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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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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9-1 學記曰 進而不顧其安하며 使人不由其誠하며 敎人不盡其材注+學記本註 不顧其安 不恤學者之安否也 不由其誠 不肯實用其力也 不盡其材 不能盡其材之所長也 延平周氏曰 孔子曰 求也退故 進之하고 由也兼人故 退之라하시니 蓋進之 必顧其所安而使之進也 使漆雕開仕하신대 曰 吾斯之未能信이라하야늘 孔子悅하시니 蓋使之必由其誠이요 而不强其中心之所不欲也 於門人問仁問孝之類 其答 皆不同하시니 蓋敎之必盡其材故 所答 雖有難易 而未嘗不隨其材之大小也니라라하니
其安, 其誠, 其材 皆謂受敎者
[張伯行 註] 此 發明學記之言하야 見敎者不可妄施也
其安, 其誠, 其材 皆謂受敎者 三患 實相因而然이라
故下文 釋之하니라
19-2 人未安之어늘 又進之하고 未喩之어늘 又告之하면 徒使人生此節目이니 不盡材, 不顧安, 不由誠 皆是施之妄注+按 謂敎者之妄也 學記其施之也悖 正謂此也니라니라
言進而不顧其安이면 徒使人生此節目注+按 註意節目 似指不由誠, 不盡材兩句 然其下又以三患言之 則上下逕庭하니 可疑이라
蓋三患 實相因注+言 不顧其安故 不由其誠하고 不由其誠故 不盡其材也而然이니 皆陵節躐等하야 不當其可而施之也니라
19-3 敎人至難하니 必盡人之材라야 乃不誤人이라
觀可及處然後 告之 聖人之明 直若庖丁之解牛 皆知其隙하야 刃投餘地하야 니라
言敎人必盡其材
聖人 隨材施敎하야 各當其可하시니 如庖丁解牛 洞見間隙하야 無全牛矣니라
事見莊子하니라
19-4 人之才足以有爲로되 但以其不由於誠이면 則不盡其才 若曰 勉率而爲之 則豈有由誠哉리오
〈橫渠禮記說下同〉
言使人不由其誠이니 勉强爲之而無誠意 雖材所可爲者라도 亦不能盡之矣니라
○ 朱子曰
嘗見橫渠簡與人한대 謂 其子日來誦書호되 不熟하니 宜敎他熟誦하야 盡其誠與材注+按 誠與材下 有他解此兩句 只作一意解하야 言人之材足以有爲로되 但以不由於誠이면 則不盡其材 二十九字하야 橫渠謂不由於誠이면 則不盡其材故 朱子云然이라라하시니라
[張伯行 註] 大凡人之才 雖有大小 無不足以有爲者
但非其心之所欲爲而出於誠然하야 所以往往不盡이니 是欲盡其材인댄 必由其誠也 而欲使之由其誠인댄 則必循序漸進이요 勿强以所未至하고 勿逼以所不堪이니 他自心安意肯而爲之誠矣리라
若勉率而爲之하야 不顧其安이면 則豈有由誠哉
此章大意 言敎人 要盡其材 而材非可勉强使之盡이라
首引學記之言三句하니 意實一貫이요 次段 正釋學記之意 言不顧其安하고 不由其誠이면 則不盡其材也 三段 言惟聖人施敎 爲能盡其材也 四段 言盡其材 必由其誠하고 必顧其安也
反覆言之하야 總欲使人隨材施敎하야 各當其可耳시니라


19-1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학기學記〉에 이르기를 ‘나아가게 하면서 그(배우는 자)의 편안히 여김을 돌아보지 않고, 사람을 부리면서 그의 성의誠意를 말미암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면서 그의 재주를 다하지 않는다.’注+학기學記〉의 본주本註에 “불고기안不顧其安은 배우는 자의 편안함과 편안하지 않음을 돌보지 않는 것이고, 불유기성不由其誠은 실제로 그 힘을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부진기재不盡其材는 그 재주의 장점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연평주씨延平周氏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염구冉求(冉有)는 뒤로 물러나려 하기 때문에 나아가게 한 것이고, 중유仲由(子路)는 남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물러나게 한 것이다.’ 하였으니, 나아가게 할 때에는 반드시 그 편안하게 여기는 바를 돌아보아 나아가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공자孔子께서 칠조개漆雕開에게 벼슬하게 하시자, 대답하기를 ‘저는 이 벼슬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니, 공자孔子께서 기뻐하셨는 바, 이는 그로 하여금 반드시 그 성심誠心을 말미암게 하고 중심中心에 원하지 않는 바를 억지로 시키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문인門人들이 을 묻고 를 물은 따위에 있어서 그 대답이 모두 똑같지 않으셨으니, 이는 가르침에 반드시 그 재질材質을 다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대답한 바가 비록 난이難易의 차이가 있으나 일찍이 그 재질材質대소大小를 따르지 않은 적이 없으셨다.” 하였으니,
기안其安, 기성其誠, 기재其材는 모두 가르침을 받는 자를 이른다.
[張伯行 註] 이는 〈학기學記〉의 말을 발명發明하여 가르치는 자가 함부로 가르침을 베풀 수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기안其安, 기성其誠, 기재其材는 모두 가르침을 받는 자를 이른 것이니, 세 가지 병통이 실로 서로 인하여 그러하다.
그러므로 아랫글에 이것을 해석한 것이다.
19-2 사람(배우는 자)이 편안히 여기지 않는데 또 나아가게 하고, 깨닫지 못하는데 또 말해주면, 한갓 사람으로 하여금 이 절목節目(이러한 일)만 생겨나게 하는 것이니, 재주를 다하게 하지 않고 편안히 여김을 돌아보지 않고 성의誠意를 말미암지 않음은 모두 베풂이 망령된 것이다.注+살펴보건대 베풂이 망령되다는 것은 가르치는 자의 망령됨을 말한 것이다. 〈학기學記〉에 그 베풂이 어그러졌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이는 나아가게 하면서 그 편안히 여김을 돌아보지 않으면 한갓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절목節目만 생겨나게 하는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注+살펴보건대 절목節目불유성不由誠, 부진재不盡材를 가리킨 것인 듯하다. 그러나 그 아래에 또 세 가지 병통을 말하였으니, 상하上下가 서로 어긋나는 바 의심스러울 만하다.
세 가지 병통이 실로 서로 인하여注+세 가지 병통이 실로 서로 인한다는 것은 그 편안함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그 성심誠心을 말미암지 않고, 그 성심誠心을 말미암지 않기 때문에 그 재질材質을 다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니, 모두 절차節次를 능멸하고 등급等級을 건너뛰어 그 함에 적당하게 베풀지 못해서이다.
19-3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우니, 반드시 사람의 재주를 다하게 하여야 비로소 사람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미칠 수 있는 곳을 본 뒤에 말해주어야 하니, 성인聖人의 밝음은 바로 포정庖丁(푸줏간의 백정)이 소를 해체解體할 때에 모두 그 빈틈을 알아서 칼을 여지餘地(빈틈)에 집어넣어 온전한 소가 없는 것과 같다.
이는 사람을 가르칠 적에 반드시 그 재주를 다하게 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성인聖人은 재주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서 각각 그 함에 적당하게 하시니, 포정庖丁이 소를 해체解體할 적에 빈틈을 환히 보아 온전한 소가 없는 것과 같다.
이 내용은 《장자莊子》에 보인다.
19-4 사람의 재주가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으나 다만 성의誠意를 말미암게 하지 않으면 그 재주를 다하지 못하니, 만약 억지로 이끌어서 한다면 어찌 성의誠意를 말미암음이 있겠는가.”
〈《횡거선생예기설橫渠先生禮記說》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이는 사람을 부리면서 그 성의誠意를 말미암게 하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니, 억지로 힘써서 행하여 성의誠意가 없으면 비록 자신의 재주가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또한 다하지 않게 된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일찍이 횡거橫渠가 사람에게 주신 편지를 보니, 여기에 이르시기를 ‘그의 아들이 날마다 와서 글을 외우나 익숙하지 못하니, 마땅히 그로 하여금 익숙히 외우게 하여 그의 정성(성의)과 재주를 다하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注+살펴보건대 ‘성여재誠與材’ 아래에 ‘타해차양구他解此兩句 지작일의해只作一意解 언인지재족이유위言人之材足以有爲 단이불유어성但以不由於誠 즉부진기재則不盡其材(저 횡거橫渠는 이 두 를 해석할 적에 다만 한 뜻으로 풀이하여 사람의 재질材質이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으나 다만 성의誠意를 말미암지 않으면 그 재질材質을 다하지 못하게 됨을 말씀하였다.)’라는 29가 있는 바, 횡거橫渠는 ‘성의誠意를 말미암지 않으면 그 재질材質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하셨으므로 주자朱子가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張伯行 註] 대체로 사람의 재주가 비록 크고 작음이 있으나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자가 없다.
다만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로 정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어서 왕왕 다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그 재주를 다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성의를 말미암게 하고, 그 성의를 말미암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순서를 따라 점점 나아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말고 감당하지 못할 것을 억지로 시키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저가 스스로 마음이 편안하고 뜻이 좋아하여 성실히 할 것이다.
만약 억지로 이끌고 시켜서 그 편안함을 돌아보지 않으면 어찌 성의를 말미암음이 있겠는가.
대의大意는 사람을 가르칠 적에 모름지기 그 재주를 다하여야 하나 재주는 억지로 힘써서 다하게 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첫머리에는 〈학기學記〉에 있는 세 를 인용하였으니 뜻이 실로 일관되고, 다음 단락은 바로 〈학기學記〉의 뜻을 풀이하였으니 그 편안함을 돌아보지 않고 그 성의를 말미암지 않으면 그 재주를 다하지 않게 됨을 말하였으며, 세 번째 단락은 오직 성인聖人만이 가르침을 베풀 적에 그 재주를 다하게 함을 말하였고, 네 번째 단락은 그 재주를 다하려면 반드시 그 성의를 말미암고 반드시 그 편안함을 돌아보야야 함을 말하였다.
반복하여 이것을 말해서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재주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어서 각각 그 함에 마땅하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역주
역주1 無全牛 : 온전한 소가 없다는 것은 결에 따라 칼을 대기만 하면 어떠한 소도 쉽게 해체됨을 이르는 바, 《莊子》〈養生主〉에 보인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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