이다.
체體(理)와
용用(象)이
근원根源이 하나요 드러남(象)과 은미함(理)이 간격이 없으니,
회통會通을 보아
전례典禮를 행하면
注+〈계사전繫辭傳〉에 보인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회會는 이理가 모여있어 빠뜨릴 수 없는 곳을 이르고, 통通은 이理가 행할 만하여 막히는 곳이 없음을 이르니, 예컨대 푸줏간의 백정이 소를 해체解體할 적에 회會는 힘줄이 모인 곳이고 통通은 비어서 칼날이 잘 들어가는 곳이다.” 말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다.
“이치의 입장에서 보면 이理는 체體가 되고 상象은 용用이 되어 이理 가운데에 상象이 들어 있으니 이는 근원根源이 하나인 것이요, 상象의 입장에서 보면 상象은 드러남이 되고 이理는 은미함이 되어 상象 가운데에 이理가 들어 있으니 이는 간격이 없는 것이다.”
“회會는 이치가 모여있는 것으로 말하였고, 통通은 일의 마땅함으로 말하였으니, 실제는 하나이다.”
“여러 이理가 모인 곳에는 곧 허다한 난이難易와 질애窒礙(막힘)가 있으니, 반드시 이 가운데에 통하는 곳을 얻어야 비로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49-7 그러므로 잘 배우는 자는 말(글)의 뜻을 찾기를 반드시 가까운 데에서 하니, 가까운 것을 쉽게 여기는 자는 말(진리)을 아는 자가 아니다.
내가 전傳(註釋)하는 것은 말이니, 말로 말미암아 뜻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천선생문집伊川先生文集》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도道는 원遠‧근近의 간격이 없으나 책을 보는 자가 반드시 거친 것으로 말미암아 정밀함에 도달하고 드러난 것에 나아가 은미함에 미루어서 백성의 떳떳한 성품과 일상생활하는 상도常道에 근본하여 궁신지화窮神知化의 묘리妙理를 다해야 하니, 가까운 것을 소홀히 하고 한갓 고원高遠한 것만을 힘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