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 未知立心엔 惡思多之致疑요 旣知所立엔 惡講治之不精이니라
立心未定而多思致惑이면 則所向或移하고 立心旣定而講治粗疎면 則所業莫進이니라
92-2 講治之思 莫非術內
니 雖勤而何厭
이리오마는 所以急於可欲者
는 求立吾心於不疑之地
니 然後
에 若決江河
하야 以利吾往
注+按 孟子可欲之謂善이라한대 朱子曰 天下之理其善者는 必可欲이요 其惡者는 必可惡니 其爲人也 可欲而不可惡면 則可謂善人矣니라 又曰 可欲은 是資稟好하야 別人以爲可欲이니 是說這人可愛也라 其爲人이 處心造事行己接物에 一皆可欲而不可惡면 則可謂之善人矣리라 ○ 慶源輔氏曰 先儒多以可欲으로 爲己之欲이로되 獨集註不然하니 可欲은 是別人이 以爲可欲이니라 ○ 按 橫渠所謂可欲은 與朱子意不同하니라이니라
然所以急於明可欲之善者
는 蓋欲先定吾志
하야 無所疑惑
注+按 朱子曰 急於可欲之善이면 則便是無善惡之雜이니 便是立吾心於不疑之地라하시니 此專以行言이어늘 葉說은 似以知言하니 恐未穩이라이니 然後
에 能若決江河
하야 進而不可遏
이니 此
는 言立心之必定
이니라
[張伯行 註] 可欲
은 對
字看
이니 承上文思多講治而言
이라
講治之功과 致思之多가 莫非吾學術分內之事니 雖勤勤於此라도 亦所不廢니 何必厭之而有所惡리오
所以急於可欲者는 求志向堅定明白하야 立吾心於不疑之地하야 自無多思之可惡然後에 沈潛講治하고 優游厭飫하야 沛然有得이라
若江河之決하야 條達流行하야 任吾所往호되 無不冰釋理順하야 而講治亦無惡其不精矣리라
故雖仲尼之才之美
로도 然且敏以求之
注+論語註에 敏은 速也니 謂汲汲也라하시니 今持不逮之資
하야 而欲徐徐以聽其自適
은 非所聞也
注+書經說命篇曰 惟學은 遜志니 務時敏이라야 厥修乃來라하니라 ○ 論語述而篇曰 好古敏以求之者也라하니라 ○ 書經說命篇曰 匪說攸聞이라한대 註云 甚言無此理也라하니라로다
遜此志則立心已定
이요 務時敏則講學爲急
注+按 書註曰 如有所不及이어든 勤以勵己라하니라 朱子曰 遜其志요 又須時敏이니 若似做不做하야 或作或輟이면 亦不濟事라하시니 然則時敏은 以敏於行言이요 不但以講學言也라 若以遜志務時敏으로 爲立心以後之事면 則可어니와 若分遜志與務時敏하야 以應立心與講學이면 則恐未免牽合之失이니라이니 如是則所修乃日見其進也
라
92-1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마음을 세울 줄을 모를 적에는 생각을 많이 하여 의혹을 이룸을 싫어하고, 이미 마음을 세울 바를 안 뒤에는 강치講治가 정精하지 못함을 싫어해야 한다.
마음을 세움이 정해지지 못하고서 생각을 많이 하여 의혹을 이루면 추향趨向하는 바가 혹 바뀌게 되고, 마음을 세움이 이미 정해졌는데 강치講治가 거칠고 소홀하면 공부하는 바가 진전되지 못한다.
강치講治의 생각은 모두
학술學術 안에 있는 것이니, 비록 수고로우나 어찌 싫어하겠는가마는
가욕可欲(좋아할 만한 좋은 방법)을 밝힘을 급하게 여기는 까닭은 나의 마음을 의혹하지 않는 곳에 세우고자 해서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하여 나의 감을 순탄하게 할 수 있다.
注+살펴보건대 《맹자孟子》에 ‘가욕可欲(좋아할 만함)을 선善’이라 하였는데, 그 주註에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천하天下의 이치가 선善한 것은 반드시 좋아할 만하고 악한 것은 반드시 미워할 만하니, 그 사람됨이 좋아할 만하고 미워할 만하지 않으면 선인善人이라 이를 수 있다.” 또 말씀하였다. “가욕可欲은 자품資稟이 좋아서 딴 사람이 가욕可欲이라 하는 것이니,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됨이 마음을 두고 일을 하며 자기 몸을 행하고 남을 대하는 것이 한결같이 모두 사랑할 만하고 미워할 만하지 않으면 선인善人이라 이를 수 있다.”
○ 경원보씨慶源輔氏가 말하였다. “선유先儒들은 가욕可欲을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많이 말하였는데, 유독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는 그렇지 않으니, 가욕可欲은 딴 사람이 가욕可欲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 살펴보건대 횡거橫渠가 말씀한 가욕可欲은 주자朱子의 뜻과는 다르다.
윗글을 이어 말씀하기를 “치사致思와 강치講治는??
바로 궁리窮理의 일이니, 모두 나의 학술學術 안에 들어있다.
애당초 어찌 수고로움을 싫어하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강치講治에 정精함을 귀하게 여김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가욕可欲의
선善을 밝힘을 급하게 여기는 까닭은 먼저 내 마음을
정定하여 의혹하는 바가 없게 하고자 해서이니,
注+살펴보건대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가욕可欲의 선善을 급하게 여기면(우선하면) 곧 선악善惡의 뒤섞임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곳에 세우는 것이다.” 하였는 바, 이는 오로지 행行으로 말씀한 것인데, 섭씨葉氏의 주註는 지知로 말한 듯하니, 온당하지 못할 듯하다. 이렇게 한 뒤에야
강하江河를 터놓은 듯하여 전진하여 막을 수 없는 것이니, 이는 마음을 세움을 반드시
정定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張伯行 註]가욕可欲은 악자惡字와 상대하여 보아야 하니, 상문上文에 사다思多(생각을 많이 함)와 강치講治를 이어서 말한 것이다.
강치講治의 공부와 치사致思의 많음이 모두 내 학술學術의 분수 안의 일이니, 비록 여기에 부지런히 힘쓰더라도 또한 폐하지 않아야 할 바이니, 어찌 싫어하여 미워하는 바가 있겠는가.
다만 군자君子가 학문學問할 적에 자연 하고자 하는 공부가 있다.
가욕可欲을 급히 여기는 이유는 지향志向이 굳게 정해지고 분명하여 의심하지 않는 자리에 나의 마음을 세워서 자연 미워할 만한 많은 생각이 없게 한 뒤에야 침잠沈潛하고 강치講治하며 우유優游하고 염어厭飫하여 패연沛然히 얻음이 있을 것이다.
강하江河를 터놓은 것과 같아서 조리條理가 창달暢達하고 유행流行하여 내가 가는 대로 맡겨두어도 모두 얼음이 풀리듯 이치가 순하여 강치講治 또한 그 정밀하지 못함을 싫어함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바로 군자君子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강치講治와 치사致思를 일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뜻을 겸손히 하여 힘써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아짐이 마침내 올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중니仲尼의 훌륭한 재주로도 민첩하게 구하셨으니,
注+《논어論語》의 주註에 “민敏은 신속함이니, 급급히 함을 이른다.” 하였다. 이제 미치지 못하는
자질資質을 가지고 서서히
유유자적悠悠自適하도록 내버려 두고자 하는 것은 내가 들어본 바가 아니다.”
注+《서경書經》〈열명편說命篇〉에 이르기를 “배움은 뜻을 겸손히 하여야 하니, 힘써 때로 민첩하게 하면 그 닦아짐이 마침내 온다.” 하였다.
○ 《논어論語》〈述而篇〉에 “옛것을 좋아하여 민첩히 구하는 자이다.” 하였다.
○ 《서경書經》〈說命篇〉에 “제(說)가 들은 바가 아닙니다.” 하였는데, 주註에 “이러할 이치가 없음을 지극히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이 뜻을 겸손히 하면
입심立心이 이미 정해지고, 힘써 때로 민첩하게 하면
강학講學을 급하게 여기니,
注+살펴보건대 《서경書經》의 주註에 “만일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부지런히 힘써서 자신을 면려勉勵하는 것이다.” 하였다. 주자朱子는 말씀하기를 “그 뜻을 겸손히 하고 또 모름지기 때로 민첩하게 해야 하니, 만일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여 혹 하기도 하고 혹 그치기도 한다면 또한 일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시민時敏은 행行을 힘쓰는 것을 말씀한 것이고 다만 강학講學하는 것만 가지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만약 손지遜志와 무시민務時敏을 입심立心 이후의 일로 삼는다면 괜찮지만, 만약 손지遜志와 무시민務時敏을 나누어서 입심立心과 강학講學에 맞춘다면 일부러 꿰어맞추는 잘못을 면하지 못할 듯하다. 이와 같이 하면 닦는 바가 날로 진전됨을 볼 것이다.